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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지우기


  • ISBN-13
    979-11-960545-9-5 (9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칼라박스 / 칼라박스
  • 정가
    2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6-01-27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남승원
  • 번역
    -
  • 메인주제어
    문학: 문학사 및 평론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남승원 #최진석 #고봉준 #경계 #계엄 #현실과 문학 #비평적 관성 #무력함의 인식 #균열의 감각 #공간화 #도시 권력 #거주 #배치 #자본 #체험 #이주노동자 #시선 #가시성 #배제 #도시 공간 #문화적 권력 #프레카리아트 #불안정 #노동 #삭제 #노숙 #국가 #서사 #존재 #불안 #자리 바꿈 #랑시에르 #주체 #불화 #이동 #비평 윤리 #황금알 #김영탁 #문학: 문학사 및 평론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2 * 225 mm, 240 Page

책소개

경계선 지우기 
– 이주노동자, 프레카리아트, 청년의 자리 바꿈과 문학적 상상력


『경계선 지우기』는 오늘날 문학이 어디까지 현실을 사유할 수 있는가를 가장 첨예한 사회적 경계 위에서 다시 묻는 남승원의 평론집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경계선’은 추상적인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분할선이다. 시민과 비시민, 안정과 불안정,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이 경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문학 역시 그 바깥에 있지 않다.

남승원은 기존의 진보 담론이 전제해온 주체 개념이 더 이상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노동자 계급, 민중, 시민이라는 이름은 파편화된 노동과 불안정한 삶의 조건 속에서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신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 그리고 불안정한 청년 세대와 같은 ‘경계 위의 존재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기존 질서가 당연하게 여겨온 보편적 주체 개념을 근본에서 흔드는 존재들이다.

이 평론집은 영화 〈로니를 찾아서〉, 유미리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문화 텍스트를 분석하며, 이주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특히 노동과 공간, 도시와 국가, 시민권과 배제의 문제를 문학적 서사와 결합해 읽어내는 방식은, 문학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사회적 감각을 재구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승원은 문학이 현실을 직접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회의에서 출발하지만, 그 회의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문학이 제도를 대체하거나 정치적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질서에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문학은 안전한 거리에서 현실을 관찰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계선 위로 스스로를 이동시키는 실천의 장이다.

『경계선 지우기』는 문학 비평서이자 동시대 사회에 대한 치열한 사유의 기록이다. 이 책은 문학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보다, 문학이 어디까지 질문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불안정과 배제의 시대에 문학의 역할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이 평론집은 깊고 단단한 사유의 좌표를 제공한다.

목차

*차례


intro 떠도는, 횡단하는, 스며드는•13
― 자본 바깥에서 진보를 상상하기

제1부
헬로우, 유비쿼터스•40
식인종, DJ 그리고 매시업 아티스트•64
― 이규석, 또는 닉 페어웰의 『GO』를 읽는 법
그라운드 제로에 선 소설들•91
이야기 3.0•109
므네모시네의 욕망과 이야기의 힘•121
― 김용희의 소설세계

제2부
수용소에서의 시쓰기•142
― 이산하의 시세계
오지 않을 미래를 준비하면서•160
혁명을 질문한다는 것•177
겹쳐 쓴 고백•191
― 정은기 시집 『우리는 적이 되기 전까지만 사랑을 한다』
고통의 바다 밑에서•212
시작된 절망•223
― 채상우의 시세계

outro 지역의 안과 밖•234

본문인용

*본문일부(미리보기)


intro
떠도는, 횡단하는, 스며드는
― 자본 바깥에서 진보를 상상하기


진보의 새로운 주체를 꿈꾸는 것은 가능한가

1998년 한 월간지에서는 「우리 시대 ‘진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좌담을 개최한다. 한국의 98년을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와 전년도 12월에 결정된 IMF의 구제금융 지원으로 인한 사실상의 경제 주권 상실이라는 두 가지 사건으로 요약해 본다면, 이 같은 주제의 좌담이 필요했던 사정을 쉽게 이해해 볼 수 있다. 정부 수립 이후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었던 정치적 이슈가 대통령 직선제와 정권교체라는 두 큰 목적이 형식적으로나마 차례로 달성된 이후 소거된 자리에 경제적 기준과 가치가 재빠르게 채워졌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전 시기 한국의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자각하면서 노동 환경 개선의 구체적 요구를 내세우게 되었을 때, 그것은 책임 있는 경제·정치 분야의 권력자들을 향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적 차원의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가 더 이상 동일한 환경이나 계층을 지칭할 수 없게 된 만큼 그들의 요구 역시 저마다 다르게 겪고 있는 경제적 문제의 범주를 쉽게 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좌담에서도 역시 그에 대한 반성은 두 가지 방향으로 검토된다. 먼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시대라고 할 수 있는 당시 사회에 대한 성격 규명이다. ‘독점자본주의, 종속자본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등 지난 시기 우리 사회에 대해 내린 규정들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모순점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처럼, 정치적 가치판단과 경제적 목적이 빠르게 괴리되어가는 “한국사회의 성격 규명”이 이루어진 이후에 “진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범위, 대상” 역시 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이전 시기 스스로 진보의 주체임을 자인해 왔던 노동자계급 내부의 문제점 인식이다. 좌담에 참여한 인물들은 우선 기본적으로 노동계급을 진보의 주체로 생각하는 데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의 뚜렷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노동자들은 그 변화의 동력을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적극 수용하지 못하거나, 또는 “수동적으로 휩쓸린 결과”로 인해 스스로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의 극복을 위해서라면 변화된 사회현실에 대응이 가능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구”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일상적 소통이나 유기적인 연대”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이때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대학생들 역시 심화해 가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80년대와는 다르게 사회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분노도 표출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는 언급에 한 참가자의 다음과 같은 대답이 자못 흥미롭다. 

