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상 수상 작가, 기후위기 해법으로 ‘동물’을 말하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가 지금 지구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누구나 이야기한다. 세계의 지도자들, 과학, 경제, 사회, 미래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수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고 이렇다 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저자는 ‘기후’와 ‘생물다양성’ 문제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주목하지 못하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환경·사회 문제의 대부분은 지구 문명사를 함께 이루어 온 존재, 즉 사람과 동물의 어긋난 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저자는 그 복잡하고 뒤틀린 이야기를 파헤치기 위해 인간-동물 4만 년 관계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다른 생명들과 이 세계를 공유해 왔는지, 그리고 어디쯤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를 추적하며 열렬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집필에는 5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를 담은 거대한 이야기를 추적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는 약 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인간이 그리폰 독수리 날개의 가늘고 속이 빈 노뼈에 다섯 개의 손가락 구멍을 뚫고, 그 숨결 같은 음이 흐르는 강물과 나뭇잎의 속삭임 속에 스며들던 순간.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16p
저자는 우리가 동물을 숭배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착취하고 파괴해 온 모순적인 역사를 탐구한다. 그 4만 년의 시간을 순수하게 담아내기 위해, 글은 수많은 동물 세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비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아가고 그래서 시종일관 흥미롭다. 예를 들어 제1부는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를 처음 발견한 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시절에 인간은 동물을 경외의 대상으로 숭배하면서도 먹이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 개념은 인간이 자연계의 정점에 있다는 우월적 사고를 강화했고 그 사상은 중세 신학자들에 의해 더욱 공고해진다. 최근의 과학적 연구들은 동물도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밝혀내고 있지만, 저자는 이런 주장들이 왜 이제서야 받아들여지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기후변화, 오염, 전염병, 홍수와 산불, 생물다양성 감소, 토양 악화…. 오늘날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환경 문제는 지구의 생명 그물, 즉 생태계의 건강이 무너져서 일어나는, 연속적이고 서로 긴밀히 연결된 사건들이다. 저자는 우리가 문명사를 일구기 시작했던 그때, 4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아닌 ‘동물’이라고 강조하며, 지금 위기에 처한 그들을 구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도 유지할 수 없다고 간절히 호소한다.
“동물은 이 생태계를 유지하고 돌보는 핵심 일꾼들이다. 2023년 예일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상어, 늑대, 수달, 소, 얼룩말, 물고기, 들소, 코끼리, 고래와 같은 아홉 가지 주요 동물군이 매년 64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흡수한다고 한다. 이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데 필요한 탄소 흡수량에 맞먹는 수치다. 이 사실을 하늘에 대문짝만하게 써서 세상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동물이 수천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해온 일을 대신할 기술은 어디에도 없다.” -21p
야생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현대인들은 자연 세계를 읽는 법을 거의 잃어버렸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그 세계를 깊이 이해해야만 (동물과의) 관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내놓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는데, 번역서로 700여 쪽 분량의 책에는 (이 땅에 살았거나 아직은 살고 있는)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은 자연 속 생명체들이 등장해 믿을 수 없이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 대상은 너무도 많다. 정치인, 정책 입안자, 기업가, 법률가, 교육자, 언론인, 정원사, 농부, 지금의 어른과 미래의 어른이 될 아이들, 그리고 자연 세계와 다시 연결되고 싶은 우리 모두가 읽는다면 세상은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돌이키지 못할 것만 같은 이 지점에서 다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고 싶다. 《야생의 존재》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역사적, 철학적, 과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며 현재의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통찰을 제공하는 빼어난 논픽션이다. 무엇보다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자들, 그리고 역사, 정치, 경제 등에 관한 책을 섭렵하며 다방면의 지식을 쌓는 ‘정보 탐구자’ 그룹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을 안겨줄 것이다.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워낙 방대해 파트별 요약문을 덧붙인다.)
[파트별 요약]
1-2부 | 잃어버린 야생의 세계
“동물은 우리의 마음, 삶, 땅, 문명에 깊숙이 뿌리내렸고 앞으로도 우리의 미래를 빚어갈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동물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우리를 보호해 주었다. 자연을 정화하고 꽃가루를 나르고 때로는 우리의 발이 되어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분변과 살, 가죽과 뼈, 그리고 새끼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동물은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다(정작 우리는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겠지만).” -18p
지에잔카. 저자가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준 폴란드 비아워비에자 야생 숲속의 작은 공간이다. 2차대전 이후 동물학자 시모나 코사크와 동물 사진작가 레흐 빌체크가 머물며 숲속 동물들과 믿을 수 없이 친밀한 관계를 쌓았던,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 우연히 그때의 사진 기록에 매료된 저자가 사람과 동물, 그 유대와 반목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지구에 살며 다양한 동물과 관계를 맺고 삶의 지혜를 얻어온 인류는, 심지어 그들을 먹고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았다. 그러다, 어디서부터 크게 어긋났을까. 제1부 〈야생의 존재〉는 선사시대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야성이 살아 숨 쉬던 시절과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불의 발견과 정착생활, 가축화, 계급 사회와 권력자의 등장, 결국 끝없는 전쟁과 정복의 시대로 나아가기까지 우리 문명사에서 동물은 내내 함께했다. 우리는 동물을 사랑하다 비참하게 내던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동물에 대한 깊은 유대감과 경외심, 그리고 두려움을 동시에 품었다. 제2부 〈오 주여〉에서는 과학이 종교를 뛰어넘지 못했던 시절에 그 두려움이 어떻게 표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종교와 신화, 중세문학과 초기 과학의 진귀한 기록들을 뒤적이며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악마화하고 야생(광야)을 저주의 땅으로 규정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에서 동물은 인간의 하위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철학자 데카르트조차 동물을 영혼 없는 존재로 보았다. 종의 기원을 밝힌 다윈의 시대에도 종교는 단단한 성역으로 존재했다.
