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 그게 누군데?”
지훈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아니, 어제까지 같이 앉아 있었잖아. 몸집 좋고 수학 잘하는 애.”
하지만 민수는 장난 같은 표정으로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우리 반에 그런 애 없는데? 너 꿈꿨냐?”
주위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지훈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분명히 있었다. 분명히…….
- p 17~18
“지훈아, 넌 왜 그렇게까지 준서를 붙잡으려는 거야? 솔직히 무섭지 않아?”
지훈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 하지만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그 아이가 사라지는 걸 보고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고도, 나마저 잊어버린다면, 그건 죽음보다 더 잔인한 거 같아. 이름이란 건, 그 사람의 무게잖아. 나는 그 무게를 놓치고 싶지 않아.”
- p 64~65
지훈은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마워,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줘서. 아무도 불러 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는데…… 이렇게 다시 들으니까,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믿어진다.”
나영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눈빛은 단단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나 역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거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 붙잡아 주자. 끝까지.”
- p 102
지훈은 흔들렸다. 중학교 시절의 기억,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던 날들이 떠올랐다.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고, 이름조차 남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학생증을 움켜쥐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 나는 스스로를 지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남을 거다. 그리고 사라진 이름들을 끝까지 불러 줄 거다.”
- p 119
“그렇다면 끝없이 고통을 견뎌야 한다. 기억은 상처를 남기고, 이름은 다시 조롱받을 것이다. 네가 선택해라. 편안한 망각이냐? 혹은 무거운 기억이냐?”
지훈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속삭였다.
“그래, 나는 고통도 기억하겠다. 상처도 내 일부니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 p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