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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 프랑스사

유럽의 한복판에서 펼쳐진 또 하나의 세계사


  • ISBN-13
    979-11-7087-431-7 (03920)
  • 출판사 / 임프린트
    ㈜휴머니스트출판그룹 / ㈜휴머니스트출판그룹
  • 정가
    50,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6-01-26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주경철
  • 번역
    -
  • 메인주제어
    유럽사
  • 추가주제어
    역사 , 일반 및 세계사
  • 키워드
    #유럽사 #역사 #일반 및 세계사
  • 도서유형
    종이책, 양장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10 mm, 960 Page

책소개

유럽의 한복판에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변이들과 씨름해 온”

프랑스의 역사를 통해 전환기 인류가 나아갈 길을 찾는다.

 

일국사를 넘어 세계사적 통찰을 일깨우는 

가장 최신의 프랑스사

 

 

프랑스사 전문가들의 강력 추천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통사라는 큰 과제에 용기를 내주어 고맙다. _임승휘(선문대)

★ 수많은 버섯 채집꾼의 연구를 섭렵하고 종합한 최고 낙하산병의 대작! _권윤경(서울대)

★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 앞에 당도한 역사적 통찰! _강석환(세종대)

 

탄탄한 연구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대중에게 역사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 온 서양사학자이자 역사 스토리텔러 주경철 교수가 2026년 2월 은퇴를 앞두고 지난 40년의 연구를 총망라해 프랑스사 전체를 조망한 통사를 내놓았다. 갈리아 문명의 탄생에서 왕국의 등장, 프랑스혁명과 세계대전을 거쳐 21세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 프랑스사를 조망한 이 책은 ‘피로 만든 다양성의 나라’ 프랑스가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압박을 이겨 내고 현대 세계 문명의 주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1,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엮어 냈다. 통사라는 무게에 걸맞게 진지하면서도 특유의 위트도 놓치지 않은 주경철 교수의 글쓰기는 전환기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 세계사적 통찰을 안겨 줄 것이다. 

 

 

1. 이 책의 주요 내용

 

최고의 낙하산병 주경철 교수가

수많은 버섯 채집꾼의 연구를 섭렵하고 종합해 내놓은

각국사의 새로운 전범

―낡고 오래된 프랑스사를 대체하는 가장 최신의 통사

―장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인사이트

 

주경철 교수는 독보적 연구와 역사 대중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보기 드문 역사학자다. 그런 그도 프랑스사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신의 연구 분야를 넘어 통사를 쓰는 것은 역사학자라면 한번 꿈꿔 볼 수는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랑스사만 하더라도 최신의 연구 성과와 오늘의 성찰을 담은 마땅한 텍스트가 없다. 

하지만 장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봐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도 긴 시간 여러 일들의 누적 속에서 파악해야만 ‘우상화’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프랑스사 전체를 관통하는 관념적 주장은 가급적 피하고, 특정 사건이 엄청난 역사적 굴절을 가져왔다는 식으로 단정하지 않으며, 지난 시대 역사가들의 논의 위에 새롭게 입혀진 최신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역사 경험의 재료를 잘 요리해 내놓음으로써 역사 읽기의 즐거움과 효용을 만끽하게 한다. 여기에 더해 그의 글 사이사이에 결들인 150여 컷의 도판과 지도, 책 말미에 실은 연표와 계보도는 독자에게 음료와 디저트가 되어 줄 것이다. 

특히 각국사가 또 하나의 세계사로 읽히도록 한 주경철 교수의 폭넓은 시야와 노련한 역사 기술은 가히 탁월하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을 계기로 역사의 큰 흐름을 정리하는 여러 시도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수준 높은 성취와 가혹한 실패의 콘트라스트가 강렬한

그래서 매우 탁월한 역사적 샘플, 프랑스사!

