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조절’을 넘어 ‘자기결정’으로,
입시와 사춘기 고민을 관통하는 내면의 힘
청소년기는 뇌의 ‘신경 가소성’이 가장 활발한 시기이자, 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시도하는 시점이다. 이때 부모의 과도한 통제는 아이의 내면적 성장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번아웃’이나 ‘무기력’이라는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저자는 24년간 진료실에서 겪은 대표적인 문제 현상을 상담 사례 형식으로 각색해 들려준다. 진료실을 찾은 한 고등학생은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모범생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등교를 거부하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아이는 “지금까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깊은 무기력을 호소했다. 어려서부터 실패를 겪지 않도록 부모가 모든 장애물을 치워준 결과, 정작 아이는 스스로 일어설 근육을 기르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입시 레이스에 매몰되어 아이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 부모들에게 ‘자기결정력’이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돌파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힘이라고 강조한다.
유초등기 자녀 양육의 핵심 과제가 안정적 애착 형성과 자기조절 키우기였다면, 인생의 목표를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하는 청소년기 부모의 역할은 한층 달라져야 한다. 뇌과학적으로 신경 가소성이 활발한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빈틈없는 관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 무게를 감당해보는 ‘결정의 경험’이다. 이 책은 입시를 위한 성적표라는 눈앞의 결과만 좇기보다 더 멀리, 더 오래 가기 위해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다려줘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가의 냉철한 통찰과 육아 선배의 따뜻한 조언을 모두 담고 있다.
“자기결정력을 가진 아이는 무엇이 다를까?”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즐겁게 성취해내는,
진짜 똑똑한 아이들의 단단한 성장 비결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변화하는 가족 환경 속에서 자기결정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2부에서는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공감 능력과 사회성이 결여되어가는 교실 안의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3부에서는 자기결정력의 결핍이 불러온 청소년의 우울과 무기력 등 정신건강 문제를 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기결정력’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부모의 태도와 실질적인 양육 기술을 제안한다.
이 책이 여타의 자녀교육서와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전문가의 권위’와 ‘고3 학부모의 현실’이 바탕을 이룬다는 점이다. 김효원 교수는 소아청소년정신건강 분야의 권위자이자, 국어학원에 가기 싫다며 투쟁하는 아들 앞에서 한숨 쉬는 엄마이기도 하다. 각 챕터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아들 김현웅 군의 에세이 〈현웅 Says〉는 저자의 이론이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가능성과 다듬어지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컨대 엄마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국어 학원 등록을 권했다고 회상하지만, 아들은 “처음부터 가기 싫어서 짜증을 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내신 기간에만 다니겠다”는 자신만의 조건을 걸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엄마가 ‘설득’했다고 믿었던 순간이 아들에게는 치열한 투쟁이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부모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접근해도 아이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갈등의 과정 자체가 아이에게는 ‘자기를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엄마의 이론에 아들이 현실적인 주석을 다는 독특한 구성은, 꽉 막힌 부모-자녀 관계를 뚫어줄 가장 현실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가정은 물론, 교실과 사회 안팎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해나가는 다양한 면면을 보여주며 ‘자기결정력’이 발현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어느 학교 내신 기간, 중간고사 시험 성적정정 및 이의 신청 시간이다. A라는 아이는 자신이 쓴 주관식 답을 주장하고 싶어도 자신감이 부족해 선생님께 말도 붙이지 못하는 반면, B라는 아이는 뒤에 줄줄이 서 있는 다른 아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차례에서 20분이나 선생님을 졸라가며 부분 점수를 얻어낸다. C라는 아이는 그마저도 직접 하지 못해 부모님이 대신 선생님께 항의 전화를 걸어 결국 점수를 올리기도 한다. 점수는 올렸을지언정 B라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며 자기 상황만을 주장하고, C라는 아이는 엄마가 대신해주는 바람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조차 하지 못한다. A의 부모라면 자녀가 자기주장을 올바로 펼칠 수 있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대화를 통해 아이의 상황과 생각을 읽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물음을 아이에게 던져볼 수 있다.
- “OO이는 어떻게 해서 점수를 올렸을까?”
- “OO이 시험지에 혹시 원래 채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 문제에 채점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을까?”
- “네가 쓴 답변에도 그런 애매한 부분이 있을까?”
- “어떤 점을 강조해서 말씀드리면 선생님이 부분 점수를 주실까?”
- “네가 이 부분을 말씀드리면 선생님께서 뭐라고 할 것 같니?”
자녀의 시선으로 한 발 들어가, ‘엄마는 보내고 싶지만, 아이는 가기 싫은 학원을 두고 나누는 대화’, ‘학교에서 시험 성적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는 법’ ‘친구들과의 사소한 장난으로 불거진 감정적 문제’와 같은 여러 상황을 들여다보면 부모의 정서적 지지와 믿음 속에서 아이들이 발휘하는 ‘자기결정력’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스스로 이해하고 방향을 잡아갈 때, 아이는 진정한 성취를 경험한다. 다양한 예시와 구체적인 가이드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확실한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아이에게 완벽한 매니저가 아니라
든든한 안전 기지가 되어줄 것!”
‘실패할 기회’와 ‘믿어주는 마음’이 아이를 키운다
수많은 부모가 아이의 성공을 위해 ‘매니저’를 자처한다. 학원 스케줄을 짜고, 입시 정보를 수집하며, 아이의 시행착오를 미리 차단한다. 그러나 저자 김효원 교수는 부모가 억지로 끌고 간 아이는 결국 멈출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중고등기 양육의 핵심 과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기결정력’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이가 스스로 낸 용기를 믿어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전문가의 견해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패와 좌절을 겪어본 아이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대치동이라는 경쟁의 최전선에서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기까지 겪었던 자신의 불안과 시행착오 또한 저자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아이가 학원가기를 거부하며 부모의 뜻을 거스를 때, 친구와의 관계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볼 때 그 역시 흔들리는 평범한 엄마였다. 하지만 상담 사례로 등장하는 다른 부모들과 달리 저자는 아이를 다그치는 대신 ‘적절한 좌절’을 허용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었으며,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렸다. 《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은 일반적인 자녀교육서와 달리 구체적인 입시 정보나 학습법을 언급하는 책은 아니다. 대신 과학적인 접근으로 아이의 현재를 이해하고, ‘완벽한 매니저’가 되기를 멈추고 사춘기 아이와 어떻게 건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 부모 자신의 불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근원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청소년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각자 자신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아이를 믿어주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아이의 심리적 안전 기지가 되어주는 부모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사람, 매사 행복하게 성취하는 어른으로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손 내밀어주는 것,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것, 결국 꽉 쥐고 있던 통제의 끈을 놓아버려야 아이는 비로소 자기 삶을 펼쳐내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