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으로 ‘K-축복’을 이룬 박태준의 생애와 사람됨,
박태준의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은 천하위공(天下爲公) 사상을 실천해 나간 레일이었다.
2011년 12월 향년 84세로 서거한 박태준 포스코 창립회장의 생애와 정신을 왜 ‘K-축복’이라 불러도 좋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담은 책이 『K-축복: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이다. 『박태준 평전』의 저자인 이대환 작가가 2026년 새해에 펴낸 신간이다.
프롤로그 〈‘궁핍 골짜기’에서 ‘융성 대평원’으로 건네주는 철교(鐵橋), 그 건설 총감독을 기리며 하늘에 띄우는 편지 10장〉은 작가가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 10편이 실려 있다. 1968년부터 1992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포스코를 이끌며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 역활을 완벽하게 감당하면서 공기업 포스코를 세계 최고로 육성한 박태준의 역사적 공적에 대해 이 작가는 세계 최빈국이라는 ‘궁핍 골짜기’의 한국사회를 ‘융성 대평원’으로 건네주는 철교 건설의 가장 탁월한 총감독이었다고 평가한다. 8번째 편지 ‘산업화와 민주화의 화해, 그 국민통합의 디딤돌’에는 국가 장래를 내다보는 거시적 안목으로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정치적 화합”을 외치는 고희(古稀)의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1997년 12월 5일 김대중 대통령 후보와 함께 경북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게 된 시대정신, 경위, 연설 요지, 사진 등을 담고 있다. 김대중 캠프에서 박태준 총재와 소통한 젊은 인재는 현재 이재명 정부의 국무총리인 김민석 의원이었다. 그때 DJ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화해하는 명연설을 남겼다. “고인이 경제에 7할을 바치고 인권에 3할을 쓴 분이었다면, 고인과 정치적으로 대결하던 시절의 나는 인권에 7할을 바치고 경제에 3할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고인과 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대립과 갈등을 멈출 줄 모르는 우리 사회가 ‘국민통합의 디딤돌’로 삼고 기려야 마땅한 시대적 중대사였다. 그러나 그날 그 자리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든 작금의 현실에 대해 이 작가는 “김대중-박태준의 그 선각(先覺) 자리에 기념비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개탄한다.
제1부 〈박태준의 길, 천하위공의 길〉은 이 작가가 박태준 정신을 탐구한 에세이 한 편이다. 2011년 1월 하노이국립대학 특별강연에 담겼던 박태준 정신의 요체와 젊은 세대를 향한 그의 메시지를 전제한 데 이어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이 가리키는 대로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두 레일을 따라 완주하며 천하위공 사상을 실천한 박태준의 생애를 정신적 설계도처럼 그려놓은 글이다. 천하위공이란 ‘천하가 모두 공적인 것이 된다’, ‘천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신해혁명을 이끈 쑨원[孫文]이 중시했고, 해방공간에서 백범 김구도 소중히 여긴 말이다. 대한중석 사장(1965-1967)으로서 남몰래 대학 설립을 꿈꾼 때부터 천하위공을 영혼에 보듬었던 박태준은 1970년대∼80년대의 포스코에서 선구적으로 사원주택제도, 장학제도, 복지제도 등을 실행하고 유치원·초·중·고 14개교, 포스텍(포항공대), 포항방사광가속기 등을 설립하면서 천하위공을 실천하는 한편, 포스코에서 공로주 1주조차 받지 않고 1992년 10월 5일 “사람이란 때가 되면 진퇴를 명확히 해야 한다”라며 회장직에서 스스로 사퇴하여 인격체로서도 천하위공의 모범을 남겼다. ‘하노이에서 길을 가리키다’, ‘일류주의, 그 고투의 길과 천하위공’, ‘정치 참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진정한 극일파(克日派), 그 영혼에 맺힌 말들’ 등으로 짜인 에세이를 통해 이 작가는 “『박태준 평전』의 작가로서 나는 주인공의 최고 매력으로 정신적 가치를 최상 가치로 받드는 삶의 태도를 꼽는다. 박태준은 모든 공사(公事)를 철저히 그것으로 관장하고 처리했으며, 그것으로 물질적 유혹을 제압하고 배격하면서 천하위공 사상을 실천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작가는 이 에세이를 다음과 같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마무리한다. 황혼기의 박태준이 소망했던 국가적 대업이 지금도 이뤄지지 않고 비원(悲願)으로 떠돌기 때문이다.
