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판, 34곳 삭제판’ 이후 10년 6개월 만에 ‘제3판, 원본 복원판’ 출간!
이 11년 동안,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까?
이제, 당신이 직접 읽고,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말하라!
20년 동안 민족문제로만 여겨져온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로 고찰한 책. 조선인 위안부 문제는 지원단체가 주장해온 ‘전쟁범죄’ 아닌 ‘식민지지배’의 결과임을 보여주려 했던 책. 그러나 돌아온 건 대화나 연대 대신 민형사 고소고발과 출판금지 가처분신청, 그리고 비난이었다. 지원단체와 관계자들이 선봉에 서고, 학자들마저 그 뒤를 따랐고, 국가의 얼굴을 한 ‘국민’들이 함께 나섰다.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책이 아니라는 최종 판결이 내려진 건 무려 10년, 11년 후였다. 가처분에 따라 34곳을 ○○○○으로 처리한 ‘제2판 34곳 삭제판’이 나오고 10년이 지나도록, 일본어판, 중국어판, 영어판이 잇달아 출간되고 읽혀도, 정작 한국어판은 ‘21세기의 금서’로 묶여 있었다.
마녀사냥과 여덟 개의 재판, 법정에서 벌어진 대리전
다시 애초에, 사실(팩트)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공론장에서 맞붙을 일이다. 법정에서 검사나 원고 측과 피고 측이 벌인 공방은 결국 학자들의 연구결과와 주장, 곧 ‘의견’들이 부딪치는 대리전이었고, 지은이는 공포의 ‘마녀사냥’, 온갖 비난과 조롱, 때로는 살해 협박에조차 시달리는 와중에 형사재판과 민사 손해배상재판, 가처분재판, 총 여덟 개의 법정을 드나들며 수백 가지 자료들을 챙겨 제출하고 거듭거듭 ‘의견서’와 ‘답변서’를 써야 했다.
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문은 이렇다. 그러니, 애초에 고소고발 사태는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사건 각 표현이 그러한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위안부의 자발성’, ‘강제연행의 부인’, ‘동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일지와 109곳-53곳-34곳/35곳의 ‘명예훼손’ 주장 및 ‘삭제 가처분’ 내용 비교표,
11년 동안의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 총정리
이 ‘제3판 원본 복원판’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 전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두 개의 부록을 실었다. ‘부록 1’은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 관련 일지’이다. 그리고 ‘부록 2’로 원고 측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형사 고소고발과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에서 그 근거로 내놓은 ‘범죄 일람표’ 109곳-53곳, 그리고 가처분신청 재판부의 ‘일부 인용’으로 삭제된 34곳, 거기에 검사가 한 곳을 더한 35곳의 비교표가 실려 있다. 표 분량만 총 46쪽.
책 맨앞의 ‘제3판과 제2판 서문’은 쪽번호 i~xvi으로 따로 매겨, 본문 쪽번호는 초판본과 달라지지 않도록 했다. ‘범죄 일람표’에서 문제 삼은 내용/표현들의 위치를 곧바로 대조, 확인할 수 있도록.
돌이켜보면, 지은이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하나의 생각만이 존중되는 사회, 국가에 그 목소리를 대표시키는 사회는 ‘다른’ 목소리를 가차없이 억압하고 배제하며 스스로를 국가화합니다”(심포지엄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 발제문, 2014년 4월 29일)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온몸으로 바로 그 상황을 겪게 되었다.
학문이 정치화(진영화)되고, 역사가 사법화되었다. 고발자들은 ‘박유하가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라 했다’는 주장으로 언론과 전 국민의 비난을 유도했지만(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이루어진 원고 대리인과 검찰의 비난은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지은이의 제안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어렵다고 한 말은 ’일본의 책임’을 부정했다는 말로 치환되었다. 검사는 어떻게든 지은이가 국익을 해치는 매국노임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 저변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건 바람직한 민족 이야기(내셔널 히스토리)에 균열을 낸 ‘여자’에 대한 강한 분노였다.
그저 “복잡한 사안을 복잡한 대로 마주하자”고 했을 뿐인 지은이의 제안은 그들 자신에 의해 단순화되었던 ‘민족’ 이야기에 균열을 내는 “방해물”로 간주되었다. 그렇게 방해물의 ‘관리’에 나선 고발자와 대리인과 검찰의 뒤를 언론과 국민과 정치가들이 따라나섰다. 심지어 그 맨앞에 섰던 건 ‘학자’며 ‘평론가’라는 이름의 ‘지식인’들이었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 민사재판의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 없음’ 판결, ‘삭제 가처분’ 취소 결정을 거쳐 11년 1개월 만에 법정 공방이 매듭지어지고, 10년 반 만에 『제국의 위안부』 ‘원본 복원판’을 낸다. 이제, 우리는 온전한 책을 읽고,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은이는 이 『제국의 위안부』 ‘제3판 원본 복원판’과 함께 그가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의 “그 시간을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는지”를 돌아본 법정투쟁기 『11년―꽃다발과 화살』을 내놓았다. 법적 처벌의 중압감과 사회적 비난과 파면 압력에 더해 한때는 살해 협박에까지 시달리며 치렀던 여덟 개의 재판을 분석하고, 재판부와 우리 사회를 향한 외침과 반론들을 모아 정리하면서 ‘지금’의 생각을 덧붙인, 특히 그 과정을 측면에서, 혹은 밑에서 지탱하고 지원해온 ‘진보’ 학자와 언론과 출판의 문제점을 비판한 2010년대 한국사회론이기도 하다.
이 10년, 11년 동안,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얼마나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