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현장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일요일에 신고도 하지 않고 해체 공사를 시작했다가 관리인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그림 4]. 다음 날에는 넥타이를 맨 채 청소부터 하려고 했으니 말 다 했죠. 이 프로젝트는 설비 공사, 미장 공사, 가구 공사 등을 몽땅 분리해서 발주하고 직접 감리를 했습니다. 사사키 씨 부부와 함께 페인트칠을 하고 바닥을 깔고 의뢰인에게 확인을 받는 과정에 이르는 A부터 Z까지 전부 저희가 직접 했습니다. -48쪽
솜씨 하나로 각지의 현장을 돌며 일하는 떠돌이 기술자도 만났습니다. 제가 만난 미야자와 기이치로(宮澤喜市郎) 씨[그림 6]는 흙으로 지은 창고 등에서 볼 수 있는 ‘미가키’라는 미장 기술의 달인으로, 교토 시마바라 지역의 옛 연회 시설 ‘가도야’의 현관 벽을 ‘오쓰미가키’라는 기법으로 반짝반짝하게 마감했습니다. 이 같은 특별한 기술은 필요로 하는 곳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떠돌이 기술자들은 늘 일본 전역을 떠돌며 일합니다.
- 67~68쪽
이제 착공입니다. 목재로 만든 골조가 완성되었을 무렵, 의뢰인인 세이이치 씨가 오키나와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때부터 협동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카시호의 집〉과 마찬가지로 의뢰인이 현장 일을 배우러 왔거든요. 이번 ‘반복 작업 대작전’의 대상은 네 동의 외벽에 붙일 약 100평 분량의 삼나무 판자였습니다. 성실한 학생인 세이이치 씨는 책과 영상을 통해 사례를 찾아보고 이런저런 실험을 거쳐 자기 나름대로 판자를 탄화 가공하는 법을 터득해 갔습니다[그림 15]. - 93쪽
〈헬로 가든〉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마을의 실험 광장’이라 는 콘셉트로 마련된 오픈 스페이스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공 터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지, 그 것을 하려면 어떤 장소가 필요한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공간을 조금씩 가꿔 나갔습니다[그림 10]. 삶의 기본 요소인 ‘식재료’를 조금이라도 직접 길러 보고자 땅을 경작해 채소나 허브를 키우기도 하고 ‘다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만드는 실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음식을 싸 와 피크닉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 109~110쪽
세이요시의 나머지 찻방 13채의 초가지붕은 1년에 한 채씩 차례로 교체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일단은 연구실 주최로 3년간의 교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참가자 공모를 위해 지역 신문에 1만 2천 장의 홍보 전단지를 끼워 배포했습니다. 모집 조건 난에는 ‘진지하게 임해 주실 분’, ‘3년 연속으로 참가할 수 있는 분’이라고 적었습니다[그림 9]. - 131쪽
더 심각한 것은 목욕탕이 사라지면 목욕탕을 생활 인프라로 이용하던 옛집이나 마을이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지은 지 약 100년이 된 공동 주택이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목욕탕 손님들이 드나들던 상점이 함께 문을 닫습니다. 목욕탕이 사라지는 것은 마을 하나가 사라지는 것만큼의 파급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목욕탕을 주축으로 한 ‘지역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 142쪽
현재 일본이 직면한 사회 문제는 인구감소입니다. 인구감소로 전국 주택의 13~14%에 달하는 빈집이 발생했고 현재 하나둘씩 해체되고 있습니다. 해체 작업에서 나오는 폐자재 대부분은 재자원화되고 있지만 거의 다 칩으로 만들어 합판을 생산하거나 바이오매스 연료로 사용되며 건축 자재로 재이용되는 비율은 낮습니다. - 165쪽
저희의 활동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일하지 않는다’입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다들 너무 진지해지기 때문이지요. 둘째, 폐기물을 활용하는 게 핵심이므로 누구에게 제작을 발주하지도, 자재를 사지도 않습니다. 셋째, 활동은 강제성이나 지시 체계 없이 각자의 동기에 따라 자율적으로 참가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다들 본업이 있으니까 주말에만 활동합니다. 부른 사람도 없는데 마음대로 찾아가서 프로젝트랍시고 뭘 만들기도 합니다[그림 3]. - 182쪽
실제로 집합 주택을 설계해 보고 깨달은 사실은 건물을 다 지은 다음에야 마을과 건물의 매력을 내세워서는 입주민 유치에 실패해 융자를 못 갚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도코나메 시가 살고 싶은 마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도시 계획안을 작성했습니다[그림 4]. 예전의 도코나메는 기차의 종착역으로 문화가 한데 모이는 곳이었으나 주부국제공항 이 생기고 기차가 그대로 통과하게 되면서 나고야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했습니다. - 198쪽
처음에는 돌담 쌓기를 가르치는 선생님, 배우고자 하는 학생, 수리를 원하는 돌담의 3요소를 연결하는 것이 학교의 주요 활동이었으나 언젠가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 단체에서 “우리 동네에 수업을 받을 사람도, 장소도 다 준비되어 있으니 가르쳐 주러 오세요” 하고 연락을 주신 적도 있고, 지자체에서 옛 시골길을 수리해 달라고 연락을 주시거나 어느 대학에서는 “저희 연구실에서 드나드는 지역에 돌담이 있는데 문제가 생겼으니 와서 알려주세요” 하고 요청하신 적도 있습니다. - 218쪽
‘접속의 시대’는 하나의 틀에서 다양성이 보장되는 시대였습니다. 반면 ‘단절의 시대’는 모두가 공유하는 틀이 없고 서로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입니다. 저는 상황이 이렇게 된 요인 중 하나가 방대함(과잉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에는 몇 억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고 인터넷에서는 매일 대량의 정보가 오고 갑니다. 정보의 양이 너무 방대하다 보니 이를 담아낼 하나의 시스템, 하나의 틀이 만들어지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시스템으로 분산되었지요. -233쪽
집을 지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인 콘셉트도 네 가지입니다. 우선 교육(Education)입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집주인이나 집주인 가족, 자원봉사자, 지역 주민이 다 함께 배우는 기회로 만들고자 합니다. 따라서 참여한 모두가 준전문가가 되는 디자인이 될 수 있도록 힘씁니다. 두 번째는 생태(Ecology)로,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살 수 있는 집, 유지 보수가 극히 적은 집을 추구합니다. 그러한 집을 만들려다 보면 자연스레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 249쪽
모호하게 상상만 하고 있던 작업을 이미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는 일본의 건축가를 만나니 뛸 듯이 기뻤습니다. 확신을 넘어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같이 한국에서의 첫 DIT 워크숍을 열어보자고 제안했고, 2019년 12월 군산에서 첫 DIT 마을 재생 워크숍을 열었어요. 오래 함께 작업했던 지역 기획자, 청년 목수들 모두 “내 돈 내고 남의 집 고치는 노가 다에 누가 오겠냐”라며 오더라도 절반은 중간에 도망갈 거라고 반대했었지만, 발로 하는 건축, 팔로 하는 건축의 힘을 체험한 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