―246가지 치즈만큼이나 다양한, 폭력과 품격이 길항하는 프랑스 

―근현대 문명의 격정적 실험실을 읽는 천 개의 시선

 

프랑스는 매우 넓은 국토에서 문화적으로 지극히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 결과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하기 힘든 수준 높은 성과들을 얻었다. 정치적으로 유럽 최강국 지위를 누리기도 했고, 계몽주의 시대 루소와 볼테르, 몽테스키외 같은 사상가들을 배출하며 유럽의 문화를 이끌기도 했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현대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칠 제도들을 시험했으며, 흑인 노예 해방이라는 인류애 넘치는 원칙을 최초로 선포했다. 그렇지만 이 나라가 그런 긍정적 측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루이 14세와 나폴레옹의 시대는 끊임없이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여 거의 히틀러 시대와 유사한 성격을 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혁명은 국가 권력이 지방 주민들을 가혹하게 학살한 제노사이드에 가까운 측면도 드러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제국주의 침략을 하여 비인도적 학살과 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프랑스는 완전히 선한 나라도, 완전히 사악한 나라도 아니다. 그 두 측면들을 다 가지고 있되 그 양태가 강렬하여 콘트라스트가 매우 강한 흥미로운 경험을 보여 준다. 

이 강렬한 대비는 아주 흥미롭고도 탁월한 역사적 샘플이 되어, 지금 우리 앞에 즐비한 여러 문제에 대해 통찰을 준다. 특히 그동안 통념처럼 자리 잡은 지난 시대 연구를 넘어 최신 연구와 주경철 교수만의 예리한 해석을 곁들여 프랑스사, 나아가 유럽사를 읽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사에서 특출한 의미를 띤다. 1643년에서 1715년까지, 72년 3개월 18일의 재위 기간은 프랑스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이 긴 기간 동안 프랑스는 유럽 내 최강국의 지위를 누렸다. 루이 14세의 치세는 프랑스가 정치 군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패권을 차지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각국에서는 베르사유궁을 모방한 궁전들을 짓고 왕실과 고위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배워 대화했다. 그는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추구하며 스스로 알렉산드로스에 비견할 만한 위대한 군주로 기억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그것을 위해 프랑스와 이웃 국가 주민들은 심대한 고통을 치러야 했다. 치세의 절반을 전쟁으로 보냈으며, 위그노를 압박하여 사실상 축출했고, 전비를 마련하느라 조세 수취와 대부를 강요했다. 그런 면에서 20세기의 히틀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태양왕이라 불리지만 그 이면에는 암울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5부. 근대의 서막 (411~413쪽)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에 따르면, 프랑스혁명은 전적으로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포악한 행위만 범한 것도 아니니, 자유, 평등, 형제애를 원하면 기요틴, 9월 학살, 방데와 슈앙 반란 진압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리라. 혁명은 이런 끔찍한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와 국민을 탄생시켰다. … 이제 프랑스인들은 왕 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끔찍한 경험이었으나 그런 혼란을 겪으며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체제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어쩌면 그런 체제가 더 나을 수 있다는 희망도 품었다. 

―6부. 계몽주의와 혁명 (596쪽)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압박을 견디며 탄생한 프랑스, 

현대 세계 문명의 핵심 요소를 만들다

―프랑스사가 세계사의 시간과 공간에 남긴 유산 

 

프랑스사는 결코 순조롭고 평화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지방의 독립성을 지키거나 혹은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방향의 확장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격렬한 쟁투를 벌이곤 했다. 그 강렬한 싸움이 어찌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지, 마르크 페로(Marc Ferro) 같은 역사가는 프랑스사의 키워드를 ‘내전(civil wars)’으로 꼽았을 정도다. 동시에 프랑스는 늘 주변 국가들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대륙의 중앙부에 위치한 까닭에 이웃의 강력한 적들과 대결하는 것이 이 나라의 숙명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먼 과거부터 완결된 단위로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처럼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압박을 견디며 장구한 기간에 걸쳐 진화해 온 과정의 결과물이다. 한편으로 지방사, 다른 한편으로 유럽사 및 세계사와 부딪치며 고군분투해 온 프랑스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마르크 페로 같은 역사가는 프랑스사의 키워드를 내전으로 꼽을 정도다. … 14~15세기 백년전쟁, 16세기 종교전쟁, 17세기 프롱드의 난과 농민 봉기, 18세기 프랑스혁명, 19세기 파리 코뮌, 20세기 초의 드레퓌스 사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비시 정권, 해방 후의 알제리 전쟁과 68운동 등 몇 가지 굵직한 사건들만 예로 들어 보아도, 이 나라의 역사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격한 충돌을 겪으며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동시에 프랑스는 늘 주변 국가들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 왕권과 영토를 놓고 잉글랜드와 벌어진 전쟁, 독일 종교개혁 세력과의 갈등, 합스부르크 세력과 유럽 패권을 놓고 벌인 전쟁들, 해외 식민지 경쟁, 혁명의 전파를 두려워한 이웃 국가들과 벌인 혁명전쟁,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등 이 나라 역사는 일견 전쟁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롤로그 (6~7쪽)

