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나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등불처럼 밝혀지기를,
그 빛이 서로를 비추어 결국 모두의 길이 되기를
1957년, 인류 최초로 우주로 쏘아 올려진 생명체가 있었다.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던 개 중에서 선발된 라이카라는 이름의 작은 강아지였다. 라이카는 수많은 극한 훈련을 견뎌냈다. 영리하고 온순했으며, 사람의 지시에 잘 순응했다. 그렇게 홀로 우주선에 실려 아득한 우주로 올라간 라이카는 발사 몇 시간 만에 스트레스와 열기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
『방구석이 좋을 리가 있나』의 기획자 중 한 명이며 집필에 참여한 ‘제이’는 은둔·고립 청년들을 만나며 라이카를 떠올렸다고 술회한다. 스트레스를 잘 참아냈기에 좁은 곳에 갇혔던 라이카처럼, 청년들도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성정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상처받고 결국 방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여기, 은둔·고립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에 있다고 해야겠다. 우리 사회는 은둔 청년들을 무기력하고 나약한 실패자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들의 실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임순례 감독은 추천사에서 그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실로 남들보다 더 섬세한 감각을 가졌고 기본적으로 배려심이 많은 사람들”. 청소년 상담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영민 수녀의 분석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 사람보다 섬세한 결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그 솜털 같은 섬세함으로 타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깊은 상처를 받는다. (...)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를 공격하는 대신, 자신을 가리는 방식으로, 먼저 스스로를 철수시키는 길을 택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노지향 행복공장 원장은 프롤로그에서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언급한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키가 크면 발목을 자르고, 작으면 몸을 늘렸던 잔혹한 프로크루스테스. “우리 대부분은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에 맞춰 재단된 삶을 살고 있다. 나의 발이 잘리고, 팔이 늘려진 채로.” 그 재단의 침대에서 도망쳐 자신의 방에 몸을 숨긴 청년들을 우리는 그저 단순히 실패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몇몇 특이한 청년들이 허약해서가 아니라 혹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이 너무 거칠어서가 아니었을까.
어른들도 살기 안 힘든 사회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방에 숨은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어른들 역시 계속 우리 사회에 쌓여가고 있으며, 그 역시 이 책의 테마와는 구분되지만 중요한 문제다. 노지향 원장은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은둔·고립 문제는 청년을 넘어, 청소년에서 중년, 장년까지 확산되는 뚜렷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무척 심각한 상황이다. 당사자나 그들의 가족, 혹은 특정 세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모든 세대가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아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책은 이렇게 처음부터 은둔·고립 청년의 문제가 어느 ‘게으른 개인’, ‘나약한 청년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길을 잃은 어린 펭귄이 한동안 웅크리고 눈보라를 버텨내듯,
이들 역시 잠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2장에 실린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글 제목을 보면 은둔의 시간이 지닌 복잡한 의미가 드러난다. 「애벌레의 시간」, 「불편해할 용기」, 「멈춰 있는 시간 사이에」, 「기다림은 열린 문」 은둔과 고립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변환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김기석 목사는 추천사에서 ‘낮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복공장’은 낮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그 신음소리를 하늘의 부름으로 들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 그리고 이 책이 다루는 은둔 청년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류 사회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대신, ‘달의 이면처럼 눈에 보이지 않던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모으기 위한 버티기로, 진실을 탐구하던 시간으로 청년들의 시간을 우리 사회가 다시 이해해 준다면 어떨까. 은둔·고립 청년들을 자원을 낭비하는 부적응자로 매도하던 사람들의 눈에도, 가장 유용할 수 있는 경험을 갖춘 인재로 그 청년들이 다시 보일지도 모른다.
책은 회복 과정의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사실 은둔·고립에서 청년 한 사람을 구해내는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다. 수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고, 고립-재고립, 은둔-재은둔을 반복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재고립률이 50%를 넘는 현실 속에서, 책은 회복이 결코 직선적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행복공장과 꾸준히 관계를 이어온 청년들의 경우 재은둔율이 확연히 낮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계와 신뢰의 중요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행복공장이 5년간 진행한 다양한 프로그램들, 치유캠프, 생활연극전문가 과정, 직업교육, 일 경험 지원, 그리고 캄보디아 청소년을 돕는 ‘우리가, 우리를’ 프로젝트들은 구체적인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우리가, 우리를’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 입장으로의 전환이 청년들에게 전환의 기회를 부여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는 은둔 청년 지원이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상호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묵묵히 보여준다.
변화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기다림의 기술’이다
자녀가 은둔을 시작하면 부모들은 조급함을 느끼고, 얼른 ‘정상’으로 돌려놓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은둔 자녀가 있다는 것을 사회적 낙인으로 여기고, 상태가 조금 호전되면 자조 모임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은둔·고립 청년 문제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기다림이다.
1970년대 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2년간 ‘무위도식’의 시간을 보냈던 임순례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그 상황에서 탈출시킨 건 나의 엄중한 현실 인식 덕택이지만, 가족이나 주변의 비난이 배제된 무관심 덕도 컸던 것 같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내면이 힘들 은둔자에게 가혹한 비난이나 대안 없는 지나친 걱정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묵묵히 지켜봐 준다면 본인의 현실 인식 감각이 천천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방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문제적 행동을 벌이거나 스스로를 가두기 전에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포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호를 포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신호에 응답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노지향 원장은 은둔을 경험한 청년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행복공장의 프로그램에 스태프로 참여하고, 서울 사무국과 홍천수련원, 커피차 ‘영차’에서 일하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이들을 “세상을 구할 어벤저스”라 부른다.
행복공장의 모토는 ‘한 번에 한 사람’이다. 노지향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쓴다. “한꺼번에 들판을 태우는 거대한 불꽃보다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한 사람에게로 전해지는 등불의 길”을 가겠다고. 이는 성과주의와 효율성에 매몰된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기도 하다.
『방구석이 좋을 리가 있나』는 은둔·고립 청년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 전체에 관한 책이다. 경쟁과 성과, 효율과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 뒤처지고, 다치고, 멈춰 선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은둔·고립 청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가족, 관계자, 본인이 꼭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서로 다른 속도를 존중하며, 누군가 넘어진 길의 돌부리를 함께 치우는 일에 동참했으면 하는 것이 저자들의 소망일 것이다. 그것이 청년들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모습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