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 선생이 어른답게 과거를 되짚어보고 미래를 예측한다.
“저 아래 현암리 신연강 나루에서 배를 타고 붕어섬에 이르고, 섬을 가로질러 하중도 나루에서 다시 배를 타고 삼천동으로 오가던 뱃길은, 한양과 춘천을 왕래하는 통로 구실을 했어. 한양 길손들이 당림리로 해서 석파령을 넘고 덕두원으로 와서 한숨 쉬고는 배를 타고 춘천으로 들어왔거든. 그 후 경춘국도의 다리로 신연교를 건설하면서 서면과 춘천이 연결되지 않았나. 그다음에 철도도 놓이고……. 그 후 뱃길은 옛이야기가 된 거야. 그때 한 번 서면이 크게 변했는데 홍 과장 말을 들으니, 이제 댐을 여기저기 건설하면 또 한 번 변화를 몰고 오겠어. 세상은 가만히 있지 않아. 우리는 그 후를 또 한 번 생각해야 해. 언젠가는 서면과 시내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일 거야. 그땐 또 한 번의 변화가 올 거야.”
음식을 가지고 온 후 나가지 않고 구석에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아란이 당돌하게 한마디 했다.
“호수가 생기고 그 안에 섬이 점점이 있으면 서면 일대가 아름다운 명소로 변하겠어요. 서면을 둘러싸고 있는 수려한 산자락, 호숫가의 경치가 어우러져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와보고 싶은 장소가 되지 않을까요?”(14쪽)
남 전무가 공장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 제품 개발에 공을 세운 사람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장 근로자라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입니까?”
“김찬슬이라고 입사 1년 차입니다. 춘천 출신인데 근로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직 총각이고, 집과 떨어져 있어서인지 퇴근 후에도 공장에 남아서 밤늦게까지 만들고 실험하고 하더군요.”
“대학 출신은 아니지요?”
“네, 서울에서 공고를 나왔습니다. 재학 중에 전국기능경기대회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그 수상 경력으로 특채했습니다.”
남 전무가 공장장에게 제안한다.
“그 사원을 우리 연구센터로 이동시켜 창의적인 개발에 몰두할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해주면 어떨까요?”(151~152쪽)
“사람들은 어디서든 아름다움을 구하고, 그것을 찾으면 거기에 취하고 빠지잖아요. 그것이 사는 즐거움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이번 서면 여행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서면의 자연, 의암 호수, 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시장의 왁자지껄한 정경에서 아름다움은 살포시 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아란 씨에게서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꾸지 않고 있고, 햇빛과 바람에 그을려 있으며, 언행도 다소 거친 듯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고, 나를 대하는 마음 씀씀이를 보고, 그녀가 추구하고 있는 신념과 가치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느끼고, 그리고 가족과 그녀가 만나는 주민들, 심지어 찬슬 씨에게 기울이는 정성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인품 속에 아름다움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았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진짜 아름다움이지요.”(292쪽)
“낯선 미국에 가서 오빠에게만 의지하는 반 토막 인생을 나는 살 수 없어요. 여기서 나는 가치 있게 살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데 보람을 느끼고, 그런대로 만족하게 여기며 살고 있어요. 미국에 가면 나는 그것을 잃어요. 그 대신 못 하는 영어로 외롭게 살고, 수준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고통을 느끼게 될 거예요. 하루이틀 참아서 될 일이 아니겠죠. 그러니 나는 오빠의 짐이 될 거예요. 그래도 내가 따라가야 할까요?”
아란은 말을 중단하고 친구들을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서면에는 나의 꿈이 있어요. 교회를 개척했고, 아직도 진행 중이에요. 나는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새로운 나의 할 일을 찾았어요. 값지고 귀한 일이지요. 할 수 있을 때까지 뱃사공 일을 계속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녀의 똑 부러진 말에 그들은 할 말이 없이 두 사람만 쳐다봤다. 아란의 꺾을 수 없는 강한 의지, 강단 있는 여성이 가지는 인간적인 매력이 그녀에서 뿜어 나왔다.(307~3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