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두족류 사이의 만남을 이해하려면 정반대의 사건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이별(departure)이다. 이별은 만남보다 꽤 오래전인 약 6억 년 전이다. 만남처럼 이별도 바다 속 동물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문제의 동물들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아도 모르지만, 아마도 벌레를 닮았고 작고 납작했을 것이다. — p. 14
동물이 등장하기 이전의 이 긴 시대를 그려본다면, 처음에는 단세포 생물을 고독한 존재로 상상할 것이다. 그저 떠다니며, (어떻게든) 먹이를 먹고, 둘로 분열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작은 섬들로 말이다. — p. 25
하지만 꽤 일관적으로 보이는 한 가지 관점은, 에디아카라기 세계가 분쟁과 포식이 거의 없는, 상당히 평화로운 세계였다는 것이다. — p. 47
당신은 밝은 오렌지색 해면이 수풀처럼 우거진 바다 밑 해면 정원 한가운데에 있다. 고양이만한 동물이 녹회색 해초를 몸에 칭칭 감고 해면에 매달려 있다. 그 몸은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 동물은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작은 머리와 두 개의 눈뿐이다. — p. 63
사육중인 문어는 종종 탈출을 시도하는데, 그럴 때마다 예외없이 인간이 지켜보지 않는 순간을 정확히 노리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문어가 양동이 안에 들어가 있다면 얼마 동안은 거기서 만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 뒤를 돌아보면 문어가 양동이에서 나와 바닥을 조용히 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 p. 82
문어는 먹이도 아닌 데다가 당장 쓸모도 없는 새로운 물건을 갖고 놀기도 한다. 그들은 수면과 유사한 상태에 들어가기도 한다. 갑오징어는 인간이 꿈을 꿀 때처럼 일종의 렘rapid eye movement, REM 수면 상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어가 비슷한 수면을 하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 p. 103
호주대왕갑오징어는 다른 방면으로도 놀라운데, 이 커다란 야생 동물에게서 친절한 면모를 발견할 때는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단순히 인간의 존재를 용인하는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동물이 낯선 존재와 관계 맺으려는 태도는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 p. 149
갑오징어가 색깔을 바꾸는 걸 보고 있던 그때, 갑자기 녹색 곰치 한 마리가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어 갑오징어를 공격했다. 갑오징어는 먹물을 내뿜었다—갑오징어도 문어나 오징어와 같은 종류의 먹물을 갖고 있다. 먹물은 화재 현장의 검은 연기구름처럼 퍼져나갔다. — p. 170
언어, 곧 우리의 말하고 듣는 능력의 심리학적 역할은 무엇일까? 특히, 그 모든 두서없고 장황한 내적 발화의 역할은 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의 대답들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누군가에게 내적 발화는 무의미한 잡담이며, 정신의 표면에 생긴 거품과도 같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비고츠키 같은 사람들에게 내적 발화는 필수적인 중요 도구다. — p. 191
그들은 각기 다른 수준의 노쇠를 겪고 있었다. 노쇠화가 가장 심한 갑오징어는 피부의 대부분을 잃어 진줏빛 내피를 드러내고 있었고, 남아 있는 외피는 마치 깨진 유리처럼 금이 가 있었다. 외피가 좀 더 남아 있던 이들은 창백한 회색이었다. 눈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갑오징어도 있었다. — p. 239
2015년 1월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운이 좋았다. 우리는 많은 영상 기록을 남겼다. 지금껏 보지 못한 수준의 활동을 보았으며, 우리가 이전에 이따금씩 관찰한 행동 중 일부가 패턴인 것으로 밝혀졌다. — p. 248
정신은 바다에서 진화했다. 물이 그것을 가능케했다. 생명의 기원, 동물의 탄생, 신경계와 뇌의 진화, 그리고 뇌를 갖는 것이 의미가 있게 되는 복잡한 신체의 등장까지, 생명의 모든 초기 단계들은 물속에서 일어났다. — p.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