3-4부 |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토끼에게 공을 던지고 물어오라고 시키지 마라. 동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능력만을 발달시킨다. 코끼리는 건기에는 어디에 물웅덩이가 생길지, 거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를 기억해야 한다. 코끼리는 기억력이 뛰어나다. 먹이를 저장하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회색잣까마귀는 솔방울 2만 개를 수백 군데에 나눠 숨기고 대부분 기억한다. 나는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198p
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우리가 그들을 궁금해하고, 혹은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그들을 실험실에 가둬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더 복잡해진다. 제3부 〈내면의 동물〉은 20세기 들어 동물의 내면을 들여보려 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초기에는 연구 대상에 대한 의인화를 금하며 잔인한 방식의 동물실험을 정당화하는 행동주의가 주류를 이루다가 스스로 야생의 일부가 되어 동물을 그들의 ‘움벨트(Umwelt)’ 속에서 이해해 보려 한 동물행동학자들이 나타났다. 저자는 지에잔카에 살았던 시모나와 레흐의 이야기를 비롯해 동물 연구의 새로운 문을 열었던 찰스 포스터, 콘라트 로렌츠,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 등이 연구 동물들과 엄청난 교감을 나누며 남긴 기록들에 매료된다. 이 이야기는 독자를 웃음 짓게 하고 때로 큰 정서적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반면에,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기준으로 동물의 지능과 학습력, 언어 능력 등을 밝혀보려 했던 멍청한 실험들은 연이어 실패로 돌아갔다. 제4부 〈누가 멍청한 동물인가〉는 애꿎은 동물들만 괴롭히다 끝난 실험들, 연구 현장에서 사람을 속인 영리한 동물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언어는 인간만의 것’이라고 말한 노엄 촘스키의 생각과 달리, 동물들은 각자의 움벨트 속에서 그들만의 언어를 구사하며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 예로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동물의 생태 이야기는 매우 신비롭고 천재적이어서 황홀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우리가 동물에게 인칭대명사를 부여하지 않고 물건처럼 함부로 칭하는 언어 습관에도 사람 외 동물을 경시하고 비천한 존재로 바라보는 잘못된 태도가 깔려있다고 지적한다.
5, 6, 8부 |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인간의 포식 본능은 몸 깊숙이 새겨져 있다. 익힌 고기를 주로 먹는 인간은 약 6미터의 긴 소장을 지녔지만, 섬유질이 풍부한 식물 위주로 먹는 유인원은 대장이 더 발달해 있다. 창에서 활로, 활에서 총으로 이어진 무기의 진화로 인간은 점점 더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 무기가 정교해질수록 사냥감과 직접 마주할 일은 줄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자연으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졌다. 이제 도살은 도축장에서, 조리는 부엌에서 이뤄지며, 식사는 쇼핑과 포장으로 대체된다. ‘잡는다’는 말은 점차 더 부드럽고 모호한 표현으로 바뀌어 갔다.” -354p
제5부 〈공유지의 비극〉은 19세기부터 본격화된 정복과 약탈의 문명사를 주로 서술한다. 공유지인 자연을 누가 먼저 더 많이 차지하는가 하는 경쟁이 이 땅의 지도를 바꾸고 수많은 생명과 서식지 파괴로 이어졌다. 19세기 박물학자들의 눈에 띈 동물은 살아남기 어려웠으며, 사람들은 비버 털로 만든 모자에 박제한 새의 머리까지 장식물로 얹고 다녔다. 무자비한 약탈과 산업화로 토양 황폐화가 심각해져 도시는 강이며 거리며 집앞까지 오물이 흘러넘치게 되었고, 그럼에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탐욕으로 우리는 합성 비료를 발명한다. 이것이 인구 대폭발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어 핵무기 탄생으로 사람과 동물의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브레이크를 잃어버렸다.
