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나는 괴담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한 잔의 커피 향처럼 은근히 스며드는 서정적 공포!
온다 리쿠의 데뷔 30주년 기념 연작소설집 『커피 괴담』
1991년 데뷔한 이래로 일본 문단에서 언제나 독보적인 자리를 지켜 온 온다 리쿠. 그는 데 뷔작 『여섯 번째 사요코』를 통해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본 공포와 그 뒤에 따라오는 섬세 한 여운을 포착했으며,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서정적 공포’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왔
다. 그리고 그 결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그의 작품 속에서 고요히 이어지고 있다. ‘노스탤지어의 마술사’인 그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연작소설집 『커피 괴담』을 내놓았다. 오래된 카페의 고요한 시간, 낯선 기운이 깃든 순간들, 작가가 직접 겪고 들은 이야기들이 잔잔하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독자를 서늘한 세계로 이끈다.
“커피 괴담에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선언하고 시작하는 네 남자의 기묘하고 별난 세계.
레코드 회사의 프로듀서 ‘쓰카자키 다몬’은 어느 날 교토에 있는 친구 오노에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교토의 한 오래된 카페로 향한 다몬은 그곳에서 오노에와 또 다른 친구 미즈시마와 조우한다. 오노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카페를 순례하며 각자 알고 있는 괴담을 들려주는 모임, 일명 ‘커피 괴담’을 제안하고, 다몬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아 귀를 기 울이는데…….
일상에 스민 공포의 온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괴담들은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는 물론, 일상 속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한데 묶었다. 지어낸 괴담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마저도 실제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각색한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혹시 나에 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닐까?’ 하는 묘한 잔상이 오래 남는다.
온다 리쿠는 “정기적으로 무서운 작품을 쓰고 싶어진다는 것을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했으
며, 데뷔 30주년을 맞이하여 비로소 내가 호러 체질의 작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 담담한 고백은 이번 작품을 어떤 마음으로 집필했는지를 보여 주며, ‘커피 괴담’이라는
제목 너머에 놓인 서늘한 세계를 더욱 또렷하게 비춘다.
『커피 괴담』은 그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인간 근원에 놓인 ‘공포’라는 감각
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보여 주는 작품이다. 마치 오랫동안 품어 온 커피 향이 은
근히 퍼져 나오는 듯, 이번 작품 역시 독자들에게 은밀하고 특별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카페, 괴담을 부르는 공간
온다 리쿠는 오래전부터 ‘맛있는 커피는 밖에서 마신다’는 신조에 따라, 여러 카페를 찾아다니는 습관을 이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자연스 레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페에서 경험해 온 감각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되살아났고, 자신에게 맞는 원두를 찾아다니는 ‘카페 순례’가 그의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간다, 교토, 고베, 오사카에는 그가 사랑한 카페들이 있다. 어둑한 조명과 오래된 나무 냄새, 바 리스타의 손길, 낮과 밤이 서서히 섞이는 창가 자리…….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는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현실과 아주 살짝 어긋나 있으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하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끼는 미묘한 기운이 카페 안을 감돌고 있다.
『커피 괴담』에는 작가가 실제 방문했던 공간들이 조용히 스며 있다. 다몬과 친구들이 커피 테이 블을 사이에 두고 괴담을 나누는 장면은 그런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났을 것이다. 책을 펼친 독자 역시 그들과 함께 앉아, 커피 향 너머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기묘한 그림자를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