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도 소중하지만 농사일을 좋아해야 하고,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과 모든 생명들과 어울려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이 농부지요. 농부는 자연 앞에 머리 숙이고 자연 순리대로 살아갑니다. 어진 농부는 돈을 벌려고 사람과 자연을 병들게 하는 독한 농약을 논밭에 함부로 뿌리거나, 집짐승들을 좁고 더러운 우리 안에 가두어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부를 ‘오래된 미래’라 하고,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가장 훌륭한 ‘성직’이라 합니다. 젊은 부부는 30대에 그걸 깨닫고 농부가 되었는데, 나는 40대에 겨우 깨달아 농부가 되었습니다. 늦게라도 깨달아 다행입니다. 사람 옆에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 1부 - 오늘처럼 살맛 나는 날은 처음이오, 〈사람 옆에서 사람으로 살아야지〉, 28~29쪽
첫 번째 깨달음은, 내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단 한 번도 내 몸에서 사람 냄새를 맡지 못했습니다. (……) 산밭에 잡곡을 심으려고 괭이로 두둑을 만들 때마다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비 오듯이 흐릅니다. 그 땀 냄새가 바로 사람 냄새라는 걸 농부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만일 제가 농부가 되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사람 냄새 한번 맡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들녘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쓸데없는 욕심과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랑 갈고 씨 뿌리고 김맬 때는 내가 저절로 착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농사일은 나를 착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가졌습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직업 가운데 농부들이 죽음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사철이 바뀌고 들녘에 꽃이 피고 지는 걸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죽음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네 번째 깨달음은, 사람은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니라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산다는 것입니다. 밥 한 숟가락 먹으면 살고, 먹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감기 몸살로 밥 한 숟가락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사흘 밤낮을 꼼짝 못 하고 끙끙 앓고는 그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다섯 번째 깨달음은, 따라 살고 싶은 스승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평생 명함 한 장 만들지 않고, 외국 여행 한번 다녀오지 않고, 하느님이니 부처님이니 환경운동이니 생명운동이니 떠벌리지 않고, 그저 자연 속에서 자연 순리에 따라 검소한 삶을 살아오신 마을 어르신들이 바로 따라 살고 싶은 스승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자연이 베풀어 준 은혜를 알고 그래서 정이 흘러넘치는 산골 어르신들 말씀을 듣다 보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 1부 - 오늘처럼 살맛 나는 날은 처음이오, 〈다섯 가지 깨달음〉, 57~58쪽
죽고 사는 게 어찌 사람 마음대로 되랴마는, 마을 어르신들 말씀처럼 잠결에 곱게 죽고 싶습니다. 아니면 아내와 아침밥을 먹고 난 뒤, 혼자 산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 죽고 싶습니다. 아내가 점심 밥상을 차려 놓고 때가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한마디 하겠지요. “우리 남편이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산밭에서 일하다 흙이 되었구나.” 아니면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들한테 들려줄 시를 쓰다가 연필을 잡은 채 죽고 싶습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나지막이 말하겠지요. “우리 남편이 시를 쓰다가 시가 되어 떠났구나.” 아니면 하루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 마시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죽고 싶습니다. 친구들이 한마디 하겠지요. “우리 정홍이, 세상 걱정거리 혼자 다 짊어지고 사는 것 같더니, 이제야 걱정거리 내려놓고 편안하게 잘 갔네그려.” 아니면 우리 집 처마 아래 쪼그리고 앉아 활짝 핀 채송화를 바라보다가 죽고 싶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람이라지만, 마지막 소원은 꼭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 1부 - 오늘처럼 살맛 나는 날은 처음이오, 〈마지막 소원〉, 102~103쪽
“서 시인, 자네가 사는 산골 마을 자랑거리가 있으면 말해 보게. 내가 도시 삶을 정리하고 자네처럼 산골 마을에 들어올 수 있게.”
“산골 마을 자랑거리라! 밤새 자랑해도 끝이 없을걸.”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게.”
“산골 마을도 사람 사는 곳이라, 살다 보면 고달픈 일도 수두룩하다네. 오늘은 자네 부탁이니 자랑거리만 이야기하겠네.
우리 집은 17평 작은 흙집이라 콘크리트로 지은 집보다 숨 쉬기가 아주 편하다네. 자고 일어나 마당에 나가면 어찌나 공기가 맑은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네. (……)
지금은 겨울이라 텃밭에 남새가 없지만, 봄 여름 가을 내내 도시 슈퍼마켓보다 훨씬 더 싱싱한 남새가 넘쳐나지. 어데서 이런 싱싱한 남새를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
무더운 여름에도 어지간해서는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된다네. 흙집이라 생각보다 아주 시원하거든. 돈을 주고 꽃을 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피는 들꽃이 곁에 있지. (……)
우리 집에 들어올 때 마당 왼쪽에 장독대 보았는가. 된장과 간장, 고추장, 매실과 오미자 원액 들이 가득한 장독만 보아도 든든하지. (……) 자랑을 더 해야 하겠는가? 밤을 새워도 다 하지 못하는데 말이야. 자네가 지금 먹고 있는 군고구마는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남은 불기운으로 구운 건데 맛이 괜찮은가?” (……)
“서 시인, 아궁이에서 나온 군고구마 먹은 지가 50년은 지났네그려. 참으로 오랜만에 먹어 보는 맛이구먼. 이런 맛을 ‘꿀맛’이라 하지.”
