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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의 미학사상

청소년들아, 옛 선비를 만나자


  • ISBN-13
    979-11-6314-436-6 (4481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도서출판 보리 / (주)도서출판 보리
  • 정가
    17,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11-17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최행귀 외
  • 번역
    -
  • 메인주제어
    철학: 미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미학 #문학론 #예술론 #글쓰기 #선비 #고전 #청소년 #철학: 미학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2 * 225 mm, 296 Page

책소개

 

󰠳 선비들 글에서 찾는 문학과 예술의 본질

 

우리 선비들에게 시와 글, 그림과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청소년들아, 옛 선비를 만나자》는 선비들이 남긴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을 엮어, ‘참된 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물음에 다가간다.

“시는 찬물이 솟는 샘”(김시습), “글을 짓는 데는 오직 진실해야 한다”(박지원), “마을의 나무꾼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의 노래가 사대부의 시보다 낫다”(김만중)와 같이, 시대를 넘어 울림을 주는 문장들이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수백 년 전 선비들이 전한 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새로운 것을 창작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창작물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어떤 것이 정말 아름다운지를 생각하게 한다.

 

󰠳 우리 문학사를 빛낸 선비 31인의 글을 한자리에 

 

우리말 노래 향가를 알린 최행귀, ‘동명왕편’을 남긴 이규보,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 설화 문학의 대가 유몽인, 시대를 앞선 사상가 박지원과 정약용, 다양한 예술을 꽃피운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사 천 년을 대표하는 선비 서른한 명의 글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이 쓴 글들 속에는 최치원, 설총 같은 신라시대 작가들부터, 이옥 같은 조선 후기 새로운 문체를 쓴 선비들도 두루 등장한다. 

선비들 글에는 시대를 넘어선 공통된 정신이 있다. 백성들 삶을 똑바로 보려 했고, 그 시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드러내어 세상을 바르게 하려 했다. 그들은 글에 진실을 담고자 했고, 백성의 삶이 녹아 있는 예술과 우리 말과 글로 쓴 문학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개성과 자존을 지키려 애썼다. 

우리 선비들의 글쓰기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 깊이 있는 작품들, 쉽게 읽는 고전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문학과 예술에 관해 깊은 내용을 담았지만, 결코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다. 35년 동안 국어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박종호 선생님은, 시나 재미있는 이야기, 편지와 책 소개글 같은 형식으로 쓰인 글들을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다듬었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보았던 《동국이상국집》, 《파한집》, 《매월당집》, 《어우야담》, 《연암집》 속 주요 글을 비롯해, ‘시 귀신을 몰아내는 글’(이규보), ‘역옹패설 머리말’(이제현), ‘나무꾼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의 말’(김만중), ‘도로 네 눈을 감아라’(박지원) 같은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다.

우리 문학의 흐름을 따라가며 시대마다 달랐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들을 살펴보고, 고전 속에 담긴 우리 미학의 깊이를 느껴 볼 수 있다.

목차

1부 시는 하늘에서 나오거늘

 

우리 시와 중국 시| 최행귀  14

마음의 샘에서 흐른다| 이인로  15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 임춘  18

문장 운율이 그리 중요한가| 임춘  19

동명왕의 노래를 기록하며| 이규보  20

아홉 가지 마땅하지 않은 문체| 이규보  23

새 뜻을 새 말에 담으니| 이규보  26

시인의 신령스러운 힘| 이규보  28

시 귀신을 몰아내는 글| 이규보  30

시의 뜻은 하늘에서 나오거늘| 이규보  36

시를 불사르고| 이규보  39

손득지에게 다시 보내노라| 이규보  40

두 마리 백로 그림을 노래하노라| 이규보  45

시험에 낙방한 그대에게| 이규보  47

시는 느낀 바를 나타내야 한다| 이규보  49

시인이 갖춰야 할 것| 최자  51

이지심의 시| 최자  55

지금 시를 배우는 사람들| 최자  57

시의 품격과 내용, 시어와 운율| 최자  59

시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최자  61

역옹패설 전편 머리말| 이제현  65 

역옹패설 후편 머리말| 이제현  67

시인들의 시는 다 다르다| 이제현  69

정지상의 시| 이제현  71

시의 표현 기법| 이제현  73

어려운 시 감상| 이제현  76

임춘과 최자의 시| 이제현  77

뜻을 말로 표현하면| 이제현  79

 

2부 무릇 글을 쓰려면

 