 

프랑스는 수많은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압박을 견디며 결과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결실을 맺었다. 현대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문명 요소들이 이 나라에서 발아되고 숙성되어 전파되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칙들과 제도들, 계몽사상 이후 현대 철학에 이르는 지적 성취들, 산업화의 성과들, 고도의 예술적 작품들로부터 프랑스 요리와 패션에 이르기까지 세계인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많은 요소들이 이 나라의 치열한 역사 현장에서, 반복적인 역사 실험을 통해 탄생했다.

 

1874년 4월 15일, 파리 카퓌신 거리에 위치한 사진작가 펠릭스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제1회 인상파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는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등 공식 살롱의 보수적 심사에 반발한 젊은 화가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개최한 것으로, 그들이 결성한 단체는 “화가·조각가·판화가 유한책임협동조합”이라고 명명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가 모네의 작품 〈인상, 일출〉을 두고 조롱하는 어조로 오직 인상에 불과하다고 쓴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이들이 ‘인상파’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후속 전시를 통해 인상주의가 확립되었고, 서양 회화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7부. 변화와 가능성의 세기 (710~712쪽)

 

 

이 책의 명품 조연들

―150여 컷의 그림, 사진, 지도

―프랑스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연표

―프랑스사의 역대 국왕 계보도와 공화정 시대 대통령 목록


 

 

목차

프롤로그 

 

1부 갈리아 문명, 프랑스 이전의 프랑스

 

1. 갈리아인과 켈트족 

갈리아인은 어떤 사람들인가|두 단계의 문화: 할슈타트와 라텐|로마와 접촉한 갈리아 세계

2. 로마와의 충돌 

마살리아에 정착한 그리스인들|갈리아 전쟁

3. 갈로-로마 프랑스

도시화와 갈리아 귀족|갈리아 엘리트와 유어제티즘

4. 로마제국의 쇠락과 기독교화

제국의 위기|기독교의 승리|마르텡 성인의 전도

 

 

2부 왕국의 시작, 프랑크왕국

 

1. 게르만족 이동에서 메로빙거왕조 성립까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신화|새로운 틀|메로빙거왕조 프랑크왕국|왕국의 분할: 부르고뉴,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행정과 프랑크 교회|폭력적인 사회?|카롤루스 마르텔의 사라센 격퇴와 피핀 가문의 흥기

2. 사를마뉴의 시대 

욕망과 전투로 정당성을 확보하다|정부 조직|제국과 교회|경제적 번성|샤를마뉴 제국의 쇠락|프랑크 세계의 봉건화|경건왕 루이 시대의 위기|내전|제국의 분할

 

 

3부 역동의 시대, 카페왕조

 

1. 카페왕조의 성립과 발전 

위그 카페의 등장|네트워크 형상의 영토|국왕의 실체|교회가 통합성을 주조하다|십자군

2. 12세기의 프랑스

정점을 향한 팽창|도시의 세계|학문의 발전|계서화된 사회와 문화|자기 왕국의 정복: 루이 7세와 플랜태저넷왕조

3. 왕권의 정립 

필리프 오귀스트가 국왕권을 장악하다|1214년 7월 27일 일요일 부빈 전투|미디의 저항: 카타르 이단과 알비 십자군|성왕 루이의 신화|십자군전쟁 참전|왕권의 안정화

4. 카페왕조 말기 

제도의 변환|기욤 드 노가레|신전기사단 사건|성장의 중단 그리고 봉기들

 

