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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을 것인가?

왜 성장과 기후 보호는 양립할 수 없는가. 그리고 우리는 미래에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 ISBN-13
    979-11-93482-15-5 (03300)
  • 출판사 / 임프린트
    도서출판갈라파고스 / 도서출판갈라파고스
  • 정가
    21,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12-0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울리케 헤르만
  • 번역
    강영옥
  • 메인주제어
    사회, 문화: 일반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사회, 문화: 일반 #자본주의 #경제 #기후위기 #환경 #녹색성장 #에너지 #마르크스 #전시경제 #생존경제 #순환경제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5 * 210 mm, 348 Page

책소개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있다?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작동 원리, 기후 재난 해결, 피할 수 없는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분절되어 있던 논의를 하나의 서사로 통합하여 독일에서 14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케인스소사이어티상 수상자가 제공하는 ‘자본주의 종말론’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틀로, 전 세계 12개 국에 판권이 팔린 화제작.

 

이 책은 풍부한 역사적 사료와 명료한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왜 이토록 역동적인 체제인지, 경제학자와 환경보호론자들은 성장에 대해 무엇을 오해하는지, 자본주의와 평화롭게 이별하고 기후 재난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의 복잡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흥미롭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 성장은 어떻게 ‘발명’되었을까? 자본주의가 탄생한 지 2백 년이 넘었는데도 왜 이 체제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가득할까? 우리는 왜 자본주의를 잘못 이야기하는가?

 

많은 경제학자와 환경보호론자는 친환경 에너지, 리사이클링, 공유경제, 기술의 발달 등을 통해 ‘녹색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를 구하면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심지어 환경보호론자들조차 비행기 여행을 할 수 없거나, 모두가 자기 집을 소유하기 어려운 미래를 외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기술의 진보, 친환경 에너지, 리사이클링, 공유경제 등에 대한 모든 믿음에 체계적으로 반박하며 단언한다. ‘녹색성장’은 망상일 뿐이다. 이번에는 기술이 우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하면 불공정함과 불안에 고통받지 않으면서 질서 있게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기후 위기에서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의 전시경제’에 있다. 앞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해체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석기 시대의 동굴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풍성할 수 있다. 저자는 진지하게 묻는다. 끝없는 성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해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예로부터 자본주의가 종말하리라는 예언들은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저자는 과거의 예언들은 틀렸지만,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 자체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차

서문 | 자본주의의 종말

 

1부 | 자본의 부상

1장: 자본주의의 축복, 부를 가져오는 성장

2장: 1760년 이후의 영국, 성장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3장: 에너지 없이는 불가능한 자본주의

4장: 순식간에 낙오된 전 세계 국가들

5장: 글로벌 사우스가 고소득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

6장: 착취와 전쟁은 오히려 자본주의를 해친다?

7장: 확장 아니면 붕괴? 자본주의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

8장: 번영의 대가는 파괴되는 세계

 

2부 | 녹색성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9장: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산화탄소

10장: 원자력에 대한 오해

11장: 믿음직하지 못한 태양 및 풍력에너지

12장: 에너지 저장 문제

13장: 돈 잡아먹는 에너지 전환

14장: 실현될 수 없는 탈동조화의 꿈

15장: 기술 혁신과 디지털화가 기후를 구할 수 없는 이유

 

3부 | 자본주의의 종말

16장: 경제가 붕괴한다면

17장: 경제학자들의 실패

18장: 1939년 이후의 영국의 전시경제

19장: 우리는 미래에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결론 | ‘생존경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감사의 말

참고문헌

본문인용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오늘날의 경제 체제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룬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자본주의는 매력적이지만 미래가 없다. 앞으로 ‘생존경제’의 시대가 올 것이다.

_15쪽

 

왜 산업혁명이 하필이면 1760년경 영국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이 놀라운 현상을 다룬 책이 수천 권에 달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남아 있다.” 역사학자 조이스 애플비는 이렇게 평가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표준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 적잖이 당혹스러워한다. 대체로 사유 재산, 분업, 시장, 은행, 교육이 성장을 창출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 중 그 어느 것도 왜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는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_28~29쪽

 

냉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따라서 노예 무역은 경제 면에서는 주변 현상에 가까웠고 자본주의가 발생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유럽의 제국주의는 강제 노동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민지를 만들고 남미에 매장된 풍부한 금은을 약탈했으며 전 세계의 원료를 강탈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극도의 폭력성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자원을 탈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추측이 종종 제기되는 것이다.

