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거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 친구들과 옛 직장 사람들 또 새로 만난 동아리 사람들 등, 만나고 며칠이면 다시 허전해지지만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메꾸며 일상을 꾸려 간다.
학교 친구라 해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면 깊은 이야기는 어렵다. 사회생활 대부분을 함께했던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는 지금도 그저 그렇다. 나름 치열했건만, 고작 서로 속내 감추기만 했던 건가 싶다. 나이 들어가는 탓인지 매사 진정성에 대한 갈증이 크다. 모임 같은 데 나가서 힘든 대화 나누느니 차라리 혼자서 책을 본다.
내 경우엔 속 얘기까지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기껏 아내와 절친 정도다. 하나밖에 없는 고향 절친은 자체로 행복이다. 만나서는 물론이고 안 봐도 좋은 그리운 사람이다. 최근엔 자주 만나지지 않는다. 멀어진 게 아니다. 안 봐도 알고 충분히 믿고 있어서다. 한 번씩 갖는 동부인 식사 자리가 그나마 행사다. 그저 건강만 하면 된다.
아내와는, 은퇴하고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오래 함께 살았는데도 막상 나눈 대화가 적었음에 놀란다. 하긴 젊을 땐 바쁘기도 했다. 당시 사회상을 풍자한 우스개가 있다. 매일 퇴근이 늦는 경상도 남편 이야기인데, ‘밥은요?’ 하고 묻는 아내 말에 ‘무-따(먹었다), 아-는(아이들은?), 자자(잡시다)’라고 한다는 세 마디 짧은 대화다. 거의 나도 그랬다. 주말이나 되어야 아내랑 밀린 얘기 좀 해 볼 수 있었으니까.
언제든 교감이 되는 사람과는 막상 만남도 대화도 적어진다는 건 역설이다. 은퇴한 요즘도 아내와는 함께 여행하는 게 아니라면 각자 자기 일을 즐길 때가 많다. 오늘도 아내는 꽃 그림을 그리고 있고 나는 이 수필을 쓰고 있다.
이래저래 혼자되는 시간이 는다. 물론 이런 혼자됨은 외로움과는 다르다. 어느 시인이 이걸 고독이라고 했다. 외로움이 혼자라서 느껴지는 우울함이나 고통이라면 고독은 혼자이기에 갖게 되는 의연함이라면서. 그러니까 혼자라도 외롭지 않고 오히려 조금은 편안하기까지도 한 어떤 느낌 같은 거다.
다 잠들어 있는 새벽 고요한 시간에 책을 본다든지, 구릉지나 하천 가을 길을 홀로 걷는다든지, 지난겨울 휴양림에서처럼 한밤중에 혼자 나가 있어 본다든지 하는, 아마도 책 한 권 끼고 혼자 하는 기차 여행도 그럴 것이다.
사실 고독을 즐긴다는 말은 좀 묘하다. 어쩌면 자신이 진정 혼자가 아니라는 고백인지도 모른다. 나도 혼자서 자주 걷지만, 결코 나 홀로 걷는 길이 아니었다. 그 길은 동무들과 함께 고기잡이 가던 길이었고, 영화관서 잠들어 돌아오던 내내 아버지 등에 업혀 잠든 척했던 길이었다. 한 여자아이와 자주 마주치던 캠퍼스 벚꽃 길이었고, 정든 사람 떠나보내며 맘 시리던 버스 정류장 하얀 눈길이기도 했다.(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