 

4부 위기의 시대, 발루아왕조

 

1. 14~15세기 프랑스의 위기

서유럽 교회의 분열|서구의 일반 위기|전쟁 세금 봉기|위기에 대한 저항

2. 도전받는 발루아왕조

왕조 초기의 어려운 정착|백년전쟁의 원인들|전쟁의 양상|푸아티에 패배|위기의 절정|발루아왕조의 회생

3. 위기에 몰린 프랑스왕국

제후 그리고 제후령|국왕의 광기 그리고 왕실과 귀족 갈등|트루아 조약|잔 다르크

4. 왕국의 재건설 

정복과 사면|왕국의 재건설|루이 11세|지방 귀족들과의 갈등|담대공 샤를의 최후|샤를 8세와 루이 12세: 정복 왕조|프랑스는 어떤 나라로 발전할 것인가

 

 

5부 근대의 서막

 

1. 대륙과 대양 

카를 5세의 ‘제국’|이탈리아 정복의 꿈|유럽의 각축장 이탈리아|프랑스의 해양 팽창|프랑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2.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 

개혁이라는 공동의 소망|칼뱅의 개혁교회|격해지는 폭력|왕조 문제|앙리 4세와 낭트 칙령|종교 문제와 왕권의 문제|앙리 4세의 신화

3. 리슐리외와 마자랭: 추기경의 시대 

루이 13세의 왕권 행사|속은 자의 날|합스부르크와 전쟁의 재정 부담

4. 루이 14세의 통치 

초기의 혼란|국왕의 친정|전사 국왕|군사력 강화|건축가 국왕|종교 문제|루이 14세와 식민지|경제 및 재정 정책 논의|부르주아의 승리?|한 시대가 가고 있다

 

 

6부 계몽주의와 혁명

 

1. 빛의 세기의 시작

성장의 시기|경제적 이륙|도시의 진화|행복의 개념, 종교적 변화|계몽주의의 정체성|‘프랑스적 유럽’ 그리고 불확실성의 시대

2. 불가능한 개혁

재정 문제의 심화|국내외 정치 정세의 변화|마지막 영토 팽창: 로렌과 코르시카|국가의 개혁|경제의 개혁: 중상주의 대 중농주의|종교와 문화|튀르고와 네케르의 면직 그리고 봉건적 반동|재정 적자, 경제 위기|삼부회

3. 혁명의 시대

궁지에 몰린 왕정, 1789년 베르사유|파리, 7월 12~17일|종교 문제|입헌군주제|부르봉왕조의 몰락|혁명전쟁과 혁명의 격화|공포정치|방데 반란 |부르주아 공화정|혁명이 만들어 낸 세계

4. 나폴레옹 시대 

독재에서 제국으로|제국의 확대|제정의 성과|전쟁의 비극적 과도함|종말의 시작

 

 

7부 변화와 가능성의 세기

 

1. 낭만주의 시대의 왕정 

왕정복고, 불안정한 타협|백일천하|중도파의 개입|1830년 7월혁명|노동 문제와 사회적 보수주의|7월왕정의 끝, 체제의 강경화

2. 열망과 공포, 질서와 혁명 사이

1848년 2월혁명|민주주의의 흥분|공화적 질서에서 제국적 질서로|‘붉은 유령’의 공화정|제국의 정치 기제들|제2제정의 변화와 발전|경제적 변화|문화와 감수성|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

3. 파리코뮌 

파리코뮌 선포|피의 주간

4. 형성 중인 공화정 

공화정의 착근 단계들|드레퓌스 사건|사회적 긴장과 위험의 증가|절대적 의회주의|공화주의적 상상|쥘 페리의 학교 관련 법|논쟁 중의 민족|식민지 시련 속의 공화정

 

 

8부 격변의 세기

 

1.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프랑스의 취약성|마른강의 기적에서 베르됭의 소모전까지|엄청난 희생 끝의 종전|세계대전이란?|세계대전의 피해

2. 전간기 

의회민주주의의 표면적 승리와 대안 모델|1920년대의 희망|독불 화해의 꿈|인민전선

3.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비시, 대독협력의 길로 이행하다|레지스탕스|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해방까지