_74쪽

 

자본주의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할 때만 이길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개개인이 더 부유해져야 모두가 더 부유해진다.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이 발전하기 위해 식민지가 필요했다고 믿는 사람은 식민지 군주들이 저질렀던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론자들은 자본주의가 탄생하기 위해 폭력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해도 착취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진실은 훨씬 쓰라리다. 다른 민족들을 폭력으로 압제하는 행위는 경제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었을뿐더러, 자신의 발전을 해치지 않고도 쉽게 폭력을 포기하는 것도 가능했다.

_77~78쪽

 

자본주의는 성장할 때만 안정적이다. 그래서 흔히 자전거에 비유된다. 움직이지 않는 순간 바로 쓰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장 강박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경제가 위축되면 기업이 파산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니 반갑지 않은 건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왜 최소한 정체 상태라도 유지할 수 없는 것일까? 왜 끊임없이 팽창하고 환경 파괴 행위를 되풀이해야 할까?

답 하나는 이렇다. 성장은 대출을 받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대출은 경제가 추가 성장해야만 상환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곧 금융경제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대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_86~87쪽

 

자본주의는 광고에서 암시하는 이미지와 다르게 작동한다. 새로운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상품은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다. 최종 목표는 일자리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일한다. 일자리를 가진 자만이 소득과 안정, 사회적 인정을 얻는다.

미국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이미 1958년에 특이한 현상을 지적했다. 경제 위기일 때는 공장 가동률이 낮아 제품이 많이 생산되지 않아도 유감스러워하는 사람이 없다. 줄어드는 제품량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갑자기 자동차가 덜 생산된다고 고통받는 사람은 없다. 대신 경제 위기로 일자리가 사라져 고통받을 뿐이다. 우리는 소비로 인해 죽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사실 우리는 생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공동의 목표는 완전 소비가 아니라 완전 고용이다.

_93쪽

 

많은 청소년이 자신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노이바우어는 13세 여학생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냥 저는 당신이 아이를 갖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요” 노이바우어의 말문이 잠시 막히는, 종종 듣는 질문이다. 미국의 한 시위에서 어떤 소녀는 이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여러분은 노쇠해서 죽겠지만 저는 기후 변화로 죽게 될 거예요.” 스위스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아이들의 두려움이 어른들의 두려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경영자 들 앞에서 강력하게 선포했다. “저는 여러분이 희망을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공포에 사로잡히길 원합니다. 제가 느끼는 두려움을 여러분도 느끼길 원합니다. 매일. 그래서 행동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집에 불이 났을 때처럼 행동하길 원합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기후 위기에 대해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이 많은 성인이 오래전부터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전 세계의 설문 조사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인류는 기후 변화 때문에 멸종할 것이라고 답했다.

_99쪽

 

게다가 전기는 그대로 저장할 수 없는 탓에 비축이 결코 쉽지 않다. 단순히 자두 1킬로그램을 끓여서 잼처럼 만들어 유리병에 저장하듯이 보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전기를 화학적으로 변환한 후에야 그 에너지를 배터리나 수소의 형태로 오래 보존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항상 에너지 일부가 손실된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는 저렴하지 않고 비싸다. “태양은 계산서를 보내지 않는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햇빛과 바람은 공짜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에너지 전환은 거대한 물량 전쟁이다.

_144~145쪽

 

이런 행동은 합당하고 이에 대한 별다른 대안도 없지만, 자기 소망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추측은 반증할 수 없는 것이므로 반론을 겁낼 필요도 없다. 특히 옥스퍼드의 연구자들은 인류에게 뜻밖의 금전적인 축복까지 찾아올 것이라며 즐거워한다. “신속한 녹색에너지 전환은… 수조 달러의 절감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즉 기후 정책은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으며 막대한 이익만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_153~154쪽

 

인류가 진정으로 기후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지상에만 머물러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녹색당도 외면하고 싶어 한다. “비행은 정말 대단한 성과입니다.” 교통 전문가 토니 호프라이터는 열광한다. “비행은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고, 문화 교류를 촉진합니다.” 그러나 토니 호프라이터도 앞으로 항공기들이 농업 기반 연료보다 합성 케로신(E-케로신)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_170쪽

 