시는 기백을 앞세워야| 서거정  82

눈앞에 보듯이 묘사해야| 서거정  85

시를 알기는 어렵다| 서거정  87

작품은 우열이 있으니| 서거정  88

시의 기능| 서거정  89

이규보와 이색의 장편시| 서거정  91

문과 무의 관계| 서거정  92

문장은 여행과 현실에서 배워야| 서거정  94

책도 읽고 여행도 하기를| 서거정  96

어찌하여 문인들은 불우한가| 서거정  97

시는 찬물이 솟는 샘| 김시습  98

느낀 대로| 김시습  99

무릇 글을 쓰려면| 김시습  100

굴원의 노래| 김시습  102

우리나라의 문인들| 성현  104

우리나라의 화가들| 성현  107

우리나라의 음악가들| 성현  109

 

3부 나무꾼과 아낙네의 노래

 

시인은 가장 맑은 사람이다| 차천로  114

시는 영원히 성대한 일| 차천로  115

시는 사상과 감정의 표현| 유몽인  116

시는 무엇을 하는가?| 유몽인  117

시가 생활을 반영한다| 유몽인  118

김시습의 풍자시| 유몽인  120

어려운 것은 구상이다| 유몽인  122

그림과 문장이 같은 점| 유몽인  124

안견의 대나무 그림| 유몽인  126

문장에서 중요한 것| 이수광  128

그림의 신묘한 경지| 신흠  134

김생의 ‘관동도’에 쓴다| 신흠  135

백광훈의 시| 신흠  136

정철의 시| 신흠  137

고요히 지내는 것| 허균  138

시 두 편| 허균  139

나무꾼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의 말| 김만중  141

소설 쓰는 까닭| 김만중  142

송과 명, 당나라 시를 배우는 자세| 김창협  143

김만중의 문장| 김창흡  145

자연과 마음의 소통| 김창흡  146

산문이면서 시이고 시이면서 음악| 김창흡  147

시를 아는 데 따로 재주가 있다| 김창흡  148

문장 다듬기를 지나치게 하면| 김창흡  149

이해조의 문장| 김창흡  150

시의 병통에서 벗어난 최효건의 시| 김창흡  151

우리말로 쓴 노래와 소설| 김춘택  152

세상이 이로움과 욕망의 구렁에 빠져 있으니| 이익 156

 

4부 참다운 시는 자기 목소리를 낸다

 

모든 노래가 민요에서 나왔으니| 홍양호  160

문장은 호수와 같다| 홍양호  161

문장이란 글귀를 꾸미는 것이 아니니| 홍양호  162

옛날과 지금| 홍양호  163

시는 터져 나오는 소리| 홍양호  164

마음 그대로 우러나온 시| 홍대용  165

육조음에게 부치는 편지| 홍대용  168

손유의에게 부치는 편지| 홍대용  170

반정균에게 부치는 편지| 홍대용  171

글을 짓는 데는 오직 진실해야| 박지원  172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로 가서 찾아야| 박지원  175

시다운 생각이 담겨 있는 글| 박지원  179

이덕무의 시는 조선 노래다| 박지원  182

조그만 재주라도 모든 것을 잊고| 박지원  186

옛것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박지원  188

비속한 일상이 다 현실이라| 박지원  191

몇 백 번 싸워 승리한 글| 박지원  194

이름을 숨기지 말아야 하고| 박지원  198

도로 네 눈을 감아라| 박지원  200

그림을 모르는 자는 시를 모른다| 박지원  202

송강 정철의 무덤에서| 이덕무  204

이제현의 시| 이덕무  205

지기와 지음| 이덕무  206

이언진의 시| 이덕무  208

기준조의 시| 이덕무  210

뛰어난 묘사| 이덕무  211

박제가가 준 시| 이덕무  212

연암 박지원| 이덕무  214

참다운 시는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낸다| 박제가  216

 

5부 시대를 노래하라

모방한 것은 문장이 아니다| 남공철  220

문장에서 기와 수법| 남공철  221

고문은 모두 거짓이다| 남공철  223

거문고는 시와 가장 가깝다| 남공철  224

표현이 아름답고 이치가 명확한 글| 남공철  225

문장을 배우는 순서| 남공철  226

문체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정약용  227

무엇이 진정한 문장인가| 정약용  229

음악의 목적| 정약용  232

음악의 효과| 정약용  234

예술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약용  236

훌륭한 문장, 진정한 문장| 정약용  238

시는 뜻의 표현이다| 정약용  239

시를 쓰는 마음가짐| 정약용  240

글을 쓰려면| 정약용  242

호남의 인재 유윤오 군| 조수삼  244

내 젊은 날의 글쓰기 버릇| 조수삼  247

“나는 지금 사람이다”| 김려  249

이옥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김려  250

문장을 보는 것은 꽃을 보는 것과 같다| 김려  251

덕 있는 자는 문장도 아름답다| 홍석주  252

낡은 말과 새로운 말| 홍석주  254

시는 사람을 감동시켜야| 홍석주  257

문장의 오묘한 맛| 김정희  261

자기를 속이지 말라| 김정희  262

시대의 노래| 김정희  263

글과 감정| 이상적  267

시는 그림이고 그림은 시인데| 이상적  268

 

우리 고전 깊이 읽기

• 우리 겨레의 예술과 미학  272

• 선비들의 글쓰기 정신  275

• 오늘, 고전을 읽어야 하는 까닭  284

 

찾아보기  286

 

 

본문인용

시는 무엇인가. 

