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무사히 착륙할 수 있을까?”
수인과 단아의 교차 시점으로 그려내는
사랑과 오해의 변주, 그 간극
세상에는 그런 사랑이 있다. 한눈에 너를 알아보는 그런 사랑이. 두 사람은 인천공항 계약직 보안검색원 면접을 보다가 처음 만나게 된다. 면접에 합격한 수인은 1차 보안검색원이 되지만, 면접에서 떨어진 단아는 2차 보안검색원이 된다. 정규직과 계약직으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계약직 안에서도 1차 보안검색원과 2차 보안검색원으로 나뉘는 현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높은 계약직과 그 가능성이 없는 하청 계약직의 간극은 비록 사랑하지만 처지가 다른 두 사람의 입장을 비유하며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을 담아낸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영종도라는 섬까지 흘러오게 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운 ‘수인’과, 가족을 부당한 월세처럼 느끼며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해야 하는 ‘단아’는 각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묘미는 두 사람의 시점이 교차되어 서술된다는 점에 있다. 같은 대화가 두 사람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김멜라 작가의 추천사처럼 “오해의 모서리를 거듭 응시하는 변주의 형식은 잘 닦인 문장을 따라 내면의 풍경을 선회한다.”. 독자들은 거듭되는 사랑과 오해의 변주를 확인하며, 이를 통해 두 사람의 이야기에 서서히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유튜버가 보안검색원의 현실을 폭로하는 불법 영상을 촬영하게 되고, 이를 통해 수인의 불안 증세가 촉발하게 되는데... 이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뜻밖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의 비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끝내 말하지 못할 과거가 발목을 붙잡고 이들을 차가운 현실로 끌어내린다.
“세상은 약자끼리 겨누며
최전방의 약자가 되지 않으려 버티는 정글 같은 곳.”
『소프트 랜딩』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큰 줄기로부터 세상의 온갖 차별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엉켜 올라온다. 노조 활동을 하다 돌연 잠적하는 미애 선배. 그녀는 외국인 승객에게 뺨을 맞은 뒤 회사를 그만두고 연락도 끊어버린다. 정규직 전환이 되기 위해 공장에서 버티다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되는 단아의 옛 동료 주은. 그리고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어느 날 갑자기 수인을 찾아온 전 남자친구 재성. 수인에게 성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은재.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할 가족의 이야기까지. 켜켜이 쌓여있던 과거의 이야기들이 한 겹씩 벗겨지면서 수인과 단아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의 서글픈 차별에 대한 서사가 드러난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누구의 과거든 상처가 있고, 누구의 삶이든 불안하므로. 세상의 차별이 부당하다 외쳤으나, 돌이켜 보니 그것이 이미 내 과거를 이루고 있음을, 두 사람은 깨닫는다. 이들에게 세상은 “약자끼리 겨누며 최전방의 약자가 되지 않으려 버티는 정글 같은 곳”이었다. 그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결국 이들의 비행은 난기류를 맞이하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갑옷을 벗고 싶지 않은 단아와 이제는 이를 거부하고 싶은 수인.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비행기는 여전히 상공에 있다.
수인은 이처럼 둘의 끝나지 않은 비행이 좋았다.”
2023년 데뷔한 나규리 작가는 첫 장편 소설이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감각적인 문장과 애절한 감수성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그려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되묻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차별로 점철되어 있는 이 세상이, 힘이 없는 약자들을, 소수자들을 어떻게 종용하고 있는지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이제 이들이 부드럽게 안착할 한 자리가 여기, 이 세상에 있겠느냐고.
섬이지만 섬이 아닌 영종도처럼, 이 이야기는 비극이지만 비극이 아닌 결말을 향해 서서히 내려간다. 산재 처리 대신 정규직 전환을 선택한 주은은 단아에게 묻는다. “언니, 있잖아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비겁하다고 생각할까요?” 그러나 주은이 접은 얇고 큰 햄버거 포장지가 점점 작고 견고해졌듯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종착지가 어디든 작고 견고한 무엇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청춘은 성장한다. 정지아 작가의 추천사처럼,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고 누구의 삶이나 불안한다는 것을, 그 불안을 다독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온기를 가진 누군가의 마음이라는 것을.”
나규리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보편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도 안전하게 지탱해 줄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며 “이 소설은 그 믿음으로 출발하여 그 믿음으로 끝을 냈다”고 밝히고 있다. 부디 독자들도 그러한 믿음으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단아와 수인에게 마음을 담아주길, 간절히 기대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