준수 스님의 대승찬 출간
불교는 다양성의 가르침이다.
불교는 긍정성의 가르침이다.
불교는 무한 가능성의 가르침이다.
불교는 자율성의 종교이다.
선불교의 3대 명문장으로 유명한 승찬 대사의 신심명, 영가 대사의 증도가, 지공 선사의 대승찬이 있다.
현대적 번역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준수스님께서 신심명, 증도가에 이어 대승찬을 출간하였다.
선불교는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게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는 불교만의 멋진 방편이다.
대승찬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메시지는 명확하다.
大道常在目前
대도상재목전
雖在目前難觀
수재목전난관
밝은도는 언제나늘 지금여기 현존하네
비록지금 목전이나 바로보긴 어려워라
若欲悟道眞體
약욕오도진체
莫除聲色言語
막제성색언어
밝은도의 참바탕을 깨닫기를 바란다면
소리빛깔 온갖언어 제거하려 하지말라
어떤 인식 작용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었다면 불교가 따로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선불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대승찬 첫머리에 그 인식 작용(소리, 색, 언어)을 제거하지 말라고 한다.
어쩌란 말일가?
준수스님은 머리글에서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분은 내가 아니다. 나는 기분을 알아차리는 그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나는 감정을 느끼는 그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나는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을 인식하는 그다.
기억은 내가 아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고 기억을 찾아서 여행하는 그다.
몸은 내가 아니다. 나는 거울을 통해 몸을 바라볼 수 있으며, 눈과 귀, 코와 혀 감각 기관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그다.
경험은 내가 아니다. 나는 경험을 경험하는 그다.
첫 구절에서 불교 공부의 방향이 명확하다.
오온이 공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관하는 관세음보살이 핵심인 것이다.
핵심을 바로 치고 들어가지 않으면 몇천 년을 수행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선불교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고, 대승찬이 그래서 중요한 책이다.
준수스님은 이렇게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불교는 다양성의 가르침이다. 일주문·불이문을 지나 들어서면 다양한 문화를 만나게 된다.
불교는 긍정성의 가르침이다. 불교 경전에는 부정적인 표현은 거의 없다.
불교는 무한 가능성의 가르침이다. 누구나 깨달음을 이룰 수 있으며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
불교는 자율성의 종교이다. 이상 모든 가능성이 오로지 자신의 자율적 의지에 달려있다.
선불교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준수스님의 대승찬 역해본과의 인연으로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참나를 만나는 멋진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서 바로 핵심을 파고들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공부해도 다다르지 못한다.
준수스님은 한 달에 한 번씩 매주 셋째 주 토요일 도반책방에서 불교 인문학강의를 통해서 꾸준하게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준수스님의 대승찬은 도서출판 도반에서 한지본으로 출간되었고,
가격은 A5 크기가 30000원 A6 크기가 20000원이다.
다른 다양한 크기와 다른 제본 방식을 출판사에 연락해서 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