시는 찬물이 솟는 샘

돌에 부딪히면 흐느껴 울부짖고

못에 고이면 시끄럽지 않고 고요하더라.

보기엔 심상한 품격이나

묘한 이치는 말하기 어려워라.     – 98쪽 ‘시는 찬물이 솟는 샘’_ 김시습

 

또 명화로 알려진 옛 그림 한 폭이 있었는데 늙은 할아버지가 손주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는 장면이었다. 필치가 생동하여 살아 있는 듯하였다.

성종이 이 그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이 그림이 좋기는 하지만 무릇 사람들이 어린애를 밥 먹일 때는 자기 입도 저절로 벌어지는 법인데, 이 그림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격에 맞지 않는다.”

이래서 이 그림도 버려지고 말았다. 

대체 그림과 문장이 무엇이 다르랴. 조금이라도 진실에서 어긋나면 제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더라도 문장을 아는 사람은 취하지 않는다. 안목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안다.

– 124쪽, ‘그림과 문장이 같은 점’_ 유몽인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제 말을 버리고 남의 나라 말을 배우고 있는데 비록 그것이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앵무새가 사람을 흉내 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 마을의 나무꾼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들이 흥얼거려 서로 화답하는 소리가 비록 비속하다고 하나, 만일 참과 거짓을 따진다면 사대부들의 시부 따위와는 결코 같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141쪽, ‘나무꾼 아이와 물 긷는 아낙네의 말’_ 김만중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다. 누구는 제목을 놓고 붓을 잡은 다음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고전의 사연을 찾으며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화가를 불러서 초상을 그릴 적에 용모를 고치고 나서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구르지 않고 옷은 주름살이 잡히지 않아서 보통 때 모습과 달라지고 보니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도 진실한 모습을 그려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인들 또한 무엇이 다르랴?   –172쪽, ‘글을 짓는 데는 오직 진실해야’_ 박지원

 

남의 흉내를 내어 큰소리치지만

시 정신은 이미 죽어

냄새가 풍기는구나.

억지로 옛 시의 기상을 갖추고

무리하게 위신도 세워 보지만

가련하다 그것은 썩어 가는 물건

가장 신성하게 받들어야 할

시대의 노래는 되지 못하리.        – 265쪽, 시대의 노래, 김정희

 

서평

한류가 세계 속에서 주목받는 지금, 우리 예술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청소년들아, 옛 선비를 만나자》는 고려의 이규보부터 조선의 박지원, 정약용,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사를 빛낸 선비 서른한 명의 글을 모았다. 옛사람들이 남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오늘날 언어로 다시 들려준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35년 동안 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쳐 온 박종호 작가가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 다듬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다. 옛 선비들의 글을 통해 우리 겨레의 미의식과 철학을 살필 수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최행귀 외
최행귀, 이인로, 임춘, 이규보, 최자, 이제현, 서거정, 김시습, 성현, 차천로, 유몽인, 이수광, 신흠, 허균, 김만중, 김창협, 김창흡, 김춘택, 이익, 홍양호,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남공철, 정약용, 조수삼, 김려, 홍석주, 김정희, 이상적 | 글