4. 제5공화정을 향하여 

혼란과 충격, 각성|제4공화정의 탄생|장기적 재생|탈식민화의 충격|알제리 독립|제5공화정의 제2의 탄생

5. 68혁명 

1968년 5월|폭력의 불가능성, 말의 성찬

6. 현대 프랑스 

1970년대의 위기|사회·문화적 변화

 

에필로그 

부록: 프랑스사 연표 | 역대 주요 통치자 | 이미지 출처 및 소장처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본문인용

프랑스의 기원을 베르생제토릭스의 항전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해가 프랑스 원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베르생제토릭스를 민족 영웅으로 고양한 역사학자 쥘 미슐레가 대표적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제3공화정 시기에 민족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분위기를 반영한다. … 나치에 복종한 비시 정권의 지도자 필리프 페탱은 자신을 베르생제토릭스와 동일시했다.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지배자와 협력하여 평화를 구축했다는 식인데, 이는 나치 부역에 대한 변명이었다. 이처럼 베르생제토릭스는 여러 의미에서 민족 영웅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의문이 제기되었다. … 《갈리아 전기》는 자기선전이 목적인 글이다. 광대한 갈리아가 강하게 저항했지만 정복했다는 식으로 서술하여 자신의 위업을 과장했다. 그러나 갈리아의 부족들 모두 로마에 저항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치 프랑스 민족 전체가 외적의 침략에 저항했고, 베르생제토릭스가 그런 저항을 주도한 민족 영웅이라는 식으로 의미 부여하는 것은 왜곡이다. …

―1부 갈리아 문명, 프랑스 이전의 프랑스 (42~44쪽)

 

푸아티에 전투는 기독교권 입장에서 중요성을 지극히 과장했다. 상대인 우마이야왕조는 지중해 동쪽에 중심지가 있고, 이들의 지상 목표는 콘스탄티노플 정복이었다. 711년 에스파냐 정복은 상당 정도 우연의 산물이었다. … 에스파냐에서도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갈리아는 사실 너무 먼 타깃이었다. 721~737년 약 10여 년간 공격이 이어졌으나 규모는 바이킹보다 작았으며, 정복보다는 갈리아 남부의 교회 약탈이 목적이었다. 카롤루스 마르텔이 볼 때는 무슬림이나 작센족이나 같은 이단이어서, 애초에 기독교 대 이슬람의 대결이라는 의식도 없었을 터이다. 이 시기에는 아직 십자군이나 지하드 개념도 없었다. 이 전투는 종교 전쟁이나 성전이 아니며, 따라서 문명 충돌로 보아서는 안 된다. … 

―2부 왕국의 시작, 프랑크왕국 (104쪽)

 

필리프 오귀스트(필리프 2세)는 … 1223년 7월 14일 오랜 치세 끝에 죽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본격적인 왕실 장례 의식을 거행했다. 이때 신체는 죽었으나 승계는 보장된다는 의미를 창안했다. 죽음을 맞는 신체의 몸이 있으나 죽지 않는 몸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국왕의 몸이 죽는다 하더라도 국왕의 기능은 그대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왕이 죽으면 이렇게 소리친다. “국왕께서 승하하셨도다, 국왕 만세!” 이것이 소위 국왕 이체론(二體論)으로, 국왕권 강화를 통한 국가 권력 안정의 중요한 상징이다. 살아 있는 왕은 언젠가 소멸하게 될 육체를 지닌 인간적인 존재이지만, 왕국을 지배하는 최고 주권자로서 왕은 초시간적인 영원불멸의 존재다. 이후 국왕 이체론은 프랑스 군주정을 지탱해 온 정치신학이 되었다.

