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책이 팔리지 않는다.
진짜 좋은 책인데, 저자도 유명한 분인데, 그래도 책이 안 팔렸다. 1만 부 이상 팔린 책은 한 손으로도 너끈하게 꼽을 수 있었고, 3만 부 이상 팔린 책은 전무했다. 일도 적성에 잘 맞고, 함께 일하는 동료도 좋고, 업무량도 적절했으니 더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내 몸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었다.
이래서 내게 편집자로서 미래가 있을까.
지금은 어리고 아직 배우는 입장이니 그럭저럭 넘어간다 해도, 나이가 더 들면? 임프린트 대표나 주간이라고 해봐야 마흔 살 언저리였고,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선배 편집자는 회사 전체로 봐도 몇 명 없었다. 꼰대 없는 젊은 조직이라 좋았지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편집자로 오래 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연차가 쌓일수록 나는 베스트셀러에 목이 말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책을 만들고, 그 책을 잘 파는 방법을 아는 것 말고는 다른 생존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연차가 조금씩 쌓여도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그럴수록 나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 pp18~19. 1장. 상업 출판 편집자의 길 ‘편집자로서의 행운과 콤플렉스’
그래서 지금부터 하려는 말이 내가 진짜 강조하고 싶은 기획법이다.
나는 모든 베스트셀러는 그다음으로 읽고 싶은 책을 만든다고 믿는다. ‘시장이 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트렌드가 살아 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아무튼 핵심은 어떤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그다음으로 읽을 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는 그다음 책으로 『오베라는 남자』를 읽었을 것이고,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는 그다음 책으로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다.
다산북스에서 2019년과 2020년의 우리 팀이 집요하게 ‘쓸모 있는 인문학’이란 콘셉트에 부합하는 책을 기획했던 것도 이 전제에 따른 결과였다. 우리는 저마다 목표를 갖고 움직였다. 팀원 모두가 ‘철학의 쓸모’라는 콘셉트로 기획을 준비하고 있을 때, 외서 뉴스레터에서 야마구치 슈의 『무기가 되는 철학(원제)』을 발견했다. 우리가 찾던 콘셉트에 찰떡인 아이템이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고, 한국어판 제목을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바꾸어 출시했다.
- pp40~41. 2장. 팔리는 책을 위한 기획의 기술 ‘처음부터 될 만한 놈을 찾아라’
협업하는 모든 사람과 소통하기 쉬운 가제가 좋은 가제다. 자신들이 만드는 책에 대한 일치된 방향이 있어야 의도했던 콘셉트대로 책이 나올 수 있으므로, 소통을 위한 가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심지어 핵심을 관통한 좋은 가제는 그대로 실제 제목이 되기도 한다. 『역사의 쓸모』나 『아비투스』 같은 책이 그런 경우다. (중략)
콘셉트를 드러내는 가제가 정해졌다면, 다음으로 필요한 건 ‘100자 책 소개’다. 가제에 다 담아내지 못한 이 책의 매력을 드러내야 하는데, 이때에도 핵심은 설명이 아니라 셀링 포인트다. ‘100자 책 소개’는 다음의 세 문장이면 충분하다. (1) 저자를 파는 문장, (2) 차별화된 내용을 파는 문장, (3) 독자의 필요와 욕망을 드러내는 문장. 아래의 예시를 확인해보자.
① 『역사의 쓸모』 100자 책 소개
(1) 누적 수강생 500만 명, 대한민국 대표 역사 강사 최태성의 첫번째 인문교양서. (2) 길을 잃을 때마다 역사에서 답을 찾은 그는 이 책에서도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3)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보다 자유롭고 떳떳한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 pp92~94. 3장. 잘 읽히는 책을 위한 편집의 기술 ‘가제 짓기와 100자 책 소개’
이처럼 사전 마케팅 자체가 필요 없는 책을 기획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사실 그런 기획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 출간 전에 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독자를 만드는 작업, 즉 사전 마케팅이 필요하다.
사전 마케팅의 목표는 세 가지다. 대기독자 확보, 자발적 입소문 유도, 그리고 판매 포인트 확보.
사전 마케팅은 ‘드래곤볼’의 원기옥 같은 것이다.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리고 지구 생명체의 여러 에너지를 모은 뒤 적에게 쏘는 것인데, 에너지가 많이 모일수록 더 강한 원기옥을 쏠 수 있다. 출판도 마찬가지다. 사전 마케팅을 통해 많은 에너지를 모은 후에 책을 세상에 쏴야 많은 독자에게 전달이 된다.
더 예전의 일은 잘 모르겠고, 내가 출판 일을 시작한 2009년 이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던 사전 마케팅의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첫번째는 책의 가제본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미리 읽히는 것이다. 2014년에 출간된 『미움받을 용기』가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책이 아니라 시나리오처럼 제본해 서점에 돌렸고, 가제본 서평단도 운영했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났다. 출간 이후 이뤄진 마케팅 활동도 모두 훌륭했지만, 출간 전에 많은 원기옥을 모았기 때문에 모든 마케팅 플랜이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 pp142~1437. 4장. 독자를 미리 만드는 마케팅의 기술 ‘사전 마케팅이 필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