최행귀는 나고 자란 연대는 알지 못한다. 고려 초 광종 때 사람으로 중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한림학사 내의승지 벼슬을 했다. 균여대사가 쓴 향가 ‘보현십원가’ 11수를 한문으로 옮기고 서문을 썼는데, ‘향찰’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이인로(1152~1220)는 고려 문벌 귀족 출신이지만 일찍 부모를 잃고, 승려가 그를 거두어 길렀다고 한다. 19세 때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자 몸을 피해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시와 문장에 뛰어나 이름을 떨쳤다. 막힘 없이 글을 잘 지어 뱃속에 원고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복고’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파한집》이 전한다.
임춘은 고려 의종 때 태어나서 30대 후반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가 출신으로 젊어서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무신의 난에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 남았다. 벼슬길에 오르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가전체소설 ‘국순전’, ‘공방전’을 썼다. 문집 《서하집》이 전한다.
이규보(1168~1241)는 호탕하고 생기 있는 시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문장가. 호는 백운거가.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시문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체험을 진솔하게 담은 시를 써 새로운 문학의 길을 열었다. 《동국이상국집》이 전한다.
최자(1188~1260)는 고려 무신정권 때 뛰어난 행정가. 이규보의 추천으로 최씨 정권에서 벼슬을 시작했고, 정권이 무너진 어지러운 시국에 수상을 지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이규보의 문학관을 잇고 문학 비평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보한집》이 전한다.
이제현(1287~1367)은 고려 후기 문인. 공민왕을 도와 개혁 정치를 추진하기도 했다. 삼십 년에 걸 쳐 다섯 차례나 중국에 다녀오면서 많은 시를 썼다. 백성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수집하여 ‘처용가’, ‘사리화’ 같은 작품을 남겼다. 《익재난고》와 《역옹패설》이 전한다.
서거정(1420~1488)은 조선 세종에서 성종 대까지 활동한 학자이자 벼슬아치.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 전통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쓴 《동국여지승람》, 우리 한문학의 독자성 을 내세우며 정수를 모은 《동문선》을 편찬했다. 《동인시화》, 《필원잡기》가 전한다.
김시습(1435~1493)은 다섯 살 때 세종에게 불려가 시를 쓸 정도로 총명했다. 세조가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의롭지 못한 세상에 절망하고 벼슬길에 나아가려는 뜻을 접었다. 평안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로 방방곡곡을 누비며 방랑하다 경주 금오산 기슭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소설 《금오신화》를 썼다. 《매월당집》이 전한다.
성현(1439~1504)은 조선 성종 때 학자이자 시인. 호는 용재. 당대 거문고 명수 이마지에게 배워서 음악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또한 그때까지의 음악을 집대성하고 구전 가요들을 모아 《악학궤범》을 펴냈으며, 민간에 전하는 옛이야기와 속담을 모아 《용재총화》를 냈다. 시와 글은 《허당백집》에 전한다.
차천로(1556~1615)는 서경덕의 제자였던 아버지 차식과 아우 차운로와 함께 ‘삼소’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외교 문서를 맡아 쓰는 제술관으로 활동했으며, 시가 뛰어나 중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글가사 ‘강촌별곡’을 썼으며 《오산집》이 전한다.
유몽인(1559~1623)은 선조와 광해군 때 두루 벼슬을 했으며, 명나라와 외교를 맡는 등 공이 컸다. 인조반정 때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광해군 복위 음모를 꾸민다는 모함을 받아 죽었다. 조선 중기 문장가 또는 외교가로 이름을 떨치고 글씨도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모두 뛰어났다. 야담을 모은 《어우야담》과 시문집 《어우집》이 전한다.
이수광(1563~1628)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으로 어지러웠던 사회 변동기에 새로운 사상의 방향을 탐색하고 개척하였다. 조선 사회가 전기에서 후기로 이동하는 가운데 실학파의 선구자 노릇을 한 사람이다. 백과사전이라 할 《지봉유설》을 편찬했고, 《지봉집》이 전한다.
신흠(1566~1628)은 선조 때 영의정까지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신립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장유, 이식, 이정귀와 함께 고문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문장이 뛰어나 외교 문서와 의례 작성에 참여했다. 한시를 많이 썼고 시조도 여러 편 남겼는데 농민들의 소박한 생활을 즐겨 노래했다.《상촌집》과 《야언》이 전한다.
허균(1569~1618)은 조선 중기 문신, 학자. 학식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으나, 이단을 좋아하여 도덕을 어지럽힌다는 비판도 함께 받았다. 학문이나 정치를 보는 관점에서 서자를 비롯한 하층민을 대변했다. 광해군 때 역적모의를 했다 하여 참형되었다. 한글 소설 《홍길동전》 을 썼고, 《국조시산》, 《성소부부고》가 전한다.
김만중(1637~1692)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대사헌과 대제학을 지냈다. 인현왕후의 일로 남해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김만중은 우리 글로 쓴 문학을 높이 평가했고, 한글로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다.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썼으며, 《서포만필》이 전한다.