한 5년 후쯤에는 달라지지 않겠어요? IMF시대에 실업자 아버지를 둔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이 될 것이고, 그때 되면 달라질 거예요. 

그런데, 정말 그런가? 진지한 상황 판단이라기보다는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온 가벼운 농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대를 지나온 지금의 관점에서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주체의 본질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이 말에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물질적 생산과 그에 따른 생산관계를 사회적 존재의 핵심 구성 요건으로 받아들이면,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아래에서 언제나 구조적 착취 아래 놓여 있었다는 ‘진실’이 드러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와의 적대적인 계급적 인식에 이르기만 한다면 필연적으로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역할을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때 ‘대학생’은 예비 노동자이거나 또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이론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적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IMF 시대에 개인적 차원에서 이미 그 모순을 직접 경험하게 된 세대가 대학생으로, 나아가 노동자 계층으로 유입된다면 진보의 사회적 지형도를 보다 확대해 나갈 수 있다는 인식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근로환경에 대한 노동자들의 개입 의지를 드러내는 간접 지표 중의 하나인 노동조합조직률을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2003년도를 기점으로 하향곡선이 분명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소비사회로의 변모, 그러니까 가치를 생산하는 근원이었던 ‘노동’의 자리를 ‘소비/행위’가 차지하게 된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일찍이 베블런이 주장했고, 부르디외가 다시 한번 확인했던 것처럼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노동이나 생산과 무관한 소비의 영역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소비 상품으로 자신을 대변하기에 이른다. 이제 계급적 인식 역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행동양식’이나 ‘문화적 가치체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계급별 취향의 문제로 변모한다. 그렇게 ‘소비사회’는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중심으로 한 ‘취향’이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구체적 행위 유발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결국 사회 전체를 보수적으로 만들게 된다. 
미국의 경제사상가 앨버트 허시먼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보수화되어 가는 사회의 모습을 더욱더 근본적으로 진단한다. 그에 의하면 국가기구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원리였던 ‘이해관계(interests)’를 공익의 핵심 구성 요소로 만들어가면서 정립된다. 이를 통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 간에도 서로 강력한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하는데, 사회 구성원들은 점차 상부구조의 변혁보다는 그 속에서의 안정감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베블런이 유한계급의 금전과시적 취향의 확산으로 인해 경제적 판단을 따르는 인간형만이 가장 정상으로 제시된다고 판단했던 것처럼, 허시먼 역시 공사의 영역 모두에서 사회적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 ‘이해관계’가 이성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물질적 쾌락에 빠른 속도로 익숙해지고 심지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양극화를 실제 직면하게 되었을 때조차, 국가기구의 형태 변화 내지 전복이 아니라 이해관계 중심의 사회적 구조가 흔들리지 않게 통제하는 더 강력한 정부를 원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의 심화와 노동자에 대한 착취 지속이라는 경제적 환경은 이제 더 이상 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충분조건도 아니며, 상부구조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사회적 연대의 필요조건도 되지 못한다. 지금의 현실에서 ‘진보’란 자본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을 통해 성취하는 자유로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변혁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힘 속에서 진보의 주체를 기획해 보는 일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면, 자본의 구획 바깥에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채 떠도는 존재들을 먼저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보이지 않는 존재 : 영화 〈로니를 찾아서〉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의 경우에도 최근 코로나로 인해 그 숫자가 줄기는 했지만, 해외 거주자가 730만 명(2021년 현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숫자도 늘고 있으며 2021년 현재 195만 명으로 한국 거주 전체 인구의 3.5%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주로 노동 환경의 변화에 따라 촉발하는 이주 현상은 세계시장을 지향하는 자본의 속성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먼저 완성한 국가들이 식민지 점령을 통해 경제 생산력을 뒷받침했었던 산업 자본주의 단계에서의 제국주의 형태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영역을 단순하게 지리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은 정보경제 패러다임에 근간을 둔 현재의 단일한 ‘시장’과 더 이상 공존할 수 없게 되면서, 생산의 전 지구적 네트워크화를 통해 영토의 경계와 그 관리 방식에서 자유로운 탈영토화된 생산 방식으로 변모한다. 이는 IT 산업과 같이 웹에 기반한 특정 산업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이나 농업 등의 전통적인 인력 기반 산업에 이르기까지 지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각 생산부문들을 자본의 필요에 따라 재배치한다. 말하자면 모든 생산 형태들이 세계 시장 규모의 탄력성을 가진 네트워크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화 시대 고용이 보장된 임금 노동은 자유 계약이나 파트타임 등의 비보장 노동 형태로 대체되어 간다. 
문제는 이러한 형태의 노동 종사자들은 어느 때보다 ‘노동’이 개인의 책임으로 작용하는 반면에 스스로의 노동 환경 구성에 대한 요구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산업 조직 전반 역시 고도로 숙련된 소수의 전문직 관리자들과 고용이나 해고가 용이해서 직업 안정도가 극히 낮은 노동자집단으로 양분화되는데, 데이비드 하비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구조 변화를 ‘유연축적체제’라고 불렀다. 노동계층이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동시에 산업구성은 하청시스템이 강화되어 가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유연성’이 강제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주노동은 그 자체로도 자본주의 산업구조가 촉발한 노동 형태이면서, 사용 시점부터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국가적 또는 문화적 배경을 소거한 채 어떤 생산 형태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용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서평

