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벽을 응시하고 있는 그 순간이 바로 기도 시간이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기도로 여겨주셨다.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의 깊은 탄식을 기도로 받아주셨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신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 얼굴을 비춰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하나님은 내 상한 마음을 다 아신다. 모두 받아주신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거창할 것도 없고 꾸며낼 것도 없다. 내 마음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된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만 나오면 된다. 신자도 이 땅에서 눈물을 흘린다. 천국에 소망이 있지만, 지옥 같은 이 땅을 살아내야 한다. 삶이 형통하고 아무 문제 없는 인생이 신자가 아니라,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인생이 신자다.
_1.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안나 중에서
내 뜻을 놓고 기도하면 응답이 돼도 문제고 안 돼도 문제다. 내 뜻이 이루어지면 기도할 목적이 사라진다. 전처럼 기도하지 않는다. 반면,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심하여 기도의 자리를 떠난다.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에 교회를 떠나기까지 한다. 결국 내 뜻만을 구하는 기도는 결말이 좋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다르다. 일단 응답이 빠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에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그리고 내 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본다. 이전에는 내 기도 제목이 응답되어야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자주 보니,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고백한다.
_2. 깊은 상처를 극복한 안나 중에서
신자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죄악 된 본성 때문이다. 우리의 타고난 본성이 기도하기를 격하게 거스르기 때문이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자기의 죄악 된 본성을 따르는 일이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어하는 타고난 죄성에 순응하는 것이다. 죄와 타협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 된 본성과 싸우지 않기에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다. 기도하기를 쉬어서 죄가 아니라, 죄를 그대로 두니 기도를 쉬게 되는 것이다. 죄성을 방치하니 기도를 외면하는 것이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인 이유는 죄를 짓기 때문이다. 기도를 쉰 결과 죄가 나타난다. 죄를 향해 끌려가는 본성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_3.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한 안나 중에서
신앙은 버티는 것이다. 내가 기도한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도 응답, 문제 해결은 내 공로로 주어지지 않는다.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해 주신다. 그 과정에서 죽을 것 같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기도하면 그 세월을 버틸 수 있다. 버텨낼 수 있다. 기도하면 지나간다. 내가 버티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니 버틸 뿐이었다. 그저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기만 했다. 돌파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가혹한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지나와 있었다. 주님이 하셨다. 당장 응답이 더디고 문 제가 여전할지라도, 기도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버틴다. 끝까지 버텨낸다.
_4. 60년 과부 세월 굶어 죽지 않은 안나 중에서
나 혼자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뜻이다. 나를 택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의 증거다. 모두 포기하고 뒤돌아설 때, 하나님은 그들을 코웃음치시며 가장 약한 사람을 세워 기도하게 하신다. 그 기도의 자리를 함께 지키시며 지속하게 하신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을 보게 하신다. 비웃던 사람들을 민망하게 하신다.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나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을 살리신다.
_5. 홀로 기도의 자리를 지킨 안나 중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은 좋다. 그런데 문제는 보기 싫은 사람을 계속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 사람을 치워달라, 심판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다. 용서할 힘도 구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 버틸 힘을 구했다. 그를 견뎌낼 힘을 간구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그를 마주하면 이상하리만치 평안했다. 화도 미움도 울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냥 평상시처럼 대할 수 있었다. 오히려 더 도와야겠다는 마음에, 뒤에서 모르게 많은 것을 도왔다. 새벽마다 하나님을 대했더니 사람을 대할 수 있었다.
_6. 무시하는 사람들을 돌이킨 ‘선지자’ 안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