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것들」
자기 존재를 경계 짓던 죄책감의 감각이 소실될 때,
파멸과 형벌은 삶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스며드는 것들」이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공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정확히 가리킨다. 주인공 우진에게 스며드는 것은 외부의 악이나 초자연적 존재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죄책감에 대한 면역, 다시 말해 자기 존재를 경계 짓던 감각의 소실이다.
이 소설은 죄책감을 단순한 윤리적 감정으로 그리지 않는다. 죄책감은 괴로운 감정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지키는 본능적 장치다. 그것은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마지막 감각이다. 그러나 우진은 ‘성공하는’ 웹툰을 그리기 위해 수희의 시나리오에 눈독들이고, 탐내고, 끝내 빼앗는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정당화한다. 마침내 수희의 시나리오 〈빙의〉가 우진의 신작 웹툰 〈빙의〉가 되었을 때 그의 죄책감은 완전히 질식당하고 만다. 그 대가로 창작의 감각은 극도로 선명해지고, 원하던 대로 뛰어난 웹툰이 탄생한다. 그러나 사실 그 선명함은 미래를 비추는 빛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집어삼키는 화염에 가깝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의 기억은 서서히 사라지고, 낯선 타인의 기억이 우진을 채운다. 겪은 적 없는 굿판의 소리가 생생히 들리고, 타인의 원한이 그의 내면을 끓어오르게 한다. 안타깝게도 형벌은 고통이 아니라 보상의 형태로 그의 삶에 스며들기에, 우진은 그것을 점점 더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 사이,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더 나은 삶과 사랑, 결혼 등의 가치들은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대체되고, ‘살아 있는 우진’으로서의 자리는 비어간다.
이 작품이 남기는 가장 섬뜩한 잔상은 분명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외부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라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는 지금 무엇이 스며들고 있을까. 다행히 아직, 우진과 달리 우리는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우리의 형벌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를.
「이계전기 연재 중단을 요청합니다」
이세계 SSS급 판타지의 관습을 비트는
스타일리시한 코믹 B급 판타지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세계물이 관습적으로 제공해 온 ‘현실 도피의 판타지’를 정면에서 뒤집기 때문이다. 보통의 이세계물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막강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도착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된다. 독자가 이 장르에 빠져드는 까닭은 어쩌면 단순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영웅이 되는 세계’를 꿈꾸기 때문이다. 빌런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름을 남기는 일. 그러나 이 영웅 서사에는 분명한 공백이 있다. 악역의 사정, 전쟁 구도를 만든 역사와 정치, ‘악’으로 규정된 존재가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은 좀처럼 사유되지 않는다. 빌런은 그저 한 번 반짝이며 쓰러질 역할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계전기 연재 중단을 요청합니다」는 바로 그 지점을 비튼다. 주인공 태양이 이세계 전생한 칼드레아 대륙에서 인간들은 ‘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레임을 씌워 그들을 배제하고, 전쟁을 정당화하는 구도를 만들어 왔다. 그런 맥락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힘’만을 부여받은 소년병 태양은 용사로 추대되고, 전쟁의 선봉에 서서 마왕을 봉인한다. ‘용사의 탄생’은 정의로운 영웅 서사의 출발점이 아니라, 프레임과 무지가 결합해 만들어낸 전쟁의 서막이었다.
반면 마왕이 대한민국, 즉 ‘용사의 세계’로 왔을 때 그는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마왕은 오히려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고, 힘 대신 웹툰이라는 매개를 통해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칼드레아 대륙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누군가를 밀어내고 원래 주권을 지니고 있던 존재를 ‘외부자’로 만들어버리는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태양은 웹툰 어시스턴트로서 함께하며 이번엔 진짜 용사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독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용사는 선인, 마왕은 악인, 마족은 빌런 세력, 거대마신은 전쟁의 도구’라는 이야기적 관습을 따라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낯선 설정을 하나씩 등장시켜, 그 자동화된 도식을 해체하며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런 점에서 「이계전기 연재 중단을 요청합니다」는 가벼운 듯 보이는 판타지를 통해 오히려 현실의 무게를 되돌려 놓는 의미 있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이다.
매드앤미러 프로젝트의 또 다른 재미!
모든 작품을 잇는 매드앤미러의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인류는 과거 유리 매미의 수호 아래 번영을 누렸다. 매미는 온 세상의 ‘악’을 거울 조각으로 이루어진 자기 날개에 가두어 해독하였다. 그러나 ‘악’에 잠식당한 타락한 사냥꾼들이 유리 매미의 날개를 파괴하였고 세상은 불안, 혐오, 폭력으로 가득 찼다. 세상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부서진 유리 매미의 날개 조각을 모아 매미를 부활시키는 것뿐이다.
“어둠을 비추는 거울 조각들을 찾아라. 거울은 거울이 아닐 수 있음이라.”]
매드앤미러 세계관에 등장하는 ‘거울 조각’은 바로 시리즈의 각 작품입니다. 텍스티는 독자들(일명 ‘거울 조각 조사단’)이 그것들을 찾고 수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각 조각을 발견한 독자들이 감상하고, 소개하고, 대화하며 이야기를 확산시키고 그 힘이 크게 모이면 유리 매미가 힘을 되찾아 다시 세상을 정화해 줄 것입니다. 텍스티가 그 선봉대에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