―3부. 역동의 시대, 카페왕조 (207쪽)

 

 

잔 다르크는 1431년 재판으로 화형에 처해졌으나 1455년 복권 재판으로 이전 판결이 뒤집혔다. 과연 그녀는 마녀인가, 이단인가, 성녀인가, 혹은 열혈 애국 소녀인가? 잔 다르크 생시부터 그녀의 성격에 관한 논쟁이 지속되었다. … 많은 사람들은 잔 다르크를 성처녀(Pucelle)라 부른 반면,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천치(idiote), 몽테스키외는 ‘경건한 협잡’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녀를 애국적인 영웅으로 복권한 것은 미슐레다. 그러나 곧 사회주의자들이 자기편으로 삼아 조레스 등은 ‘세속의 성녀’ 식으로 표현했다. 그 후 가톨릭교회가 1909년에 복자로 시복하고 1920년에 성녀로 시성했는데, … 극우부터 극좌까지 모든 정치 파당이 잔 다르크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다 쓰려고 했다. 잔 다르크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한다. 예컨대 농민의 딸이 아니라 귀족의 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검 다루는 법을 알 수 있는가? 왕세자와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가? 심지어 화형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1436년 라로셸 전투에 참전했다는 주장도 있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설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4부. 위기의 시대, 발루아왕조 (289~290쪽)

 

루이 14의 치세 중 부르주아가 번성하고 귀족이 쇠락했다고들 이야기해 왔다. 생시몽(Saint-Simon)은 회고록에서 귀족이 몰락하고 콜베르 같은 더러운 부르주아지가 번성했다고 서술했다. 귀족의 쇠락으로 권력이 독재로 변질했다고 이야기하는 학자도 있다. … 이상의 내용이 19세기 스타일의 역사 해석이었다. 이들이 보기에 루이 14세는 절대군주이고, 콜베르는 성실한 부르주아의 모델로서, 왕정과 공화정을 이어 주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 과연 귀족이 이처럼 몰락하고 부르주아가 밑에서 올라오고 있었는가? 최근 연구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우선 콜베르는 무(無)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의 가문은 재정과 공직에 오래 머물렀던 가문으로서, 딸들은 모두 공작이나 고위 귀족들과 결혼했다. 과연 그는 부르주아의 승리를 대표하는가? 귀족이 몰락했는가? 사실 궁정에는 귀족들이 득시글거린다. 베르사유궁 안에 거처를 정한 대귀족만 360명에 달하는데, 왕과 함께 사냥하며 놀았고, 또한 지방에 통치자로 파견되었다. … 최근 연구들은 재정가들이라는 벼락출세자 뒤에 있는 진짜 전주(錢主)는 대귀족인데, 이들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재정 사업에 투자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 귀족들이 일종의 부르주아화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5부. 근대의 서막 (466~467쪽)

 

프랑스혁명 시기 학살의 성격에 대해서는 논쟁 중이다. 어떻게 이런 가공할 일이 가능했는가? 어쩌면 혁명을 배태한 프랑스 사회 자체가 폭력적이었다. 루이 16세가 고문을 폐지했지만 그 이후 혁명기에도 고문은 계속되었다. 개인들도 폭력으로 문제를 풀고 귀족들은 리슐리외가 금지했는데도 결투를 지속했다. 폭력은 프랑스 사회 내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그러므로 혁명기 폭력은 기존 폭력이 격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은 바로 이 혁명기가 현대 프랑스의 탄생기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가만 폭력을 독점하고 시민들이 다른 종류의 폭력에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이 만들어진 시기라는 점이다. 폭력이 극단적으로 분출하면서 시민의 폭력을 배제하기로 한 매우 모순적인 시기임에 틀림없다. 

―6부. 계몽주의와 혁명 (595쪽)

 

1799년에서 1804년까지 프랑스는 ‘독재’ 상태에서 제국으로 이행해 갔다. 이때 ‘독재’란 로마 공화정에서 사용한 의미이다. 카이사르가 공화정의 독재관이 된 것은, 원로원이 합법적으로 그에게 6개월간 예외적 권한을 주어서 위기에 처한 로마를 구하라고 한 법률적 행위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이 일시적인 권한을 영구적인 것으로 바꾸어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고 암살당했다. 나폴레옹의 경우 ‘독재’는 과한 표현이기는 하다. 사실 무월 18일 쿠데타는 보나파르트, 로제 뒤코, 시에예스 3명의 집정관을 낳았다. 그중 제1집정관이 조만간 예외적 권력, 즉 대권을 장악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선 집정부제는 아직 공화정이다. 다시 말해 1792년 만들어진 체제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는 또 공포정치에 비견되는 예외적 상황에서 벗어나 합법적 상황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구나 로마에 집정관이 두 명 존재한 것과 견주어 이 시대 프랑스에서 세 명의 집정관을 둔다는 것은 권력 통제 성향이 오히려 더 강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나폴레옹은 총재정부가 폐기한 보편선거도 부활했다. … 이렇게 합법성을 확보한 덕분에 행정 권력은 사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그보다 더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르네 레몽에 따르면, 보나파르티슴의 핵심은 집정부제부터 자리 잡은 것이다.

