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걸어다니는 한 권의 책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어떤 사람이든 그 나름의 부피와 깊이를 갖고 있다.
그를, 그녀를 이해해 가는 과정은 ‘그대라는 책 한 권’을 오래도록 읽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어 온 이야기와 더불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오늘의 당신은, 마침내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될 당신이라는 책 한 권의 어느 부분에 해당할까.
이명행의 『이야기 짓는 사람 호모 픽토르』는 소설가의 방식으로 쓴 인문 에세이이다. 지은이는 사람을 ‘이야기 속에 사는 존재’로 규정하고, 우리가 엮어내는 서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또 왜 그것이 시간 속에서 낡아지는지, 낡아질 때는 어떤 이야기로 갈아타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책 속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 온 영화 〈라쇼몽〉이나 〈버드맨〉, 〈더 원더〉와 같은 많은 영화들, 마르셀 뒤샹을 필두로 한 쿠사마 야요이,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동서양의 화가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철학자인 질 들뢰즈, 슬라보예 지젝, 롤랑 바르트 등 동서양의 뛰어난 예술가들, 철학자들, 작품들이 풍성하게 등장한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등장과 작품명만으로도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풍부하고, 쉽고, 적확한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오랜만에 밀도 있고 고급한 지식을 접하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장을 읽든 모든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며, 따로 읽어도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지은이가 책 속에서 소설가의 방식으로 가볍게 제안하는 이름인 ‘호모 픽토르Homo Fictor’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의지’를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짓는 인간’을 의미한다. 인간은 숙명적인 결핍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짓고 진실을 추구하지만, 결코 표상화된 것으로는 진실(진리)을 밝힐 수 없다는 것, 그렇지만 거기에 다다르고자 하는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그 언저리에서 어른거리는 진실의 그림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 지어 온 이야기가 낡아지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호모 픽토르’, 새로운 이야기를 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 지은이는 ‘읽으면 위로가 되는 책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바로 이 점을 힘주어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지금 당신의 삶이 낡고, 조금 진부하고, 막막하다고 느낀다면,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시간이다. 가혹하도록 유한한 생명의 시간이 더러 우리를 깊은 나락으로 떠밀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우리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