‘대통령 김대중의 뒤를 이은 대통령 노무현은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려는 가시밭길의 정치적 궤적을 남겼다. 포스텍 노벨동산의 박태준 조각상과 서울 현충원의 박태준 묘소를 참배했던 대통령 이재명은 선거 유세나 취임사에서 유난히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남북 화해와 평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정치적 화합, 그 바탕 위의 국민통합. 박태준의 영혼에 박혔던 두 비원은 2026년 새해에도 여전히 우리의 비원으로 걸려 있다. 그 실현의 길을 AI에게 물어본들, AI가 정답을 내놓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역사는 늦게 오는 자를 처벌한다지 않나. 늦어도 너무 늦어졌다.’(72-73쪽)
제2부 〈박태준은 우리의 축복이다〉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회장, 류찬우 풍산금속 창업회장 등 한국경제의 근간을 만들고 작고한 11인과 생존한 2인의 박태준에 대한 인물평을 모은 글이다. “박태준은 경영자의 살아 있는 교재”(이병철 회장), “국영기업으로 종합제철을 성공한 것은 박태준이 총괄하는 포철뿐”(정주영 회장), “청렴한 박태준의 인품에 끌려 종합제철 기본계획을 그냥 넘겨줬다”(신격호 회장), “박태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국익(國益) 지상주의자”(류찬우 회장), “박태준의 청렴결백 철학과 바른 건의를 듣는 안목 덕분에 행복하게 일했다”(황경로 포스코 2대 회장) 등 우리의 거장들이 일찍이 밝혀놓은 박태준의 진면모와 만날 수 있다.
2026년 봄날에 40번째 신입생을 맞으며 한국 최고 연구중심대학을 넘어 세계적 이공계 대학으로 성장해 나가는 포스텍을 박태준 포스코 회장과 함께 설립했던 김호길 초대총장, 이대공 포항공대건설본부장의 글도 담겨 있다. 포항에서 태어나 포스코에 근무했고 현재도 포항에 살고있는 이대공 애린복지재단 이사장은 “K-팝, K-뷰티, K-푸드 등에 이어서 요즘 들어 부쩍 ‘K-방산, K-조선’이란 말도 우리 국력에 대한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있는데 그 기반을 조성하는 역사적 대업에 ‘무사욕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앞장선 박태준 회장의 삶과 정신은 우리에게 언제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K-축복’이다.”라고 평가했다.
제3부 〈박태준은 한국의 축복이다〉는 일본 총리를 지낸 후쿠다 다케오, 나카소네 야스히로, 다케시타 노보루를 비롯해 데이비드 로데릭 미국 US스틸 회장, 유고 세키라 오스트리아 내셔널그룹 회장, 헬무트 하세크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장, 로베르 미테랑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친형, 엘리저 바티스타 브라질 CVRD사 대표 등 작고한 외국 저명인사 17인이 남겨둔 박태준에 대한 인물평을 모은 글이다. “박태준은 불같은 의지와 신념의 사내로서 거시적인 안목의 설계자이다.”(후쿠다 다케오), “박태준은 진정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제 신사이다.”(나카소네 야스히로), “박태준은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생각하는 리더십을 지녔다.”(다케시타 노보루),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 박태준은 한국의 행운이다”(헬무트 하세크), “마음을 휘어잡는 리더십을 지닌 박태준은 한국의 축복이다.”(유고 세키라), “박태준은 미래지향적인 지도자이며 뛰어난 친화력의 소유자이다.”(데이비드 로데릭), “박태준은 신비한 느낌을 주는 동양의 거인이자 유머 감각이 뛰어난 세계인이다.”(엘리저 바티스타), “박태준은 한국에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로베르 미테랑) 등 어느덧 35년∼40년 전쯤 외국 저명인사 17인이 예리하게 읽어냈던 ‘사람 박태준’의 인간적 색채와 정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제4부 〈태어나서 곧 사라질 뻔한 포항제철(POSCO)이 전화위복의 새 지평을 열어젖히는 그날까지〉는 이대환 작가가 포스코 창립 전사(前事)부터 포항제철 착공까지를 정리한 연대기적 서술이다.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 피츠버그 방문을 계기로 한국정부가 서방 5개국 8개사 컨소시엄(KISA)과 추진한 포항종합제철(POSCO) 건설은 포철 창립 직후에 그들의 배반으로 좌절하게 된다. 그때 포철은 자본과 기술, 경험과 자원이 없는 무(無)의 상태였다. 여기서 빈손의 박태준은 대일청구권자금 일부를 포철 건설에 전용하자는 자신의 ‘하와이 구상’에 대해 대통령의 승낙을 받는다. 이것은 착공도 해보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던 포스코에 기사회생과 전화위복의 새 지평을 열어젖히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래서 1965년 5월 박 대통령의 피츠버그 방문으로부터 5년이 지나고 1968년 4월 포스코 창립으로부터 2년이 지난 1970년 4월 1일 마침내 포항제철 착공식이 영일만 백사장에서 열릴 수 있었다.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한 편의 흥미로운 에세이처럼 읽기 좋게 정리해놓은 이 작가는 ‘박태준의 하와이 구상’과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제철보국의 길로 나아간 포스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 간택하고 관장한 특정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운명은 포항종합제철, POSCO의 운명으로 전화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 의지가 지명한 운명은 회피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다. 회피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진작에 처음부터 운명이 아니다.’(4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