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다는 것은 나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공포다. 그렇다고 외운 길을 갈 형편도 되지 않는다. 길치는 길을 기억하는 데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향을 중요시한다. 이리저리 지름길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굳이 정해진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지점을 지향하며 그저 뚜벅뚜벅 걷는다. 이 글은 나의 지향과 그 여정에서의 중얼거림이다.
— 7쪽, 프롤로그 중에서
나에게 있어서 백척간두 진일보라는 선승의 문답은 진리를 향한 몸부림, 간절함 이런 것보다는 오히려 담대함 혹은 무심함에 가까운 듯 느껴져 더욱 좋았다. 나는 이런 삶의 태도를 좋아한다. 이번 생에 해탈은 글러 먹은 모양새이고, 또 삶을 초월하는 어떤 가치에 대해 매진할 의지도 크지 않다. 그래서 나는 늘 농담을 좋아한다. 삶에 진지할 일이 그리 많겠는가? 농담 90%에 진지함 10%, 어묵 국물에 간장 한 스푼, 이 정도 비율이면 삶의 간이 맞지 않겠는가? 폼 잡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삶의 기적을 믿지도 않는다. 그저 해야 될 만한 일이 있으면 툭 던지듯 하는 심정. 내가 옳다고 그리 소리치지 않고 미소 지으며 한 발 내딛는 마음. 내 삶의 모토는 ‘미소 지으며 걷는다’이다.
-22~23쪽, 1부 비움과 배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 중에서
나의 경우 정신노동 중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은 무엇인가를 쓸 때다. 물론 책을 읽고 그 의미를 자기화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경우는 상당한 정신노동을 동반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단계에서는 그저 즐겁다. 물론 괜찮은 책일 경우의 얘기이긴 하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저자에 대한 맹목적 수동성을 가지고 일단 그 내용을 흡입한다. 이 단계가 가장 유희에 가깝다. 그러고 나서 정신노동을 시작한다. 머릿속에 넣어 놓은 내용을 이리 흔들고 저리 비틀고 하며 분석하고 비판한다. 이 단계는 무엇인가를 쓰는 단계 바로 밑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래서 피곤할 때는 그저 읽기만 할 때도 많다.
나는 노는 것을 좋아한다. 논다는 것의 필수요건 중 하나는 실용성에 대한 집착을 동반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가치 있는 놀이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할 때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최고의 놀이는 운동과 책 읽기다.
-39쪽, 1부 비움과 배움, '책 읽기라는 놀이' 중에서
프랑스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임대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의 분당쯤 되는 파리 외곽도시 생클루라는 곳이었는데, 일종의 빌라였다. 이사한 지 이틀쯤 된 날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공동현관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 같은 곳에 사는 프랑스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다.
약간 의심하는 듯해서 얼마 전 2층으로 이사 온 나를 과장된 쾌활함을 더해 소개했다. 이런 스몰토크를 하며 2층 엘리베이터를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열쇠를 아무리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 프랑스인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말했다. “당신 혹시 옆 건물 사는 거 아니야?” 그랬다. 그 옆에는 쌍둥이 건물이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작별을 고하고 뛰어 내려왔다.
-54쪽, 1부 비움과 배움, ‘밖에서 새는 바가지’ 중에서
〈뉴스 앞차기〉 방송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야말로 기분이 유쾌해진다. ‘오늘은 어떻게 놀아볼까?’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앞차기의 농담을 통해 끌어올린 텐션은 자연스럽게 본방송의 열기로 이어진다.
8시 방송이 끝날 즈음이 되면 다시 마음이 설렌다. 제대로 된 첫 끼를 먹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녁 약속을 한 인물과 만나기로 한 식당의 메뉴를 생각하며 들떠 있다. 저녁 대신 점심 약속을 한 날은 저녁을 건너뛴다. 하지만 점심보다 저녁을 현격히 선호한다. 점심을 먹은 날은 방송 끝날 즈음의 설렘이 없기 때문이다. 고된 정신노동을 마치고도 별 낙이 없다는 약간의 좌절이 저녁 한 끼를 선호하게 된 까닭이다. 하루 한 끼 방송을 끝낸 뒤 먹는 식사는 상상만 해도 너무 맛이 좋다. 메뉴가 중요할 리 없다. 다 맛있다.