- 2부 - 사람이 곧 하늘이라, 〈산골 마을 자랑거리〉, 140~142쪽
할머니가 자리에 눕자마자 할아버지는 한평생 제 몸같이 살피고 돌보던 논밭을 이웃들한테 다 물려주었습니다. 오늘 낮에 이웃들은 감자밭으로 마늘밭으로 가고 없는데, 담벼락 아래 할아버지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왜 혼자 나와 계십니까? 할머니는 조금씩 나아지시는지요? 맛있는 거 사 들고 자주 찾아뵙는다는 게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됩니다. 말만 이웃사촌이지, 아무런 도움도 되어 드리지 못해 정말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사람아, 무슨 말을 그리 하시나. 농사일 바쁜데 이렇게 마음 써 주는 것만 해도 고맙네그려. 마을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큰아들은 서울에서 세금 받아먹고 사는 공무원이지. 큰딸은 부산에서 중학교 선생 하고 있어야. 그리고 둘째 딸은 도회지에서 옷 장사 한다고 맨날 바쁘다 바쁘다 하지. 한 달에 한두 번이 아니라 1년에 한두 번도 잘 안 와. 맨날 맨날 그리 바쁜데 병든 제 어미 생각이나 하겠는가? 돈만 뜯어 갈 줄 알지.”
“할아버지, 그래도 마산에 사는 작은 아드님은 자주 와서 집안일을 돕잖아요.”
“우리 작은아들 녀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작은 공장에 들어가서 여태까지 일하고 있다네. 그 아들이 쉬는 날만 되면 찾아와서 제 어미 보살펴 주고 크고 작은 집안일까지 다 해 준다네.
얼마나 다행인가. 집집마다 못 배운 자식이 효도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닐세. 등골 빠지게 농사지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뒷바라지 해 봤자 남는 게 없네그려. 오늘도 마을회관에서 노인네들이 모여 넋두리를 늘어놓더구먼. 요즘 학교에서는 효자를 안 기르고 불효자식만 기른다고.”
할아버지 푸념을 들으며 문득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찌 못생긴 나무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산밭에서 캔 잘생긴 감자는 모두 도시에 팔려 나가고, 호미에 찍히고 벌레에 먹힌 못생긴 감자만 남아 농부를 지키고 먹여 살립니다.
- 2부 - 사람이 곧 하늘이라, 〈못생긴 감자만 남아〉, 178~180쪽
지난해에는 두 달 남짓 비가 오는 바람에 참깨 농사가 폭삭 망했다. 그나마 우리 마을에서 참깨 씨앗이라도 건진 장대 아지매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그 씨앗은 장대 아지매가 시집올 때 물려받은 거라고 한다. 그 씨앗이 없었으면 한 마을에서 수백 년 동안 심던 토종 씨앗이 사라지고 말 뻔했다. 아무튼 누가 뭐라 해도 ‘돈벌이 농사’(대농)가 아닌, 여러 가지 작물을 심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살림살이 농사’(소농)를 짓는 농부가 있어 올해도 참깨 씨앗을 심을 수 있었다. 올해는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에서 생산자들한테 참깨를 심어 달라고 해서 ‘사명감’을 갖고 참깨를 심었다. 샘밭 들머리엔 5월 초순에 심고, 살구나무 옆엔 5월 중순에 심고, 돌담밭에는 5월 하순에 심었다. 왜냐하면 기후 변화로 시기를 조금 다르게 심어야 흉년이 들더라도 씨앗이라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생협에서 국산 참깨가 모자라서 참기름을 팔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으면 무어 하겠는가. 씨앗이 사라지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사라지는데 말이다. 지난해 참깨 씨앗을 살린 장대 아지매가 있었기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올해도 참깨를 심을 수 있었다. 지구를 살리는 마지막 희망이 ‘소농’이라는 말이 올해처럼 가슴 깊이 다가온 해는 없다.
- 3부 - 세상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우짜모 좋노〉, 212~213쪽
“공무원이나 회사원처럼 경력수당, 가족수당, 위험수당 같은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농촌주민수당도 주면 좋겠어요.”
“농사 잘 지으면 상여금도 주고, 퇴직금도 주면 좋겠어요. 나이 들면 편히 쉴 수 있게요.”