―6부. 계몽주의와 혁명 (602~604쪽)

 

루이 필리프에게 중요한 소품은 우산이었다. … 어느 날 비가 억수로 오는데 우산 없는 한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국왕은 우산을 함께 쓰고 공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얼마나 따뜻한 지도자인가! 루이 14세가 태양왕이라면 그는 우산왕으로 통했다. … 1831년 6월 12일 국왕이 메스(Metz)에서 열병식을 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부가 망토를 건네주려 하자 국왕은 도로 가져가라는 손짓을 했다. 병사들이 망토를 입고 있지 않았으니, 국왕이 홀로 비를 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비에게 쓴 편지에서 루이 필리프는 그때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총명한 국민들이 내 생각을 번개같이 알아채고는 ‘브라보!’, ‘국왕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소. 이 일화는 순방 여정 내내 각지로 퍼져 나갔소.” 함께 비를 맞겠다는 표시는 특권의 종식과 평등을 상징했다. … 이후 통치자가 국민들과 함께 비를 맞는 일은 프랑스의 전통이 되었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인 11월 11일 행사에서 프랑스 대통령들은 흔히 루이 필리프처럼 비를 맞곤 했다. 특히 샤를 드골 대통령이 군모를 쓰고 의연하게 비를 맞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7부. 변화와 가능성의 세기 (663~665쪽)

 

… 파리코뮌과 관련한 소문과 신화가 만들어졌다. 의도적으로 파리 각지에 방화한 여자들 이야기, 인질들을 처형하는 장면을 합성한 사진작가 아페르의 작품들, ‘93년의 하이에나와 코뮌의 고릴라’ 식으로 폄훼한 테오필 고티에의 문학작품 등이 그런 예다. 이후 시기 코뮌 혁명은 심리적 병리 현상으로 파악되었다. 공화정과 사회주의 간 화해는 지극히 어려워졌다. 19세기에 타진했던 민중 자치의 가능성은 지워졌다. 코뮌은 좌파에게는 영웅적 신화로 남았으나, 우파에게는 살인범과 방화범이 날뛰는 무질서의 온상으로 기억되었다. 되돌아보건대, 오스만화는 붉은 교외 지역에 노동자들을 모으고 시내 지역을 보수적 부르주아 구역으로 만들어 갈등의 지리적 구분을 만든 효과를 냈다.

―7부. 변화와 가능성의 세기 (732~733쪽)

 

전쟁을 겪은 후 사회의 전반적 성격에 변화가 있었는가? 조르주 모스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 사회가 전반적으로 ‘잔혹화’했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참호전, 집단 학살, 비인간적 처우 등의 공포스러운 경험이 문화적 영향을 미쳐서 폭력이 정상이 되고 더 나아가서 명예롭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병사들은 전쟁에서 겪은 폭력의 경험을 일상으로 가지고 왔다. 전쟁 프로파간다는 희생, 훈련, 복종 등을 이상화하면서 전사자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또 참호에서 대량 죽음에 노출된 경험이 폭력을 정당화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전후 사회는 갈등 해결에 폭력이 정당한 도구라고 보게 되었다. … 미술, 문학 등도 죽음, 희생, 영웅주의를 자주 거론하고 이를 국민 동질성의 일부로 만들었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모든 퇴역 군인이 폭력을 찬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평화주의에 경도되었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보다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잔혹화’ 테제가 잘 맞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 돌아왔다는 느낌, 환희 등의 감정이 컸고, 폭력에 찬동하기보다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즐겁게 노는 오락 분위기가 강했다. …

