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약한 이를 중심축으로 삼는 사회,
약하고 친절한 리더가 일꾼이 되는 작고 느슨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위기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속도, 경쟁의 압력, 능력주의의 냉혹함이 삶을 점점 더 가늘게 깎아 내고 있지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이웃이 있었고, 마을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불평등이 돌이킬 수 없이 심화되고, 삶의 위험을 공동체나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사적소유의 확대를 위한 무한 경쟁, 각자도생 이외의 방식은 생각해 볼 여지조차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생태적 위기 역시 이 상황과 무관하지 않고요.
우치다 다쓰루의 『커먼즈의 재생』은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는 진단에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점점 더 빠르게 추락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대적인 전환이 아니라 갑자기 몰락하지 않도록 세계를 연착륙시키는 것, 경쟁이든 양극화든 더 이상 가속화되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 첫 번째 단서가 바로 커먼즈의 회복입니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도 커먼즈의 재생이 실험이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커먼즈 은행 빈고가 탄생했으며, 202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형 마을공동체'인 위스테이 별내가 문을 열었고, 2019년에는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공간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전국 최초의 마을펍 목포 건맥1897 협동조합이 생겼습니다. 우치다 선생은 사재를 털어 지은 건물(개풍관)을 커먼즈로 활용하고 있고, 책에 실린 특별 대담에 따르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는 지인들과 함께 매입한 산을 커먼즈로 가꿔 나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커먼즈는 '공공의 것'이자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커먼즈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공동체가 끝내 살아남을까요? 우치다 선생은 “구성원 가운데 가장 약한 존재를 통합 축으로 삼는 공동체”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강한 자에게 자원을 우선 배분하는 약육강식형 공동체, 가장 두터운 층인 '평균적인 능력을 지닌' 구성원의 편의에 초점을 맞춘 평범한 공동체는 이제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무력한 존재를 포함하고, 구성원들이 그를 함께 기르고 치유하며 지원하는 역동적인 구조로 공동체를 다시 설계해야 생존력 있는 공동체가 성립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선생은 단호하게 덧붙입니다. 커먼즈의 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 각 개인이 어떤 공동체를 선택하고 어떤 관계를 감당할 것인가라는 태도와 결단이라고요. 공공과 공동체, '우리'라는 기반이 허물어지는 시대에, 이 책은 커먼즈를 다시 상상하는 일이 곧 사회를 연착륙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임을 보여 줍니다.
새로운 커먼즈는 평범한 이들의 삶에서 재생된다
우치다 선생은 대학 강단에서 내려온 뒤, 커먼즈의 재생을 개념이나 지식으로만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가 거주하는 장소는 사재를 들여 지은 건물로, 1층은 합기도 도장으로 운영하고 2층은 생활공간으로 꾸렸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도장이 아닙니다. 무도 수련장이자 세미나 공간이고, 학숙이자 노가쿠 등 전통 예능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자리이며, 무엇보다 지역의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모두의 집'입니다. 사적 영역이면서도 공공·반공공 목적을 위해 늘 열려 있는 장소이지요. 지금은 그가 관장으로 이 공간을 운영하지만, 다음 관장은 오랫동안 개풍관에서 수련해 온 지역 사회 구성원인 아주 평범한 여성입니다. 모두의 집인 만큼 그의 사후에도 모두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사적 소유로 돌리지 않고, 지역공동체를 위해 내어 준 것입니다.
저자는 커먼즈의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커먼즈는 단기적으로 출혈을 감수해야 시작됩니다. 누군가가 자기 주머니를 털어야 하고, 당연히 무임승차자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커먼즈를 설계하거나 재생시키려는 이는 “공짜 밥을 먹는 사람들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기껏 살려 놓은 공동체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려면 강한 의지와 긴 호흡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커먼즈의 재생은 희망적입니다. 국가 시스템이 바뀌지 않아도, 거대한 제도의 전환을 기다리지 않아도, 각자의 삶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살고 싶은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며, 당신은 그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요.
우치다 선생의 가르침이 특별하고 탁월한 이유는 그가 커먼즈를 연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기 삶을 실험대 삼아 배우고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책은 커먼즈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커먼즈를 재생시키는 사람의 삶의 태도를 보여 주는 드문 기록입니다. '함께 산다'는 말을 다시 현실로 되돌리는 책이자,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책이지요. 선생의 가르침처럼 결국 커먼즈는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 각각의 삶에서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