“농사짓고 싶은 사람에게 나라에서 집과 땅을 빌려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해진 기간 동안 농사를 지으면 그 집과 땅을 농부에게 큰 조건 없이 주면 좋겠어요. 집과 땅을 준다면 가난한 사람들도 농사지을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어떤 일에 공로가 있는 사람한테 나라에서 유공자 표창을 주잖아요. 나라와 국민을 먹여 살리느라 애쓴 농부들한테도 유공자 표창을 주면 좋겠어요.”
“진주에 사는 우리 고모가 암에 걸렸는데 서울대학병원에 가요. 병원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엄청 들어요. 그러니까 서울대학병원이 서울에만 있지 말고, 지역마다 하나씩 있으면 좋겠어요.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마음 놓고 치료할 수 있게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모두 지방에 있는 농촌으로 옮기면 어떨까요? 교육이 경쟁이나 전쟁이 아니라 먹을거리와 자연환경을 살리는 희망이 될 수 있게요.”
(……)
나는 청년 농부들의 끝도 없는 제안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나라 일꾼(정치인)을 잘 뽑아 함께 희망을 찾아야겠다고. 서로 사랑하고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 3부 - 세상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서로 사랑하고 꿈꾸지 않으면〉, 229~230쪽
한평생 고향 땅을 버리지 않고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어르신의 한숨 섞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어르신 말씀대로 명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오순도순 살면 명당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고향 찾아와 돈 몇 푼 던져 주고 가는 ‘훌륭한 인물’ 많다고 해서 명당이 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산골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길가 여기저기 빛바랜 펼침막이 자랑삼아 겨울바람에 펄럭인다. “○○○ 씨 장남 외무고시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 씨 막내딸 사법고시 합격을 축하합니다.” 남보다 몇 배 더 부지런히 공부해서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을 시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펄럭이는 펼침막을 볼 때마다 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다만 펼침막에 이름 붙어 있는 분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난 사람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가끔 이런 펼침막이 곳곳에 걸리는 꿈을 꾼다. ‘○○○ 씨 큰아들이 영혼 없는 도시에서 살다가, 드디어 마음 다잡고 고향 마을로 돌아온 것을 축하합니다.’ ‘도시로 나간 ○○○ 씨 막내딸이 농촌 총각과 혼인을 하여, 오래된 미래인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축하합니다.’ 바보같이 나만 이런 꿈을 꾸는 걸까?
- 3부 - 세상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명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258~259쪽
농촌 마을회관에,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정규직 청년이 한 사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농민들이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가까운 보건소에 모셔 가고, 큰일이 생기면 119에 연락도 하고, 아침마다 혼자 사시는 분들 방문도 하고, 농사짓다 등이 굽거나 골병들지 않도록 몸을 살리는 운동도 같이 하고, 농한기에는 영화 상영도 하고, 한글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반도 열고,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친환경농업도 가르쳐 주고, 철마다 나오는 건강한 농산물 판매도 돕고, 새로운 정보도 알려 주고, 해와 바람과 물로 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도 짜고……. 이런 일을 잘하려면 나라에서 관심 있는 청년들을 모아 ‘농촌 마을 정규직 청년학교’를 열어 마땅한 교육을 받게 해야겠지. 졸업하면 자격증도 주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전국에 있는 3만 개가 넘는다는 마을회관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희망이 넘쳐 나지 않을까. 3만 명이 넘는 청년에게 우리 겨레 ‘생명의 텃밭’인 농촌을 살리는 좋은 일자리를 줄 수도 있겠지. 앞으로 닥쳐올 지구 가열화와 기후 위기도 줄일 수 있고 말이야. 너무 지나친 생각은 아니지 싶다.
- 4부 - 마지막 유언, 〈더 늦기 전에〉, 277~278쪽
그분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명함 한번 만들지 않았다. 자랑삼아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한번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들은 겨울 햇살 잘 드는 마루에 앉아 하루 내내 단돈 1,000원도 안 되는 떨어진 나락 포대를 바느질하고 계신다. 30년 전에 장날 가서 사 온 플라스틱 바가지가 햇볕을 보면 금방 상한다며 집 안으로 들여놓으신다. 더구나 구멍 난 양말과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녀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20년 넘도록 중풍에 걸려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손수 밥을 떠먹여 드리고 똥오줌도 다 받아 내시는 산골 할머니는 다 아신다. 할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보내고 나면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몸이 성할 때나 병들 때나 함께 살겠다는 입에 발린 맹세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떠나는 순간까지 아끼고 섬겨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아신다.
잘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 가르쳐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믿는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살면서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온몸으로 저절로 깨달은 것이다.
- 4부 - 마지막 유언, 〈스승님 뒤를 따라〉, 296~297쪽
우리 자식들이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은,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이나 많다. 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가난해질 테니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길 테니까. 사람이고 자연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일 테니까. 함부로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고 허깨비처럼 살다 보면 아이들이 살아갈 ‘오래된 미래’인 숲(자연)을 짓밟을 테니까.
- 4부 - 마지막 유언,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1〉, 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