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피카소의 말을 나는 믿는 편이다. 따라서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인간은 예술가였다고 생각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언어와 약속의 세계로 편입되면서 꿈과 놀이를 가슴 깊이 묻어나가는 일이다. 이 슬픈 일은 하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세상에서나 노인들이 점점 어린이처럼 되어가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또 “드로잉이란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라는 요셉 보이스의 말도 믿는다. 신기하리만치 정확하게 표현된 이 말을 수없이 체험하면서 오늘도 선을 긋는다. 선에 집중하면서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그 자체가 위로이고 보상인 연습, 그 자체가 좋다. (p.8)
맨 끄트머리에 달려 있다가 결국엔 떨어져 나와 땅에 뒹굴지만 그동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탓일까, 어쩐지 화석처럼 보이는 마른 낙엽들은 말이 많아 보인다. 그 말들에 귀를 기울이며 선을 긋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색, 여러 가지 재료로. 죽음이 품은 삶과 삶 속에 들어 있는 죽음이 동시에 보인다. 찬란하다. (p.18)
훈련되지 않은 내게 추상화는 방법을 모르고 해내야 하는 무엇이어서 어떤 몰입의 순간에 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망친다. 문제점을 생각해서 수정하고 고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망친다. 망치지 않는 창작의 흐름 속에 있기 위해 자꾸 조바심을 내게 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정물, 인물, 풍경을 그리는 일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마음과 그것을 구현하 는 방법을 모르는 손이 갈등하고 있으니 늘 엎치락뒤치락 씨름을 하는 형국이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림이 내게는 글과는 달리 머리를 통하지 않고 바로 감정과 접속하는 것이어서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감정 덩어리를 내보내는 출구와 통로를 찾아야 하는 이 작업은 오늘도 나를 살게 한다. (p.31-32)
염세주의는 엄청난 열정이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젊음의 몫이다.
흘러간 것들의 흔적을 가만가만 돌이키면서
젊음의 밀도가 유지되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는
인생의 법칙 하나를 이해한다. (p. 63)
이미 해둔 넘쳐나는 드로잉과 여러 가지 종이들을 이리저리 붙여서 비구상 드로잉을 해보았다. 드로잉 안에 보이는 텍스트는 졸저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와 『입안에 고인 침묵』 두 권을 해체해서 뜯어 붙인 것이다. 아무렇게나 뜯어 붙였기 때문에 글의 내용은 파편적이고 구성은 우연적이지만 붙이면서 다시 읽어보면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그 안에 담겨 있는지라 숨죽여 다시 읽는다. 평화와 고요의 흔적.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걸까? 누군가의 슬픔. 60억의 타인들. 어떤 청취의 형태. (p.70-71)
원고지와 뜯어진 책의 낱장에 쓰인 글자들을 읽으면서, 동시에 또 지우면서, 젯소와 잉크로 신나게 작업했다. 글에서나 삶에서나 늘 절제와 정제를 추구해왔던 스스로를 한순간에 해방시켰다.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시간을 가늠해본다. 1981년에서 2024년까지, 과연 이 작업을 하는 데 43년이 걸렸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43년 동안 한 가지 뜻을 마음 깊이 품고 살아온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p.89)
곡선은 흐름의 리듬이다.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고 끝이 없고, 끊어지지도 않는. 생은 내게 곡선의 리듬으로 살라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무언가 했다면 그건 내 안의 직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 갈무리할 수 없었던 나의 직선들은 꺾이고 부러지고 동강이 나서 거칠고 볼품이 없다. 자기 직선들을 갈고 닦아 죽죽 벋어나가는 인간들, 대체로 남성인 그들이 부러웠던 때가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아무렇게나 터져나와 삐뚤빼뚤 울퉁불퉁, 도대체 모양새가 안 잡히는 직선들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던 때였다. 그림 덕분에 좀 나아졌다. 나의 직선들은 약간 부드러워졌고, 곡선들은 조금 단단해졌다. 곡선인 듯 직선인, 직선인 듯 곡선인 나만의 선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꿈을 꾸며 오늘도 텅 빈 캔버스 앞에 선다. 선의 충동을 소화해나가는 것이 어느덧 나의 인생 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제가 있는 인생이라니, 모든 의무와 책임이 스트레스였던, 삐딱했던 젊은 시절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p.97-98)
내가 과연 남은 인생에는 지도에 나타난 길을 따라 꾸준하게 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늦게나마 지도와 신호등이 생겨 적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적잖이 든든하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온 모든 사람들 그리고 뭔가 유난히 취약했던 내게 닥쳤던 유난히 어려웠던 많은 일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젊음이 갔다. 온갖 갈등을 싸고 메고 지고. 늙음이 온다. 고요의 수레를 타고. 인생이 공평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순간은.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