-70~71쪽, 2부 일상과 여행, ‘완벽한 하루’ 중에서
종합기획팀 재무예측 담당이란 이유로 회사에서 상당히 비싼 돈을 내고 외부 교육에 나를 참여시켰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한강 다리를 막 지날 때쯤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을 발견했고 무엇을 위한 줄인지도 모른 채 줄을 섰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염없이 서 있었고 끝에 다다라 보니 토익시험을 접수하기 위한 줄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멍하니 접수를 했다.
그해 MBC는 입사 요강을 갑자기 바꿨다. 토익시험 성적표를 요구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은 어느 순간이 운명처럼 느껴지곤 한다. 회사에 다니느라 시간을 내지 못하는 나를 위해, 당시 고시 공부 중이던 백수 친구가 입사 원서를 대신 접수해 줬다. 그리고 작문과목에서 썼던 글이 위의 글이다. 나는 빨려 들어왔던 그 창문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76쪽, 2부 일상과 여행, '우연이 길이 될 때' 중에서
당시 러시아계 무장세력이 크림반도 곳곳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취재 중이던 서방의 기자들이 폭행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동네 터줏대감인 이 아저씨가 총을 든 무장대원들에게 어깨를 툭툭 치며 요청하면 별다른 위협 없이 촬영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스스럼없이 농담을 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크림반도가 어떻게 될 것 같나요?”
그러자 이 아저씨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푸틴이 알아서 해줄 거예요. 러시아에 병합됩니다.”
나는 앞서 말씀드린 병합이 어려운 상황의 ‘논리’를 바탕으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참을 듣던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1달러 내기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나의 완패. 푸틴은 말 그대로 크림반도를 날름 집어삼켰다. 물론 나의 자존심과 함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도 한 방에 휴지 조각이 됐다. 나는 파리에 돌아온 뒤 이 아저씨에게 1달러를 송금하지 못했다. 전화를 걸어 계좌번호를 물어봐야 되는데 여러 가지로 부끄러워서….
-102~103쪽, 2부 일상과 여행, ‘발의 예측과 머리의 예측’ 중에서
하지만 프랑스 부부는 꽤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도 서로에 대한 유쾌한 반박과 조크 등이 없으면 재미없는 대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의 대화를 지켜보다 보면 불쑥불쑥 잘 끼어드는 것은 물론 질문을 해놓고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자기 견해를 쏟아내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 과정과 표현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심지어 구걸하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탄 거지도 왜 자신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 왜 자신에게 돈을 줘야 합당한지 서론·본론·결론을 조리 있게 완성하여 일장 연설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고, 또 말을 잘하면 물론 돈도 많이 걷힌다. 즉 ‘말’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와 재미는 이들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란 얘기다.
-120~121쪽, 2부 일상과 여행, ‘귀여운(?) 할머니와 표현의 자유’ 중에서
기자 초년병 시절 나는 ‘카메라 출동’이란 부서에 소속돼 있었다. 이른바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곳이다. 늘 비난할 거리를 찾아다녀야 하고 정신의 날을 바짝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저 내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괜찮은 고발 기자였다. 나름 방송을 하고 나면 화제가 되곤 했고 거기에 따른 권력도 체감할 수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이었던 나에게, 돈깨나 있고 권력도 있다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찾아와 무릎을 꿇는 일들도 종종 있다 보니, 젊은 혈기에 카메라와 팬의 권력이 곧 나의 권력이라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상태는 혈기방장한 나이에 인격을 가다듬는 데는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거기에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정의롭다는 착각이 체화되면 자칫 괴물이 될 수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런 면에서 나는 꽤 재수가 좋았다. 부장을 맡고 있던 선배는 회사 내에서 정의감 있고 기사 잘 쓴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분이었고, 나는 나름 그 선배의 신임을 받으며 나 자신을 컨트롤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균형에 대한 지향이 내가 망가지는 것을 막았던 것 같다.
