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
지구촌 역사 갈림길을 맞이한 오늘날, 트럼프가 이끌어가는 미국은 21세기의 정상국가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이단적이고 야만적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마가(MAGA)라는 신기루에 취해 트럼프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는 아직도 미국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이변적 현상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바로 세계사적 역사전환을 맞아 패권지배국인 미국이 그 수명을 다해가는 즈음, 점잖은 퇴조를 택하기보다 안간힘을 쏟으면서 기존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렇지만 역사의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연적인 지구촌 역시 이러한 전환기를 맞은 것 같다. 기후위기는 이제 위기 정도를 넘어 기후재앙 수준으로 격화되고 있다. 우리 인류가 쾌적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생명공동체의 모습이 나날이 일그러지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통한 녹색전환은 자연생태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발등에 불이 붙은 듯 화급한 과제이다.
분단과 적대 및 전쟁위기로 얼룩져 왔던 한반도 역시 이제 새로운 역사이행기를 맞아 조선 본래의 평화·통일·화합의 민족공동체로 나아갈 역사적 전환기를 맞을 것이다. 우리를 에워싼 전체 구도가 새롭게 짜여 지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주조한 대(大)분단체제와 소(小)분단체제의 우리 속에 갇혔으면서도 남과 북은 각기 저력을 발휘해 왔다. 이제는 이 저력을 한껏 자주적으로 발휘하여 80년 전에 이 땅에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구축된 이 멍에의 우리를 우리 손으로 찢어 내버릴 때를 맞은 것 같다.
철부지 혐중(嫌中) 시위가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보수의 대명사라는 『조선일보』가 최근 무려 연속 7차례 사설을 통해 중국의 굴기를 다루면서 이 ‘쓰나미’를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함께 올라타 이를 넘어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 애써 외면하거나 혐오한다고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책 집필이 끝난 10월 9일 중국이 ‘독과점’하고 있는 희토류와 그 제련기술 등에 대한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미국이 중국에게 실시해왔던 반도체 등 기술수출 통제에 전적으로 맞대응을 선언한 것이다. 9월 3일 전승절 열병식에서 첨단 군사무기를 과시하여 전쟁 방식의 미국 대응을 억지하고, 열세에 놓여 있던 반도체 등의 기술자립을 거의 완공한 바탕 위에서, 중국이 대담하게 접근한 것이다.
약 500년에 걸친 서구에 의한 야만적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포악한 패권주의가 이제 종말을 향해 그 불가역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도가 실현되는 대 역사적 현장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희망과 낙관으로 이 책을 집필해 왔다.
해방둥이로서 통일둥이를 꿈꾸어 왔던 팔순을 넘긴 소생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러한 전망이 구체적으로 뚜렷이 구현될 것 같은 2035년경까지 생을 부지하여 이를 목도하고 확인하고 환희에 짧은 기간이나마 취해 보자는 것이다.
초벌 원고를 읽고 조언을 마다하지 않은 송숭락 대학동기 펜실바니아 경제학교수와, 어려운 출판사 사정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출판을 맡아주신 윤관백 선인 대표님과 까다로운 편집 일을 도맡아 주신 박애리 실장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2025년 10월 여름과 같은 가을을 맞아
강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