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이후, 무너진 댐처럼 쏟아진 비극 속에서 ‘인간’을 다시 묻다‘
세계의 분쟁지역을 취재하며 뉴스와 책,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그 참상을 전하는 종군기자 프란체스카 만노키가 현재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현안이 집중된 곳, 가자 지구의 이야기와 함께 돌아왔다. 2023년 한국에 소개된 《10대를 위한 세계 분쟁지역 이야기》가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우크라이나 등 전쟁을 겪은 여러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범위를 좁혀서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본다.
저자는 “오늘날 현실이 댐이 무너져 쏟아지는 거센 물살처럼” 느껴져서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아랍계 무슬림 주민들이 유대인이나 베두인 유목민을 비롯해 여러 종교와 민족을 아우르며 함께 살아왔던 팔레스타인 땅에, 어떻게 1948년 ‘유대 국가’ 이스라엘이 건국됐을까? 그리고 그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를 샅샅이 다루는 대신, 빼앗은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들,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깊이 이해하려는 일은 우리가 세계의 문제를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멀리 떨어진 타인의 삶 앞에서 어떤 관점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더 넓은 시야로 세계를 바라보고
‘불편한 관점’이라는 자리에 서도록 만드는
우리 모두를 위한 국제분쟁 입문서
2023년 10월 7일 아침 6시경,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례 없이 엄청난 공격을 가했다. 미사일에다 폭발물을 탑재한 드론이 동원되고, 불도저로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 대규모 작전을 두고 하마스는 ‘알아크사 홍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보복을 넘어 가자 지구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고 2년이 넘도록 집단 학살에 가까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최근 2년 동안 사람들은 뉴스로 연일 쏟아지는 가자 지구의 사망자 통계, 끊임없이 반복되는 공습 영상, 집과 가족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전쟁이 왜 시작되고 이어졌는지, 이곳 사람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단편적이고 모호하게 다가온다.
저자 프란체스카 만노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청소년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지역의 정치적·지리적 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8장의 지도를 실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용어나 상황을 별도로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책 《10대를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거나 외면해왔던 현실을 ‘불편한 관점’이라는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독자들은 익숙한 뉴스 장면 뒤에 숨은 인간의 삶과 복잡다단한 구조를 마주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
끝나지 않는 분쟁의 땅에서
전혀 다른 두 삶을 사는 사람들이
평화 없는 수십 년 삶을 증언하다
만노키는 전작에서 분쟁 지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했다. 이 책 《10대를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전하는 것은 공습과 폐허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다만 이번에는 같은 땅 위에서 전혀 다른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대비가 뚜렷하다. 한쪽은 도시와 도로를 자유롭게 누비고, 식수 걱정 없이 집에서 깨끗한 수돗물을 콸콸 받아 쓴다. 한쪽은 봉쇄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그나마 한정된 지역을 이동할 수 있고, 식수와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조차 군인들이 거부하면 반입할 수 없어 굶주린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고, 젊은이들은 마땅한 죄목도 설명도 없이 잡혀가 몇 달씩 구금된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치우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까?
시작은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벌어지던 날이다. 그날 갑작스러운 포격 속에서 지하 대피실에 숨어야 했던 지바 여사의 사연, “이제 우리는 어느 곳에 있더라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을 거예요”라는 이스라엘 시민들의 말을 들으면 이 모든 일이 그저 ‘하마스의 공격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보복’인가 싶지만 잠시뿐이다. 바로 다음부터 이어지는 이 땅의 역사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이면에 있는 훨씬 복잡한 맥락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저자는 그곳 사람들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사건들을 연대기로 정리해 실었다. 독자들은 시오니즘이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의 생존과 귀환을 둘러싸고 어떻게 부상했는지, 팔레스타인 지역이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영국 위임통치 이후 분할되고 점령되는 과정 등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이스라엘이 가자와 서안 지구에서 어떤 정책을 펼쳐왔는지, 두 국가의 공존을 위한 해법이 어째서 번번이 좌절되었는지, 최근 극우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 뒤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이 얼마나 축소되고 파괴되었는지도.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 무어라도 할 일은 있어요.”
그리고 이제 우리가 듣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삶,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이다. 헤브론 남부 언덕에서 이스라엘 정착민(팔레스타인 사유지에 불법적으로 마을을 세워 정착한 사람들)의 폭력과 통행을 가로막는 바위 장벽 속에서도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 지난의 가족들, 허가를 구하지 않고 바다를 보러 갈 자유를 위해 싸우려다 사망한 16세의 암자드, 이유 없이 감옥에 2년이나 갇혀 있다가 풀려난 뒤 사회과학도의 꿈을 버리고 이슬람 지하드에 합류한 아부 무함마드, ‘저항은 무엇보다 문화적이어야 한다’는 신조로 극장을 힘껏 운영하고 있지만 이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무스타파 셰타,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이나 정착민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고 집까지 가는 것이 존엄이라고 믿는 야히아 이다이스 등등…… 이스라엘인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원래 제 땅이던 것을 되찾았을 뿐이라고 믿는 정착민들이 있는가 하면,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의 의무 복무와 전쟁에 반대하며 병역 거부자가 된 잇도, 정기적으로 고립돼 사는 팔레스타인 가정을 찾아가 ‘이웃’으로서 이야기를 듣는 에렐라, 팔레스타인 사회를 정착민들의 폭력으로부터 지키려는 가이와 길리도 있다. 저자 만노키가 “그저 듣는 일조차 힘겹고 버거웠던” 이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우리가 모르는 타인 속에, 우리가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다는 믿음 속에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말한다. “여러분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채로 먼 곳에 있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면, 우리는 어디에 닿을까? 하려고 하는 것, 언제든 무어라도 할 일을 하는 것. 아마 거기에 닿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여덟 장의 지도와 상세한 용어 해설, 연대기로 완성한 ‘가장 친절한’ 분쟁 입문서
이 책의 큰 미덕은 복잡하게 얽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와 현안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저자는 시오니즘의 태동부터 1948년 나크바(대재앙), 그리고 현재의 정착촌 문제까지 아우르는 상세한 연대기를 제공하여 독자들이 분쟁의 뿌리를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책에 수록된 8장의 지도는 오스만 제국 붕괴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할 과정과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 지리적으로 어떻게 확장되어왔는지를 시각적으로 명쾌하게 보여준다. 또한 뉴스에서 자주 접하지만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웠던 ‘하마스’, ‘정착촌’, ‘인티파다’ 등의 핵심 용어와 상황을 별도로 쉽게 설명하여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인 구정은 기자의 감수는 책의 신뢰도를 한층 높여주며, 이 책을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선 충실한 교양서로 자리매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