오직 한 분야만 확장할 수 있고 확장해야 한다. 바로 친환경 에너지다. 하지만 이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성장이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공짜였던 것, 즉 지구상 인간의 ‘생존’을 하나의 제품으로 생산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야외에서 생활하고, 농사를 짓고, 담수를 사용하는 데 돈을 내지 않았다. 미래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해마다 수십억 유로가 필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지출이 발생하지만, 기후 재난을 막기 위해 경제는 축소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장과 환경 사이에서의 갈등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적 지출은 경제 성장을 통해 그 비용을 충당해왔다. 보건 및 학교 시스템에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누구도 무언가를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더 많아졌고, 재원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포기를 받아들여야 할 때이며 누가 어느 정도까지 절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기후경제학자가 이런 비관적인 분석을 거부하고 낙관주의를 퍼뜨리고 있다. 이들은 친환경적인 경제 기적을 약속하며 기후 보호가 경제 호황까지 일으킬 거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_181~182쪽

 

기술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좋은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수천 년째 사용되고 있는 발명품조차 여전히 비싼 경우도 있다. 따라서 기술 발전이 기후 재난을 확실하게 막아줄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은 아슬아슬하다.

무엇보다 시간적 차원이 혼동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일화들은 기술의 미래가 늘 예상보다 훨씬 나았다고 암시하려 한다. 그럴 수도 있다. 다만 현재 우리에게는 우연한 돌파구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기후 재난을 막으려면 바로 행동해야 한다.

_191쪽

 

환경은 잘 보살핌을 받아 회복되어야 하고 친환경 기술이 더 저렴하고 우수해진다면 훨씬 도움이 될 거라는 쇼어의 주장은 분명 옳다. 하지만 빠진 부분이 눈에 띈다. 바로, 거대한 환경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이 자본주의임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비판론자들은 자본주의를 마치 하나의 케이크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케이크에서 절반을 버린다 해도 여전히 남은 조각들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성장비판론자들은 소득을 절반으로 줄인 뒤 나머지를 공평하게 분배하자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마음대로 조각낼 수 있는 케이크가 아니다. 소득이 감소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감소한다. 위축되는 자본주의는 따가운 햇볕 아래 놓인, 바닥에 구멍까지 난 ‘컵 아이스크림’과 가장 닮았다. 열기에 아이스크림이 녹을 뿐 아니라, 남아 있던 끈적거리는 아이스크림도 땅속으로 스며들어 영원히 자취를 감춘다. 결국 원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듯 모든 게 사라진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상태도 아닌, 역동적인 프로세스다. 자본주의는 성장하지 않으면 곧바로 축소된다.

_208쪽

 

이런 수치들은 충격적일 수 있으며, 자본주의가 종말을 맞이한다면 ‘석기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걱정에는 근거가 없다. 아무도 다시 동굴에 들어가 살게 될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성장비판론자들은 기후 중립적 삶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단 한 가지, 어떻게 하면 국민이 패닉에 빠져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할 빌미를 줄 심각한 위기를 유발하지 않고 이러한 생태적 순환경제를 이룰 수 있는지다.

_213~214쪽

 

따라서 혼란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경제를 축소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요구된다. 다행히 인류 역사 속에 모범 사례가 있다. 하필이면 1939년 이후 영국의 전시경제가, 기후 중립 세계를 질서 있게 추진하는 데 영감을 주는 사례다. 물론 당시의 조치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현재 우리는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시대를 살고 있으며 기후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 아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만한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_226~227쪽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저질렀던 실수들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대부분의 결정이 즉흥적으로 내려졌는데, 나중에야 총력전에는 포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1939년에 영국은 더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바로 일종의 ‘민간 주도 계획경제’를 수립했다. 국가가 무엇을 생산할지 정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개인 소유였다. 회사, 공방, 식당, 상점은 국영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소유주는 사업체 운영 방안을 스스로 결정했다.

따라서 영국의 계획경제는 당시 스탈린 치하 소련의 사회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소련식 중앙 통제식 계획경제에서는 모든 기업이 국가의 소유이며, 국가는 공장이 나사못 하나 생산하는 과정까지 모두 통제했다.

_232~233쪽

 

그리고 낮은 수준일지라도 경제는 다시 성장할 것이다. 역설적이만 경제는 먼저 축소되어야 다시 확장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잠재적인 성장과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똑같지 않을 것이다. 위계 구조가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자연이 얼마만큼의 성장이 가능한지 결정한다. 지금처럼 성장이 자연을 얼마나 소모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_254쪽

 

기후 보호는 경제가 축소될 때만 가능하다. 변화는 언제나 두렵다. 특히 포기와 관련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너무 우울한 미래만 상상해서는 안 된다. 생태적 순환경제는 아름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제 질서는 충실한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을 제공해줄 것이다. 자극, 변화, 깨달음, 교류, 우정, 사랑, 인정, 즐거움, 향유, 휴식, 놀이, 스포츠는 물론, 안정, 이동성, 돌봄, 일, 성취감 등도 말이다.