제6부와 제8부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야기, 동물 포식에 관한 것이다. 6부 〈죽인 자, 먹을지어다 1〉이 인간의 폭력성과 지배 욕망이 낳은 전통적인 사냥의 풍경을 그리며 오로지 ‘(문화적)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동물 살해의 실상을 다룬다면, 8부 〈죽인 자, 먹을지어다 2〉는 슈퍼마켓에서 단백질이 어느 때보다 싸진 이유, 그 가격표 뒤에 숨어있는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기업은 언제나 가난한 소비자를 핑계로 삼고, 정부와 정책 입안자들은 돈이 되지 않는 방식의 시장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는 동안 희생되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자연이며 우리의 삶터, 지구다.
7부 | 생물다양성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진 진짜 ‘생명’
“동물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실용적인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생태계란 실타래처럼 촘촘히 얽힌 하나의 세계다. 그 안의 무엇 하나를 건드리면 나머지 모두가 함께 흔들린다. 어떤 생명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사라진 뒤에야 알게 된다. ‘자연 자본’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먹을거리, 건강한 흙, 탄소를 저장하는 힘 같은, 자연에서 얻는 자원의 가치를 일컫는 용어다. 한때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지만 이제 이런 자연의 ‘서비스’를 ‘사라졌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으로 환산해 ‘잃게 될’ 가치로 계산하는 시대가 됐다.” -436p
6부와 8부 사이에 낀 제7부는 합법적 사냥은 자연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보전적 행위라며 동물 살해를 합리화하는 사람들, 혹은 곤충이 조금 줄어드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느냐며 웃어넘기는 사람들에게, 생태계가 유지되는 복잡한 원리와 그것을 잃었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알려준다. 〈문제는 환경이야, 바보야〉. 짐짓 심각하고 어려운 내용일 것 같지만 ‘생물다양성’이라는 밋밋한 이름 뒤에 가려진 진짜 생명 이야기가 펼쳐지며 흥미를 자아낸다.
낚시꾼들의 제거 대상이 된 왜가리, 조간대 작은 웅덩이의 핵심종 불가사리, 조난한 선원들을 먹여 살린 덕에 멸종해 버린 스텔러바다소, 다시마 섬의 해달과 성게의 관계 등…. 자연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 생태계의 다른 생물들은 안전할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 곰이나 늑대, 참매 같은 최상위 포식자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해로운 존재로 낙인찍히지만, 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중간 단계 포식자가 자연스럽게 억제되며 다양한 생물이 어울려 살아갈 환경이 조성된다. 저자는 우리와 동물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원리와 개별 생물들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가 일선 교육 현장에서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파트의 내용은 저자가 평소 강조하는 환경·생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9-10부 | 지구의 끊어진 녹색을 다시 잇는 일, 리와일딩
“일론 머스크는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행성이 먼지로 흩어진 뒤를 상정한, 최후의 대비책이다. 그는 2050년까지 100만 명을 그곳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 화성이 어떤 곳인지는 우리 모두 잘 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뛰어놀기엔 너무 멀고, 장난치기엔 너무 적막하다. 거기엔 새소리도, 수영할 바다도 없다. 숨 쉴 산소도, 살아있는 생명도 없다. 물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 결국 문제는 이것이다. 왜 이 행성은 고치지 못하는가? 수천억을 굴리는 헤지펀드가 왜 꽃피는 생울타리 하나 돌보지 못하는가?” -531p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제9부 〈돌이킬 수 없다는 분노〉로 연결된다. 야생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우리가 생태적 무지, 불편함, 무관심으로 방관하는 동안 이미 많은 생명이 멸종되었고, 지층 밑바닥까지 오염이 진행되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등장해 죽음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 와중에 돈을 쥔 자들은 우주도시 개척을 위한 플랜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쏟고 화성을 식민지로 개척하겠다는 꿈을 말한다. 왜, 이 행성은 지키지 못하고 화성인가. 환경불안을 넘어 분노에 찬 사람들은 보전을 위한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했다.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호주 등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간 리와일딩(rewildig, 재야생화) 운동이 그것이다.
옐로스톤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사업,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는 침입종 박멸에 국가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뉴질랜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저마다 각성한 자리에서 작게나마 변화를 시도하는 많은 시민이 있다. 스스로 가진 땅에서, 농장에서, 연못에서, 정원에서 소규모 재생농업이나 윤리적 축산, 생태적인 공간 조성에 매진하며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듯 지구에 녹색 이음선을 만드는 사람들. 급여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 야생동물 밀매나 고래 사냥을 감시하는 국제단체의 자원봉사자도 있고, 이유 없이 도시에서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남편 조너선과 소규모 자연보호구역을 조성해 생태계 복원에 힘을 보태며 글을 쓰고 교육하며 살아가는 저자도 그 한 명이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마치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이는 일본 킨츠기 공예처럼 보인다고 해서, 제10부의 제목을 〈금빛 이음선〉이라고 붙였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반가운 것 하나. 이 금빛 이음선에는 오랜 분단의 역설로 야생동물에게 평화의 땅이 된 한반도 DMZ도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