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이 설계한 도시
문명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인간의 말단 기관인 손과 발의 요구를 반영한다. 동전의 동그란 모양은 ‘생활의 물리학’이다. 어느 방향으로도 모나지 않고, 주머니 속에서 걸림이 없어야 한다. 반면 지폐는 쌓고, 접고, 넘기기 위해 직사각형을 택했다. 한국 지폐의 짧은 변 6.8센티미터는 인간의 손아귀가 허락하는 가장 완벽한 수치다. 동그라미와 네모는 돈의 상징이기 이전에, 인간의 손이 선택한 최적의 형태다.
발이 남긴 흔적도 선명하다. 직선이 종이 위에 설계된 ‘권력의 질서’라면, 곡선은 토박이들이 발로 디뎌 만든 ‘삶의 궤적’이다. 뉴욕 맨해튼의 격자를 대각선으로 찢고 나가는 브로드웨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걷던 야생의 길이다. 효율을 앞세운 직선의 공세 속에서도 인간의 발은 기어코 제 편한 길을 남긴다.
■형태에 길들여진 몸
사물에서 시작한 관찰은 점차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관습으로 이어진다. 형태는 몸이 만들지만, 어느 순간 형태가 몸을 길들인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가 길의 폭을 정하고, 그 폭은 다음 바퀴의 크기를 제한한다. 우연은 표준이 되고, 표준은 다양성을 거세한다.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은 사실 오래전 굳어진 형태에 길들여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온돌과 마루는 형태가 인간의 습관을 재조직한 결정적 사례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바닥은 사람을 앉히고 눕힌다. 바닥이 생활의 무대가 되자 신발은 자연스럽게 금기가 되었다. 이 금기는 ‘안’과 ‘밖’을 가르는 위생 관념을 낳았고, 집에서 맨발로 생활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슬리퍼를 신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했다. 한국인에게 안팎의 구분은 벽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몸의 동작으로 확인하는 심리적 경계다.
■우리 몸의 미래
옷은 피부의 연장이고 안경은 인공 시각이며 자동차는 강철 다리다. 문명은 인간이 몸을 바깥으로 뻗어내며 스스로를 재구성해온 과정이다. 하지만 기술이 몸의 기능을 대신할수록 인간의 몸은 무력해질지 모른다. 정교하게 세계를 움켜쥐던 손은 이미 화면을 터치하고 버튼을 누르는 단순 명령 기관으로 변화했다.
저자는 이 흐름이 충분히 누적될 경우, 먼 미래의 인간 손이 지금처럼 정교한 조작 능력을 잃고 가장 단순한 작업에 최적화된 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예고한다. 물건을 움켜쥘 수 있었던 인간 조상의 발이 땅을 딛고 달리기 위한 도구로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어떤 동작을 기계에 맡기고 어떤 동작을 계속하느냐가 인류 신체의 미래를 다시 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형태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시대에, 질문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 형태는 누구의 몸에 맞춰졌는가? 평균과 표준은 다수에게 편리함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다른 몸과 다른 삶을 ‘예외’로 밀어낸다. 『형태의 문화사』는 우리가 숨 쉬듯 당연하게 여겼던 사물과 공간의 민낯을 들추고, 우리가 사는 세계의 기본값을 의심한다. 그 기원은 언제나 인간다움의 가장 노골적인 토대, 몸과 감각에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