지금까지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일으키지 않고 생태적 순환경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불분명했다. 녹색축소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생존경제’는 어떻게 혼란 없이 성공적인 전환을 이룰 수 있는지 제시한다. 기업은 여전히 민간 소유로 남되, 국가는 무엇을 생산할지 정하고, 희소 물자를 분배한다. 이 개념은 1939년 이후의 영국의 전시경제를 참고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종말이다.

_260쪽

서평

 출판사 서평

 

★★ 케인스소사이어티상 수상자의 

‘자본주의의 종말’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틀.

독일에서 14만 부 이상 판매된 화제작.

 

●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1760년경, 성장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우리는 왜 자본주의를 잘못 이야기하는가?

 

자본주의는 매력적이다. 성장과 부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본주의의 발생에 대한 이론이 수십 가지도 넘지만, 놀랍게도 현재까지 정설로 딱 확정된 이론이 없다. 자본주의가 발생한 지 2백 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역동적이고 통합적인 체제로서 우리 삶의 요람부터 무덤까지 아주 깊숙이 침투해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의 저자 울리케 헤르만은 현재의 복잡한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진단하고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발상지를 되짚어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따라서 우선 저자는 왜 하필 1760년경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는지 살펴본다. 

 

놀랍게도 자본주의는 거대 자본, 사유재산, 시장, 은행, 지식과 무관하게 탄생했다. 우연히 발생하게 된 자본주의는 증기력이 발견되고, 철도가 등장하면서 점점 더 복잡하고 거대한 체제로 변모해갔다. 많은 사람이 식민지 착취와 노예제 덕분에 서유럽의 제국들이 막대한 부를 쌓고 자본주의 체제를 굳혀갔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식민지와 노예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재정을 휘청이게 한 적자 사업이었다. 자본주의는 착취와 전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착취가 자본주의를 키웠다는 주장은 의도치 않게 착취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한다. 

 

저자는 자본주의는 전쟁과 수탈이 아닌, 평화를 필요로 하는 체제임을 설명한다. 하지만 갈등이 생기면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처리된다. 기술은 무기화되고 살인은 산업화된다. 게다가 자본가들조차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충분한 돈을 벌어야 소비가 일어난다는 단순한 현상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하는 노조에 감사해야 하며, “노조는 자본주의의 구원자”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 성장과 기후 보호는 왜 양립할 수 없는가?

경제학자들도, 환경보호론자들도 오해하는

자본주의 성장의 가장 깊은 비밀.

이번에도 인류의 창의성과 기술이 우리를 구할 것인가?

 

지속적인 성장은 환경을 파괴하지만,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바로 이러한 성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딜레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과 환경보호론자들은 경제와 자연을 화합시킬 수 있는 방책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녹색성장’이다. 이들조차 삶에 한계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성장과의 결별을 두려워한다.

 

저자는 ‘녹색성장’을 실현해줄 기술들을 과대평가하는 모든 주장에 대해,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없앨 수 없는 이유, 원자력에 대한 오해, 태양에너지와 풍력에너지의 한계, 자원 부족, 제한적인 리사이클링 기술, 공유경제에 숨은 함정, 리바운드 효과, ‘에너지 전환’에 드는 거액, 에너지세의 불공정함, 가격 메커니즘의 오류, 현실을 은폐하는 ‘질적 성장’ 등의 문제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이된다. 현재 인류는 마치 여러 개의 지구를 소비할 수 있는 것처럼 에너지와 자원을 흥청망청 써대고 있다. 인류가 진정 기후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에너지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야 하며, 따라서 논리적인 결론으로, 경제도 함께 축소되어야 한다. 자동차도 줄고, 비행기 여행도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많은 기후 보호 연구자는 친환경적인 에너지 전환 덕에 경제가 호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낙관주의를 퍼뜨린다. 정작 이들은 거시경제 모델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고, 이제까지 막대한 자금이 기후 보호 연구에 투입되고 있지만 ‘녹색성장’이 가능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연구자들은 녹색성장이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질 것처럼 군다. 저자는 이번에도 기술의 발달이 우리를 구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체계적으로 반박하며 ‘녹색성장’은 망상이라고 단언한다.

 

 

● ‘자본주의의 종말’은 질서 있게 진행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의 전시경제에 그 답이 있다!

‘생존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질서의 도래.