경계선 지우기
– 문학은 어디까지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가


남승원의 평론집 『경계선 지우기』는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에서 ‘경계선’이란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사회를 구성하는 실제의 분할선이며, 동시에 문학이 가장 첨예하게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주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 그리고 불안정한 청년 세대는 이 경계선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문학과 영화, 이론을 통해 읽어내며, 기존의 비평적 관성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현실의 균열을 드러낸다.

이 책의 서문은 개인적 체험과 사회적 사건, 그리고 문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일본 작가 요모타 이누히코의 소설 『계엄』을 읽은 직후, 한국 사회에서 실제 계엄 사태가 발생한 경험은 저자로 하여금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게 만든다. 문학은 현실을 예견하는가, 아니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 채 자기 세계에 갇히는가. 남승원은 이 질문 앞에서 문학의 무력함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문학이 현실을 직접적으로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문학은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의 균열을 드러내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질서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경계선 지우기』의 핵심 문제의식은 기존의 진보 담론이 전제해온 ‘주체’ 개념의 한계에 대한 성찰이다. 노동자 계급이나 시민이라는 범주는 한때 사회 변화를 견인하는 강력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자본의 전지구화와 노동의 파편화, 플랫폼 경제의 확산 속에서 이러한 범주는 점차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승원은 이 지점에서 이주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라는 존재를 호출한다. 이들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시민적 권리와 사회적 보호의 영역에서는 지속적으로 배제되는 존재들이다.

영화 〈로니를 찾아서〉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안산 원곡동이라는 공간은 산업화와 이주 노동의 역사가 중첩된 장소다. 태권도라는 ‘국기’가 상징하는 문화적 정체성과 자율방범대라는 공동체 장치는, 이주노동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남승원은 이 영화가 이주노동자를 선량하거나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신 영화는 시선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시선은 어떻게 권력으로 작동하는가. 이러한 분석은 문학과 영화가 사회적 감각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논의는 이 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유미리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을 중심으로 한 분석은, 불안정 노동이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존재론적 불안을 낳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평생 노동했음에도 사회적 관계망에서 삭제되어가는 노숙인의 삶은, 국가 발전 서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축제의 시간과 개인의 몰락이 겹쳐질 때, 우리는 ‘누가 시민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남승원은 이 소설의 서사 구조와 목소리의 배치를 통해, 프레카리아트가 어떻게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지는지를 분석한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독백하지만, 그 목소리는 사회적 소음 속에서 차단된다. 이는 프레카리아트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사회적 서사 속에서는 언제든 삭제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 책에서 문학은 결코 안전한 거리에서 현실을 관조하지 않는다. 남승원은 자크 랑시에르의 사유를 경유하며, 진보의 주체를 특정 집단이 아니라 ‘자리 바꿈의 가능성’으로 이해한다. 이는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이주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의 시민적 안정성을 의심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경계선 지우기』는 문학 비평이 여전히 유효한 사유의 장르임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특정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사례 분석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작품 하나하나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안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균열을 따라간다. 남승원의 문장은 차분하지만 집요하고, 이론적이지만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다.

이 평론집은 문학 연구자뿐 아니라, 오늘의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깊은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다. 『경계선 지우기』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정적인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문학이 어디까지 질문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불안정과 배제의 시대에 문학이 여전히 의미 있는 언어일 수 있는 이유가, 이 책 안에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제시되어 있다.

저자소개

저자 : 남승원
남승원
문학평론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평론집 『질문들의 곁에서』
제23회 젊은평론가상 수상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상단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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