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강박에 갇힌 우리 청소년들의 이야기
‘강박’을 키워드로 뭉친 네 작가의 테마 소설집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이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수많은 불안을 견디며 살아간다. 성적과 진로, 관계와 외모, SNS 속 이미지까지… 모든 것이 평가되고 낱낱이 비교되는 시대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강박에 조금씩 잠식된다. 책상 위 연필 정렬부터 반복되는 확인행동, 지워지지 않는 두려운 생각들까지. 강박은 이제 특정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청소년들이 겪는 일상의 그림자가 되었다.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의 신간 《미치거나 불안하거나》는 이러한 ‘강박’을 테마로 엮은 앤솔러지다. 아이들의 내밀한 마음을 문학으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청소년 소설이 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응답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시선
정명섭, 천지윤, 이현서, 최하나 네 명의 작가는 각자의 삶에서 체감한 불안과 결핍, 입시 압박,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꺼내어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옮겨 냈다. 책에는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마음의 회전문 속에서 헤매는 아이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명섭은 많은 사람들이 강박을 짊어지고 내려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출발해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그렇다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천지윤은 ‘사랑받고 싶어서 자신을 잃어버린 경험’을 고백하며,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다 강박에 빠지는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전한다. 이현서는 입시 시스템이 아이들을 ‘허수생’으로 만들고, 과도한 기대와 실패 공포가 자기 통제를 잃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자신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최하나는 결핍을 ‘물건으로 채우려 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어떻게 강박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네 개의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강박을 조명하지만, 색깔이 다른 네 개의 원고에 한결같이 흐르는 기조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든든한 지지 그리고 애정 어린 시선일 것이다.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
강박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상한 습관이 아니라, 오늘의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만들어낸 고통의 언어다. 작가들은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막막함은 당연한 일이고,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며 위로한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용기 내어 도움을 청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부하며 아이들을 응원한다.
문학은 때때로 가장 아픈 지점을 가장 먼저 비춘다. 이 책은 네 명의 아이들이 겪는 서로 다른 강박의 모습을 통해, 불안과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가 청소년에게 어떤 무게를 지워 왔는지를 담담하지만 깊게 드러낸다. 각기 다른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서로의 상처에 귀 기울이며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는 길로 나아간다. 강박을 겪는 아이들에게는 ‘재이’에게 내미는 믹스커피 한잔처럼 따뜻함을 선사하고, 그 곁을 지키는 어른들에게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작가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전하는 말을 끝으로 책 소개를 마친다.
“용기를 내.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야.”
작품별 줄거리
〈강박고등학교의 세 아이들〉
‘13’이라는 숫자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일상이 무너진 준호는 부모의 폭력적 갈등과 화재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숫자 13만 보아도 숨이 막히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전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조롱과 따돌림을 당했고, 결국 ‘강박고등학교’라는 이름의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정리 강박이 심한 한소미, SNS 이미지에 집착하는 셀럽 김유나를 만나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게 된다. 셋은 서로의 강박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비춰보며 조금씩 변화한다. 준호는 13을 피해 도망치던 습관을 멈추고, 스스로 다시 학교에 오며 첫 발을 내딛는다. 유나는 휴대폰 없이 하루를 보내며 자신이 꾸며낸 이미지가 아닌 ‘진짜 자신’과 대면한다. 소미는 엄마의 저장 강박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강박에서 벗어나는 일일 실천’을 공유하는 단톡방을 만들며, 혼자가 아니기에 버틸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한다. 결국 세 사람은 강박이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상처를 감추는 방어기제였음을 깨닫고, 서로의 존재를 통해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 간다.
〈눌러 주세요〉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솔은 하나뿐인 절친인 다미와도 멀어지는 느낌이다. 현실의 관계는 취약하고, 온라인의 반응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시험 기간만 되면 각종 인터넷 플랫폼을 시청하다가 ‘좋아요’와 ‘팔로우’를 눌러 대던 아솔은 ‘쏠!’이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방송을 시작한다. 아솔은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 수와 팔로워 수에 일희일비하며, 시청자의 관심을 구걸하기 위해 스스로를 학대해 가면서 팔로워 수를 채워 간다. 그러나 멀어진다고만 느꼈던 친구 다미가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누구한테나 사랑받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미의 말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본다. 결국 아솔은 기존의 방송 영상을 모두 삭제하고, 하늘과 구름을 찍은 동영상을 새로 올리며 ‘쏠!’이라는 닉네임을 자신의 이름인 ‘아솔’로 바꾼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회복해 가는 것이다. ‘좋아요’와 ‘팔로우’에 중독된 세대가 스스로를 되찾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성장담이다.
〈허수생의 나날〉
대입을 위해 학교를 자퇴한 고3 수험생 태오는 완벽한 공부 환경에 대한 집착과 성적 압박으로 괴로워한다. 자퇴만 하면 계획에 맞춰 착착 공부를 해 나갈 줄 알았던 태오는 ‘의자’가 불편하다는 핑계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 의자 높이, 책상 각도, 형광펜 정렬까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스트레스는 신체 통증으로 번진다. 병원은 “이상 없다”고 하지만, 태오는 이상 없다는 진단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 그러다 엉터리 도수치료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힘겹게 버텨오신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되어 더 이상 핑계를 대며 회피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불편하던 의자를 바꿔 달라고 요청을 하고, 껄끄럽던 친구들과의 문제를 자연스레 풀어 나가며 태오는 앞으로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오로지 ‘성적’과 ‘공부’만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허수생’이 스스로를 회복하는 내적 성장의 서사다.
〈쓰레기를 모으는 소녀〉
학교에서 사물함 가득 모아둔 쓰레기를 들킨 재이. 반 친구들은 ‘쓰레기녀’라고 재이를 조롱하고, 선생님은 재이가 모아둔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린다. 재이는 차마 그것이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임을 말하지 못한다. 집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엄마는 재이의 방을 뒤지고 쓰레기를 모아 놓은 재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재이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외딴섬처럼 겉돌 뿐이다. 쓰레기를 줍던 중 만난 아줌마만이 유일하게 재이에게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내미는 존재이다. 아줌마와 있을 때는 ‘괜찮다’는 위로를 얻는 기분이다. 아줌마는 잔소리를 하지도, 캐묻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재이를 보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쓰레기 아줌마와의 진정한 사귐을 통해 재이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해 나가게 된다. 엄마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학교에서도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작은 움직임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결핍과 상처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버티는 한 아이의 내면을 그리며, 사회가 ‘이해하지 못한 다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