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0
‘요정굴뚝새’가 정말 예뻤다. 얼른 스케치북을 꺼내 깃털을 자세히 관찰하고 깃털 한 올 흐트러지지 않게 차분히 따라 그렸다. 마음을 훅 빼앗아 간 파란 깃털을 그리다 보니 어지럽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파란색은 희망을 상징한다는데 요정굴뚝새의 파란색은 지금 더없이 차가운 서우의 마음 같았다.
p.30~31
“여러분, 우리는 왜 동물을 교실로 초대하는 걸까요?”
“그야, 당연히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려고요.”
채원이가 우쭐대며 말하자 선생님이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채원이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오늘도 역시 채원이, 정답!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글자로 배우지 않고 생활 속에서 배우고 싶었어요. 가축. 즉, 인간이 길들여 함께 살게 된 동물과 살아 보면서요. 그러면 아무래도 더 생각할 거리가 많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귀엽잖아요! 하하하. 사실 선생님도 알 부화는 처음이라서 여러분 못지않게 떨리고 설렙니다. 우리 잘해 봐요!”
p.40~41
집에 돌아온 서우는 얼른 스케치북을 펴고 오종종히 몰려다니는 병아리 떼를 그렸다. 그림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데도 뭔가 허전해 가장 앞에 어미 닭을 그려 넣었다. 비로소 그림이 안정된 느낌이었다.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들이 편안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서우는 엄마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같은 마음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가끔 서운함이 불쑥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엄마를 응원하면서도 이런 마음이 자꾸 솟아오르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p.50~51
“야. 그런데 저 오리, 왠지 미운 오리 새끼 같지 않냐? 색깔도 까만 게 외톨이 같잖아.”
“김지호! 오리가 듣잖아. 그런 말 하지 마.”
서우가 자기도 모르게 지호한테 버럭 화를 냈다. 지호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한서우! 왜 소리를 질러? 그리고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쯧쯧쯧. 그럴 만했지. 김지호, 식물도 사랑한다고 말해 주면 잘 자란다잖아. 오리가 다 듣고 있잖아. 막말하지 마.”
p.68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햇살초등학교 3학년 1반, 오아리 클럽’입니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서우는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혼자 부르던 이름이 다 같이 부르는 반 이름이 되다니, 앞장서서 무리를 이끄는 대장 철새가 된 기분이었다. 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철새 무리 중 꼭짓점에서 날며 방향을 이끄는 대장 철새 말이다. 오리와 병아리가 온 이후로 재미있는 일들이 매일 벌어진다.
p.80~81
“뭐가 어때서 그래? 그렇다고 치킨을 안 먹을 거야, 영영? 자신 있어?”
지호가 오히려 당당하게 따지자 몇몇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와중에 채원이가 따지듯이 말했다.
“아니, 영영 안 먹는 건 아니더라도 오아리랑 사는 동안만큼이라도 조심할 수 있잖아. 게다가 지금 교실에 함께 있고. 넌 저 병아리 오리 소리가 들리지도 않아?”
지호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피이, 사실은 나도 오리고기 먹으면서 오아리 생각났어.
그런데 할머니 생신인데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오리백숙이라서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지호를 비난하던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도현이가 울상인 지호를 위로했다.
“아, 그랬겠다. 사정을 들으니 지호 입장도 이해되네. 함께 밥 먹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p.114
“피이, 완전 좋겠다. 정말 부러워. 우리 엄마는 내 말은 다 들어주는데, 이것만은 절대 안 된대. 생명을 기르면 죽을 때 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말해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거든?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다 한다고 했는데 절대 못 할 거래. 아니, 왜 해 보지도 않았는데 못 한다고 하는 거냐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속출하자 반려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이 쉽지 않을 거라고 어른들 말이 맞다고 했다.
p.143
“서우야, 우리 이제 보내 주자. 오아리에게도 여기보다 농장이 좋은 환경일 거야. 다행히 아빠 친구 중에 귀농한 녀석이 있어. 닭도 키우는데 그 친구라면 믿고 보낼 수 있어. 이렇게 사는 건 우리 욕심인 것 같아.”
보낼 곳이 있는 건 다행이었지만, 이별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서우도 알았다. 오아리가 좋아하던 사료도, 장난감도 모두 챙겼다. 어느새 이렇게 오아리 짐이 많아졌는지 커다란 장바구니가 네 개나 되었다. 서우는 낮에 고개를 들이밀던 오리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p.154
“나는 엄마가 미국 갈 때 나를 덜 사랑해서 놓고 간 줄 알았거든.”
“무슨 소리야.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 우리 딸인데!”
“엄마, 같이 살지 않아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울먹이는 서우를 보며 엄마도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