―8부. 격변의 세기 (797~798쪽)

 

 

68운동은 ‘혁명답지 않은 혁명’이었다. 애초에 혁명적인 전복을 원하지도 않았고 가능성도 없었다. 어쩌면 그처럼 실현 불가능한 ‘가짜 혁명’이었기에 함성이 더 크고 화려했는지 모른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을 원한다며 격렬한 항의를 했으나, 사실 어떤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다만 막연하게 혁명과 해방을 외치고 있었다. 드골로 대변되는 우파 자유주의든 극좌 소비에트 공산주의든 기성 체제를 넘어서는 그 어떤 해방된 새로운 체제를 원한다고는 하는데, 그것이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자신들도 명확히 알지 못했다. 진정성 있는 혁명 프로그램이 없는 대신 말의 성찬이 펼쳐졌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상상력에 권력을!’ 같은 열정적 구호들이 터져 나왔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불손하고 파렴치하다는 것은 새로운 혁명의 무기다’, ‘파괴의 열정은 일종의 희열이다’, 이런 말들은 내면에서 터져 나온 열정의 표현일 수는 있겠으나, 사실 실현 가능성 없고 무책임한 주장이었다.

―8부. 격변의 세기 (884쪽)

서평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언젠가는 그가 프랑스 통사를 써주길 기대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사라는 큰 과제에 용기를 내주어 프랑스사 연구자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통사라는 무게에 걸맞게 진지하지만 주경철식 위트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글쓰기야말로 샘이 날 정도로 부러운 부분이다. 이제 프랑스 역사 여행에 깊이 빠져 볼 시간이다.

―임승휘 (선문대학교 사학과 교수)

 

프랑스 역사가 엠마누엘 르루아 라뒤리의 표현처럼 역사가를 위에서 크게 보는 낙하산병과 좁은 주제를 깊게 파는 버섯 채집꾼, 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면, 주경철 교수는 최고의 낙하산병일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버섯 채집꾼의 연구를 섭렵하고 종합하여 2,000여 년에 걸친 프랑스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 준다. 정치사, 사회사, 문화사를 넘나드는 유려한 서술을 따라 달리다 보면 또 멈춰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들이 등장한다.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나라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를 탐험하는 여행을 통해 독자들이 역사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권윤경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부교수) 

 

 

프랑스 역사가 로이드 크레이머는 프랑스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변이들과 씨름해 온 역사”라고 표현한 바 있다. 프랑스가 이러한 문제들을 ‘유일하게’ 경험한 곳은 아니지만, 그러한 역사적 변화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주경철 프랑스사》는 한국의 독자들이 이 같은 역사적 통찰에 이르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되어 줄 반가운 역작이다. 1,000쪽에 육박하지만 책장을 놓을 수 없는 필력은 덤이다. 

―강석환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저자소개

저자 : 주경철
바다와 해양 문명을 통한 전 지구적 통합의 과정을 밀도 있게 연구해 온 서양사학자이자 역사의 대중화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역사 스토리텔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같은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30여 년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소장과 중세르네상스연구소 소장,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해양사에 대한 독보적인 저작인 《대항해 시대》, 《바다 인류》를 비롯한 《문명과 바다》, 《모험과 교류의 문명사》, ‘오늘의 유럽을 만든 사람들’을 호출해 엮은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3》와 《중세 유럽인 이야기》, 유학 시절부터 학문적 토양이 되어준 프랑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쓴 《도시여행자를 위한 파리×역사》와 《도시여행자를 위한 노르망디×역사》, 그리고 2026년 2월 은퇴를 앞두고 세계사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서 선보인 《주경철 프랑스사》 등은 대표적인 역작이다. 그밖에 《그해, 역사가 바뀌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히스토리아》, 《히스토리아 노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마녀》, 《질문하는 역사》, 《일요일의 역사가》 등은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에 학문적 깊이를 더한 저서들이다. 세계사의 주요 저작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3》, 《제국의 몰락》, 《유토피아》, 《지중해: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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