 

“많은 사람이 여전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즉,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게 그렇게 어렵다면 그대로 유지하자, 라는 모토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택권은 없다. (…) 자발적으로 성장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삶의 기반이 파괴되어 성장이 강제로 종말을 맞이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쨌든 자본주의는 저물고 새로운 경제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인류를 살리는 문제이므로 가장 적합한 이름은 ‘생존경제’일 것이다.”_본문에서

 

‘포기’는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안정감’은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다. 성장비판론자들은 모든 사람의 소득을 줄여 성장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무시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경제가 축소되면 세상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1929년에 시작된 세계경제대공황은 사람들이 일자리, 소득, 희망, 장래성을 잃으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보여주었다. 이들은 포퓰리스트 지도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성장비판론자들은 비전을 방법으로 여기는 탓에, ‘순환경제’를 목표이자 방법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 거대한 환경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이 자본주의임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다루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성장을 억제한 뒤 나머지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역동적인 프로세스임을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다. 자본주의는 성장하지 않으면 곧바로 축소되고, 축소된 경제는 혼돈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혼란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경제를 축소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요구된다. 저자는 다행히 인류 역사 속에 모범 사례가 있다고 역설한다. 놀랍게도 1939년 이후 영국의 전시경제가, 기후 중립 세계를 질서 있게 추진하는 데 영감을 주는 사례다. 물론 당시의 조치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현재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과 현재 기후 재난을 겪고 있는 우리의 상황은 많이 유사하다. 영국은 전쟁이 터질지 예상하지 못했으며, 우리도 기후 위기에 뒤늦게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국은 발 빠르게 움직여 거의 하룻밤 만에 ‘민간 주도의 계획경제’ 체제로 전환했다. 특히 모든 국민이 희소한 물품들을 공평하게 나누어받았던 ‘배급제’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오히려 영국의 하층 계급은 전쟁 때 더 잘 살았고, 일시적이었지만 빈부 격차가 줄어들었다.

 

심각한 경제 위기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자본주의와 결별 가능한 방안을 제시한 계획은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영국의 전시경제는 그러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으며, ‘민간 주도 계획경제’가 어떻게 사회적 평화를 유지했는지 잘 보여준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자유 시장’과 국가의 개입은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철저한 대립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도 항상 기업과 정부에 의한 계획이 존재해왔던 것이다. 영국의 전시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극단적으로 새로운 것을 도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이미 내재된 것을 급진적으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성장 없이는 결코 지속될 수 없는 자본주의는 끝날 수밖에 없다. 사실, ‘자본주의 종말론’은 독창적인 예언이 아니다. 예로부터 무수히 많은 ‘자본주의 종말론’이 존재했고, 인류의 창의성과 기술의 진보를 믿는 연구자들은 이제까지 모든 ‘자본주의 종말론’이 거짓 예언으로 끝났다며 비웃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번에야말로 자본주의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후 재난에서 우리를 구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경제 질서는, 인류를 구할 ‘생존경제’이다. 기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종말은 예언이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다. 이 책은 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가장 설득력 있는 지적 안내서다.

저자소개

저자 : 울리케 헤르만
1964년 독일 함부르크 출생으로,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경제사와 철학을 공부했다. 경제 분야의 명성 높은 언론인이자 전문가이며,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다. 2000년부터 독일 신문 《타게스차이퉁》에서 오피니언부 기자와 국회출입 기자로 일했고 2006년부터는 경제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지면에 사회 및 경제 정책을 주제로 글을 쓰며, 텔레비전과 라디오 시사 토론에 자주 초청받는 단골손님이다. 지은 책으로 『경제학 천재들의 자본주의 워크숍』, 『자본의 승리(Der Sieg des Kapitals)』, 『만세, 우리가 지불할게: 중산층의 자기기만(Hurra, wir durfen zahlen: Der Selbstbetrug der Mittelschicht)』 등이 있다. 2016년에 케인스소사이어티상의 올해의경제 저널리즘 부문에서 수상했고, 2019년에는 “복지 국가에 대해 예리한 감각을 갖춘, 날카로운 저널리즘”의 공로를 인정받아 오토브레너언론상 특별상을 받았다.
번역 : 강영옥
덕성여자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독과에서 공부한 후 여러 기관에서 통번역 활동을 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행복한 노인은 늙지 않는다』, 『싯다르타』, 『말의 마지막 노래』, 『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인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 『호모 히브리스』, 『나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고양이 언어학』, 『아름답거나 혹은 위태롭거나』, 『상처 주지 않는 대화』, 『부유한 자본주의 가난한 사회주의』, 『언어와 존재』, 『동물의 직업』, 『스포츠의 탄생』, 『의학의 미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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