-138~139쪽, 3부 중심과 시선, ‘카메라 앞에 서 있던 시간들’ 중에서
인터뷰어는 자신의 다음 질문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터뷰이의 말에 고도로 몰입해야 한다. 경청으로 인한 몰입이 가능할 때 인터뷰이 입장에서 볼 때 뻔하지 않은 흥미롭고 대답하고 싶은 질문들이 나온다. 인터뷰이가 말할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면 당연히 재미가 없고 인터뷰어는 자신이 다음에 할 질문에만 온통 관심이 쏠리게 된다.
나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겪는 몰입 상태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보았다. 공포의 단계를 넘어서 극도의 위험이 가져오는 고도의 몰입 상태에 돌입한 병사들은 이른바 공중을 떠다니는 듯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한 몰입 상태를 경험한다고 한다. 나는 아주 가끔 인터뷰 중에 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무엇을 물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대화를 하고 있고, 어느새 시간은 20~30분이 훌쩍 지나간 상황. 인터뷰이가 벌써 시간이 다 됐냐고 진심으로 놀랄 때는 대체로 괜찮은 인터뷰가 이뤄졌을 경우다.
-150~151쪽, 3부 중심과 시선, ‘질문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하지만 젊은 친구들과의 대화에는 나 나름대로 다른 노하우가 있다.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 있다. 내가 20대 때 품었던 삶의 근원적 의문에 대해, 나는 지금 몇 발자국이나 더 해답에 다가갔을까? 자신이 없다.
물론 나이와 지위가 쌓이면 높은 위치에 앉아 바라본다는 점에서 젊은 사람보다 많이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위치를 자신의 자아와 동일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착각이다. 이런 경우 위치가 바뀌면 자아는 쪼그라들고 시야는 다시 좁아진다. 성찰이 없으면 자아의 성장은 없다. 아니 성찰이 있어도 인간의 성장은 정말 더디다. 성인이 된 뒤 1년에 1mm만 성장해도 엄청난 성찰의 방증이다.
-172쪽, 3부 중심과 시선, ‘뉴스 앞차기’ 중에서
어쨌든 그중 가장 어렸던 동기 여기자가 내게 울상을 하며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빠, 나 무서워 죽겠어!” 막 대학을 졸업한 책상물림이 홀로 경찰서를 헤집고 다니려니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당시 험한 입은 기자들의 상징처럼 느껴지던 시대였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동기에게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임마, 나도 무서워!” 둘은 깔깔 웃었고, 그 친구는 그다음 날부터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 오랜 기억을 끄집어낸 것은, 이 당시부터 언론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인터넷이 있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정보의 유통은 더 이상 언론사들의 배타적 기능이 아니었다. 누구나 정보를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동시에 언론의 독점적 권력도 약화됐다. 인터넷 신문이 난립하면서 물론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사가 써야지 무엇인가 존재하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점이었다.
-196~197쪽, 3부 중심과 시선, ‘영원한 독점은 없다’ 중에서
그 후 오랫동안 앵커라는 직책을 가지고 살아왔다. 같은 생방이지만 앵커로서의 긴장감은 현장에서 중계차를 탈 때의 긴장감과는 색깔이 약간 다르다. 인생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젊은 기자 시절 가장 고통스럽게 기억됐던 그 중계차를 타던 때가 꽤 근사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그 미칠 듯한 긴장감이 흥분으로 기억되고, 긴장이 해소됐을 때의 속 시원함이 쾌락으로 기억된다.
책을 쓰자는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나서, 한 권의 책을 마치다 보니 또다시 양가적 감정이 고개를 든다. 쓴다는 것의 괴로움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에세이를 쓰는 것은 기사를 쓰는 것과는 다른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또한 독자들에게 나와 얘기 좀 하자고 부탁하는 것이 쑥스럽고 민망함과 동시에, 나의 중얼거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함이 용솟음친다.
-206쪽,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