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체제하의 여성의 노동력과 보육의 연관성
『전쟁, 여성, 그리고 아이들-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의 여성노동과 인구정책』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부터 1945년 8월 패전에 이르기까지, 총력전체제 하의 일본이 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 여성의 노무동원과 더불어 출산, 보육이라는 영역까지 포섭하고 조정해 나간 과정을 치밀한 사료 해석과 사례 분석을 통해 전시국가 일본의 여성노동·인구정책·보육의 전모를 추적하며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여성노동과 인구정책, 보육제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총력전체제’ 속에서 서로 긴밀히 연동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성은 군수산업의 노동력으로, 아이는 미래의 병력으로, 그리고 출산과 보육은 인구정책의 실행 단위로 전환되는 과정을 다양한 행정문서, 법령, 현장 사례 등을 통해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명료하다. 전시 일본이 여성을 노무동원했을 때, 기존의 연구는 미혼여성만이 동원되었음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전시기 급증한 탁아소를 사례 분석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기혼여성도 노동력으로 동원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전(戰前)의 여성의 영역은 가정으로 규정되었고, ‘양처현모’와 ‘일본적 부덕’은 여성이 준수해야 할 젠더 규범이었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전쟁의 승리와 제국의 영속성이라는 대의적 명분에서 출산과 육아, 그리고 가정 밖에서의 노동은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였고 이는 여성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노동정책과 인구정책의 충돌로 귀결되었다. 양 정책의 양립을 위한 일본 정부의 해결방안은 전시노무관리였으며, 이는 탁아소 증설로 나타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일본 정부는 여성의 신규징용을 주저하였으며 이는 일본의 가족제도에 기인한다. 일본의 가족제도는 전시기에 여성 징용을 부정하는 근거로 기능하였으며 그 실체는 출산과 육아에 있었다. 전시기 일본 여성들이 ‘제국신민’의 일원으로 공인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다산을 통해 국가에 공헌하는 것이었고, 가정 밖에서의 여성의 노동은 남성을 대체하여 총후를 지키는 보조적 역할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책은 2부 구성으로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총력전체제기 여성노동과 인구정책에 주목한 제1장부터 제4장까지로 여성노동정책과 인구정책이 여성을 어떻게 포섭해 가는지, 보육 및 탁아소 설치의 필요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중시되고 촉진되었는지 국가의 정책을 중심으로 추적하였다. 제1장은 1937년 이전의 전사(前史)로서 여성노동과 공장법, 보육의 기원과 발달을 중심으로, 제2장부터 제4장은 여성의 노무동원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점점 강화되는 정도에 따라 각 장의 여성노동정책을 ‘여성노무동원의 준비기’(1937년~1941년 전반), ‘여성노동정책의 확립기’(1941년 후반~1943년 전반), ‘여성노동정책의 강화기’(1943년 후반~1945년)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제2부는 제5장부터 제9장으로 구성되며, 기혼여성이 탁아소의 설치와 운영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기대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규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설치된 5곳의 탁아소를 사례로 제시하였다. 5곳의 탁아소란, 전선에 나간 남성을 대신하여 여성노동력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던, 광업으로 아키타현 하나오카광산 부설탁아소, 군수산업으로 방독면을 생산하던 일본화공주식회사의 부설탁아소, 농촌의 농번기탁아소 등이다. 그 외에도 엘리트 여성전문교육기관이던 쓰다영학숙(津田英学塾)이 운영한 쓰다어린이집(津田子供の家)과 도쿄 전시탁아소를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 분석은 총력전체제기 국가 정책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긴밀히 연계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함으로써, 공공성과 사적 공간이 얽히는 구조를 드러낸다. 전쟁은 전장만의 일이 아니라, 일상과 가정, 탁아소와 공장까지 포괄하는 ‘전사회적 동원’이었다. 특히 탁아소를 중심으로 한 보육정책이 여성의 사회진출을 보장하는 진보적 장치가 아니라, 노동력 확보와 인구 재생산을 위한 국가적 기획의 일환으로서 총동원 전략의 일부였음을 밝힘으로써 오늘날의 정책 논의에까지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 김경옥은 일본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일본 여성사, 전시기 여성노동과 인구정책, 보육정책, 젠더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 온 역사연구자로, 한국과 일본의 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전쟁, 여성, 그리고 아이들』은 그간의 아카이브 조사와 논문 연구성과를 집약한 첫 단행본이며, 전시 일본의 여성노동을 둘러싼 젠더 정치와 인구, 보육의 구조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국내 최초의 연구서라는 의의를 지닌다. 특히 총력전체제 하 일본 국가의 여성과 아이에 대한 통제 방식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며, 노동과 인구, 보육의 교차점에서 전시 동원체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 책은 일본에 관한 연구서이지만, 일본이라는 ‘타자의 역사’를 읽음으로써, 국가의 정책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깊이 개입할 수 있는지, ‘우리 사회’를 성찰하게 함으로써 오늘의 한국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출생 위기와 돌봄 공백, 경단녀 문제, 여성의 비정규직화 등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국가가 위기라는 이름으로 여성과 아이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는가’라는 질문과 밀접히 닿아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학은 물론, 여성학, 사회정책, 보육학, 일본지역연구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융합적 연구 성격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