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남김없이 불태우다”
인생에서 ‘왜?’라는 질문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자신의 삶의 무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이미 발생한 사건과 전개된 상황의 이유를 따지는 건 어쩌면 불필요한 절차다. 돌이킬 수 없을뿐더러 그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여러 사연이 중첩되어 있어 본질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엄마, 왜 나를 낳았어?” 같은 물음은 잘 풀리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평이거나 운명을 원망할 때 하는 질문일 뿐이다. 금수저라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세상에 태어나 되물릴 수 없고, 그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은 그저 우연 내지 필연일 뿐이다. 태어나 보니 그가 내 엄마인 것뿐이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잘못은 없다. 그저 그런 것일 뿐. 그렇기에 ‘왜?’라는 질문을 할 바에야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는 게 낫다. “엄마,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질문한다면, 어찌 되었든 상황을 타개할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우연의 반대말은 필연이 아니다. 우연과 필연은 같은 종류로 핑계의 언어들이다. 그것의 반대말은 ‘의지’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운명이든 삶을 기꺼이 받아 안고 기필코 살아내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 인생은 우연과 필연의 비겁한 언어들 뒤로 숨을 만큼 녹록하지 않다. 오디세우스처럼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지독한 열망 하나로 꾸역꾸역 버텨내며 걸어가는 상처투성이 영광의 길이다. 내가 지닌 모든 것, 순간순간을 한 점 남김없이 다 태워 사랑하고 고민하고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는 신과 인간이 뒤엉켜 투쟁했던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서 이타카로 모진 역경을 이겨내며 귀환하는 몰락한 영웅들의 끈질긴 생존을 다룬 이야기다. 오디세우스는 우연을 가장한 신의 장난을 왜냐고 물으며 무릎 꿇고 절망하는 대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간다.
워싱턴DC의 오디세우스, 워싱턴DC의 불굴의 경찰관 제프의 삶 역시 그러했다. 한인 1.5세대 이민자로서 맨땅에서 시작해 경찰 간부를 거쳐 훌륭한 사업가로 자리 잡기까지 그에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 앞에 놓인 운명을 불평 없이 긍정하고, 머뭇거림 없이 온전히 받아내어 오늘을 일궈냈다. 순간순간 한 점 남김없이 불태워 살았다. 그에게 허락된 사랑을 순수한 열정으로 불태웠고, 굴곡과 고비에 굴하지 않고 맞섰다. 영웅이 아닌 이민자들이 아무것도 없이 낯선 타국인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건, 자존심을 굽히며 차별과 혐오의 벽을 넘었기 때문이며, 안락과 요행을 버리고 그야말로 근면과 성실로 버텼기 때문이다.
범죄의 위험에 무방비한 채로 노출이 되어도 기어이 그곳에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자가 결국 강한 자였다.
『워싱턴 오디세이』는 워싱턴DC 경찰관 제프가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한인 1.5세대로서 미국 이민사를 가로지르는 서사 속에 소설 같은 그의 삶의 속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랑의 열정과 불굴의 의지를 담아낸 에세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인생이란 대동소이하다. 누구나 각자의 우주를 짓고 사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운명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시간들. 그 가운데 피어나는 빛나는 순간. 제프는 한 점 남김없이 그 순간을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