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 확신이 없었다. 일단은 해가 질 때까지만 집에 데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있던 자리로 다시 데려다놓을 생각이었다. 내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길가의 마른 풀을 한 움큼씩 뜯어 모은 다음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갑자기 달아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풀로 감싼 새끼 산토끼의 몸뚱이를 양쪽에서 잡아 가슴 높이까지 들고는 우리 집 뒷문까지 몇 백 미터를 걸었다. (p.23)
나는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지를 스치는 바람의 미세한 떨림과 나무를 때리는 바람의 깊은 울림이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바람이 잦아들면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하늘과 나무와 대지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풍경이었고 인간의 집에서 나는 인공적인 울림이나 소음과는 달랐다. 나는 냄비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 트는 소리, 말소리를 더 의식하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소리가 녀석에게 어떻게 들릴지 알 수 없었다. (p.37)
사실 새끼 산토끼는 내게 위안을 주었다. 가끔 책상에서 빠져나와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곤 했는데, 녀석의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이 놀라웠다. 산토끼가 지닌 평온함과 안정감을 오랜 세월 나의 삶을 지배했던 미친 속도감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온갖 예측할 수 없는 일들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끼 산토끼는 인간의 집에 살았던 적이 없을 텐데도 마치 여기 속한 존재처럼 편안해 보였다. 나는 공사를 하기 전 무너져가는 건물의 폐허 속에서 뛰어다니던 산토끼들을 기억해 냈고 그 일을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p.45)
새끼 산토끼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지 않은 내가 잘못된 건가 싶기도 했다. 모두가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길 뿐 아니라 애정어린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토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산토끼가 반려동물임을 선포하는 것이고, 왠지 녀석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일 같았다. 나는 이미 산토끼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를 준비시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p.62)
산토끼를 둘러싼 신화와 전설이 나에겐 당혹스러웠다. 너무 양극단으로 갈리기 때문이었다. 산토끼는 한편으로는 선의, 부활, 자기희생의 상징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마녀의 동반자이자 죽음과 복수, 불운의 전조였다. 문득 궁금했다. 어떻게 같은 동물이 이토록 신성하면서도 불경스럽고, 순결하면서도 방탕하며, 행운의 상징이면서도 불운의 징조일 수 있을까? 산토끼가 희생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마녀가 변신한 모습이고, 광기와 우매함의 화신이면서도 지혜의 상징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p.83)
새끼 산토끼의 독립심이 나에겐 너무도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녀석의 행동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었다. 녀석은 길들여지지 않았지만 나에게만은 몇 가지 예외를 허용하는 것 같았다. 새끼 산토끼가 나와 함께 있어도 안전하다고 느끼다니, 가장 야생적인 생명체로부터 암묵적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나를 둘러싼 자연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내가 자연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같았다. (p.92-93)
어린 산토끼가 킁킁거리며 발밑의 돌 냄새를 맡더니 담장에서 땅까지의 낙차를 눈으로 가늠한 다음 그 너머에 펼쳐진 들과 숲을 보았다. 나는 움직이지도, 녀석을 소리 내어 부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담장 위에서 날 바라보던 산토끼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녀석이 있던 자리가 텅 비었다. (p.100)
나는 어린 산토끼의 품위에, 산토끼가 퍼뜨리는 평온과 고요에, 그 소박한 삶에 감동했다. 평화로운 산토끼의 삶이라는 것은 햇볕을 쬐고, 뒹굴고, 쉬고, 졸거나 꿈꾸는 삶이며, 매 순간 충실한 삶이다. 산토끼가 남기는 흔적이라 해봐야 사람의 발자국보다 크지 않은 면적만큼 납작해진 풀들뿐이고 그나마도 바람 한 번이면 지워진다. 어린 산토끼의 평화롭고도 질서 있는 삶이 내 삶의 우선순위를 흔들었고 나의 감각을 깨웠다. 몇 달 동안 어두워지자마자 바로 불을 켜는 습관을 멈추었더니,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대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숲의 거주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p.111)
어느 날 해 질 무렵, 녀석이 문 근처를 배회하며 내보내 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문을 열어주자, 산토끼가 주저 없이 달려나가더니,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녀석이 나를 기이한 산토끼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자기와 함께 안개 낀 밤 속으로 달려 나가주길 바라는 건 아닐까? (p.127)
이틀째 되던 날 오후 늦게 수확이 마무리되었다. 트랙터들은 철수했고 대지는 맨살을 드러낸 채 소리 없이 누워 있었다. 하늘에는 종달새 한 마리도 노래하지 않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 털리고 파헤쳐진 밭으로 들어섰다. 대지는 처절하게 발가벗겨졌다. 밭고랑의 선은 흠잡을 데 없이 반듯했으며, 대형 바퀴가 밟고 지나간 자리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다져졌다. 전에도 여러 번 수확을 본 적이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이번 수확은 너무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p.196)
산토끼의 죽음과 밭에서 벌어진 살상, 어미 산토끼의 부재는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환상을 깨뜨렸다. 어미 산토끼와 새끼들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시간에, 그리고 인간의 활동에 종속되어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들판은 하나의 독립적인 땅이 아닌 지역과 국가 경제의 일부였고, 인간과 상업적 이해관계와 법, 지역사회 활동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야생동물들과 함께한 시간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무상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p.200-201)
산토끼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의 공생에 도달했다. 산토끼는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산토끼가 귀 기울이는 언어와 산토끼의 귀가 찾는 소리는 야생의 소리다. 그러나 녀석은 내 곁에서 편안해하는 것 같고 때로는 내 곁에서 쉬기도 한다. 나의 삶을 산토끼에게 맞추어야 하는 게 싫었던 적은 없었다. 언젠간 이 기회를 잃게 되리란 걸 늘 알았기 때문이다. 내 눈에 산토끼의 패턴이 보일 때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그와 상반되는 패턴이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담장 밖 산토끼의 삶은, 집을 비운 시간 동안 그가 키우고 있었을지 모를 새끼들까지 포함하여, 내게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p.214-215)
나는 다짐한다. 산토끼가 내게 오지 않을 미래의 날을 꼽아보지 말자고. 대신 자유의지로 녀석이 내게 베풀었던 지난날들을 소중히 여기자고. 산토끼라는 동물이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던 인간에 대한 경계를 낮추고, 조용하고도 우아한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녀석이 나와 나누었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소중히 여기자고. 그가 언젠가 떠나리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그가 반드시 뒤를 돌아보리란 것 또한 기억할 것이다.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