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양념은 소금, 간장, 설탕, 식초 같은 조미료와 마늘, 파, 후추 같은 향신료를 조합해 만든다. 음식에 따라 어울리는 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갖은양념’이라는 만능 양념도 그때그때 응용해 사용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추장이 바로 한식의 맛이기도 하다.
우리 음식의 손맛은 바로 양념의 맛이다!
채소를 소금에 절인 보존식품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여기에 갓과 파, 마늘 그리고 젓갈과 고춧가루를 섞어서 발효시키면 어디에도 없는 음식, 바로 우리의 ‘김치’가 된다. 음식은 한 문화권/국가의 정체성을 담고 있고, 그 정체성의 핵심은 ‘어떤 조미료와 향신료를 사용하는가’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조미료와 향신료를 아울러 ‘양념’이라 이른다.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양념의 인문학―한식의 비결이자 완성, 전통 조미료와 향신료의 세계》는 한식문화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 앞장서온 정혜경 교수가 젊은 연구자와 함께 완성한 한식 4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한식의 정수라 할 전통 양념을 다루고 있다.
한식을 한식답게, 전통 조미료와 향신료
인간은 음식을 생존을 위해서만 먹지 않는다. 아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음식을 ‘맛있게’ 조리해서 먹는다. 식재료를 그대로 먹지 않고 ‘조리’를 한다는 것은 먼저, 적절한 조리법―굽기, 찌기, 조리기, 튀기기, 끓이기 등―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음식을 만들 때 ‘그냥’ 굽거나 끓이지 않는다. 식재료에 밑간을 하고, 국물의 간을 맞추거나 잡내를 잡기 위해 무언가를 넣고, 완성된 음식에 얹거나 찍어 먹을 것을 함께 낸다. 그 모든 것을 ‘양념’이라 한다. 즉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필수적인,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 쓰는 재료’가 바로 양념이다.
이 책에서는 양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음식의 모자란 맛을 보충하거나 본연의 맛을 북돋기 위해 사용하는 ‘조미료’다. 짠맛을 내는 소금과 간장, 단맛을 내는 꿀과 설탕, 신맛을 내는 식초 등이 있다. 둘째는 음식을 만들 때 주재료가 가지고 있는 좋은 향과 맛은 그대로 살리고, 좋지 않은 맛은 상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향신료’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파, 마늘, 생강, 초피, 후추, 계피 등을 사용해왔다. 우리 양념은 이 두 가지를 아울러 이르는 효율적인 용어로, 간장, 소금, 된장, 고추장, 기름, 깨소금, 설탕, 식초, 실고추, 고춧가루, 후춧가루, 계핏가루, 겨자 등을 제각각, 혹은 조합해서 사용한다.
이 책은 전체 4개 부의 구성으로 우리 전통 조미료와 향신료를 소개한다. 1부에서는 우리 양념의 기원과 변천을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 속에서 살펴본다. 2부와 3부에서는 전통 조미료와 향신료의 종류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음식에 사용해왔는지를 고조리서와 근대 조리서를 통해 꼼꼼히 들여다본다. 4부에서는 우리 조미료, 특히 장류가 어떤 원리로 감칠맛까지 내게 되며,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본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향신료들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떻게 양념을 활용해야 건강해질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새로운 한식을 향해, 오래된 양념을 다시 보자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조미료와 향신료의 재발견이다. 된장과 간장은 만국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소금을 기본으로 만들지만, 원재료인 콩의 영양소와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감칠맛이 어우러져 한식을 한식답게 하는 핵심 조미료가 되었다. 뒤늦게 한반도에 전래한 고추를 활용해 탄생시킨 고추장은 매운 음식을 즐기는 동남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의 핫소스와도 다르고, 같은 장류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의 장들과도 다른 매운맛으로, 전 세계에 한국 음식만의 개성을 알리고 있다.
더불어 우리 전통 조미료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조청과 젓갈이다. 인류 공통으로 즐긴 단맛은 꿀과 과일의 단맛, 그리고 사탕수수나 사탕무의 즙을 정제한 설탕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곡물을 엿기름으로 당화시킨 조청을 여러 반찬에 단맛과 윤기를 더하는 조미료로, 강정을 만들 때의 접착제로, 유밀과 반죽 재료로 다양하게 이용해왔다. 쨍한 단맛이 나는 꿀이나 설탕과는 달리 조청의 단맛은 은근하고 친숙해, 우리 조상들은 느긋하게 조청의 단맛을 즐겼다.
한편,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양념으로 쓰기도 하는 젓갈은 우리 김치 탄생의 일등공신이다. 아미노산이 풍부한 젓갈로 간을 맞추면 두장과는 다른 독특한 감칠맛이 나 찌개나 국의 간을 맞추는 데, 나물을 무치는 데, 김치를 담글 때 등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특히 젓갈의 국물을 끓인 액젓을 김치를 담글 때 넣으면 액젓의 비린 맛은 김치의 향신료에 묻히고 감칠맛은 극대화되는 시너지가 발생한다.
향신료는 또 어떤가. 한식에서는 향신료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후추와 계피, 생강 같은 향신료뿐 아니라 깻잎, 미나리, 방풍, 승검초(당귀 잎) 같은 다양한 향과 맛의 향신 채소를 나물로, 양념으로 활용해왔다. 무엇보다, 그야말로 한식의 맛과 향이라 할 수 있는 마늘, 파, 고추를 빼놓을 수 없다. 서양에서 들어온 바질, 로즈메리, 루콜라 등만 허브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다양한 우리 향신료와 허브를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이기도 하다.
우리 양념은 한식의 맛뿐 아니라 우리 건강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 장류의 원재료인 콩의 영양소와 발효라는 시간의 마법은 인체에 유용한 다양한 생리활성성분과 영양소를 제공한다. 우리가 다양하게 즐겨온 향신 채소는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되었고, 현대의 과학으로 그 효능이 생리학적으로, 의학적으로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전통’ 양념이라고 해서 자연히 건강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채소와 전통 장류를 활용해 구성하는 한국의 전통 밥상의 기본을 유지하되, 덜 짜고 덜 맵고 덜 강하게 양념을 쓰고, 무엇보다 국물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계화된 지금, 음식은 더더욱 세계화되었고 우리는 이국적인 음식의 맛과 향을 그 나라 조미료와 향신료를 통해 즐기고 있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인 때로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 조미료와 향신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새로운 한식, 세계적인 한식의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