김창협(1651~1708)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죽자 벼슬자리에서 물러났다. 왕의 명을 받아 송시열의 《주자대전차의》를 교정할 정도로 인정받는 학자였으며, 이이와 이황의 학문을 절충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시문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문집 《농암집》이 전한다.
김창흡(1653~1722)은 김창협의 아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겨 노래하고 시문을 평론하는 데 뛰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뒤 형 김창협과 같이 영평에 은거하였다. 《장자》와 《사기》를 좋아하고 한때 불경도 연구했지만, 성리학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영조가 왕위에 올라 벼슬을 주었지만 끝내 사양했다. 《삼연집》이 전한다.
김춘택(1670~1717)은 김만중의 종손으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노론의 중심 가문이라 언제나 정쟁의 한가운데 있었고 여러 차례 유배되었다. 시재가 뛰어나고 문장이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 문집 《북헌집》이 전한다.
이익(1681~1763)은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일생을 학자로 지냈다. 실학파의 대가로 정치, 경제, 역사, 철학, 문학, 언어, 풍속 들을 깊이 연구하고 천문, 지리, 생물학, 수학, 의학 같은 자연 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다.《성호사설》이 전한다.
홍양호(1724~1802)는 영조 때 학자이자 문신. 문장과 글씨 모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흥 부사 시절에 《북새풍토기》를 썼고, 《영조실록》과 《국조보감》 편찬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해동명장전》을 썼다. 《이계집》을 비롯 책을 많이 남겼다.
홍대용(1731~1783)은 북학파 실학자로 박지원과 친분이 깊었다. 우리 겨레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사회 계급과 신분 차별에 반대하고 교육의 기회는 균등해야 하며 재능과 학식에 따라 일자 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헌서》, 《의산문답》들이 전한다.
박지원(1737~1805)은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았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문학, 철학, 사회, 사상, 행정, 과학, 음악 따위에 두루 학식이 깊어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설 십여 편, 시 사십여 수, 여러 문학론과 사회개혁 사상, 편지글이 《열하일기》와 《연암집》에 담겨 있다.
이덕무(1741~1793)는 북학파의 한 사람으로 시문학에 이름이 높았다. 자는 무관, 호는 청장관, 형암, 영처. 박지원에게 배웠으며, 이서구, 유득공, 박제가와 함께 4가로 불린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서적을 정리하고 편찬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 《청장관전서》가 전한다.
박제가(1750~1805)는 북학파의 한 사람. 서자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시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다. 박지원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4가로 불린다. 정조에게 등용되어 규장각 검서관 일을 맡아보았다. 청나라에 다녀와서 쓴 《북학의》는 경세가로서 조선 의 부국강병을 주장하고 개혁 방안을 다룬 중요한 책이다.
남공철(1760~1840)은 정조, 순조 때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시를 잘 썼고, 학문 연구에 열중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고문의 법도를 준수하는 창작론을 표방했다. 《금릉집》, 《귀은당집》이 전한다.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의 학자. 유학 경전에 밝았고 시도 잘 썼으며, 과학 기술에도 뛰어나 수원성 설계를 맡았다. 신유박해 때부터 시작해 18년이나 귀양살이를 하며, 정치, 사회, 문학, 역사, 과학 따위 여러 방면에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여유당전서》가 전한다.
조수삼(1762~1849)은 중인 신분으로 여든세 살에야 과거에 합격했다. 여섯 차례나 중국을 여행하여 청나라의 명사들과 교유했고 중국에까지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젊어서는 삶의 진솔한 이야기나 자연을 소재로 시를 썼고, 나중에는 사회 현실을 묘사한 시를 많이 썼다. 저잣거리에서 보고 들은 사람들에 대해 쓴 연작시들이 《추재집》에 전한다.
김려(1766~1822)는 시인, 산문가이자 역사학자. 정치적으로 노론 시파 계열에 속하였으나 억압과 피해를 당한 사대부로 평생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였다. 정통 고문에서 벗어나 ‘패사소품체’로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는 작품을 썼다. 함경도 부령과 경상도 진해에서 십여 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담정유고》가 전한다.
홍석주(1774~184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여러 벼슬을 거쳐 좌의정까지 지냈다. 성리학 세계관을 지킨 정치관과 학문관을 유지했다. 시와 산문을 잘 지어 시대를 대표하는 고문가로 명성을 얻었다. 아우 홍길주, 홍현주가 모두 뛰어난 문인이다. 《학강산필》이 전한다.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문신. 호는 추사, 완당. 시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 예술가로 이름을 떨쳤다. 박제가의 제자로 북학파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며 고증학 가운데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다.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추사체’라는 글씨체를 완성했으며, 한문만이 아니라 우리 글로도 편지를 많이 남겼다. 《완당척독》, 《완당선생전집》이 전한다.
이상적(1804~1865)은 중인 신분이었으나 순조, 헌종의 관심을 받아 지중추부사와 온양 군수 같은 벼슬을 했다. 역관으로 열두 번이나 중국을 오가며 저명한 중국 문인들과 사귀었다. 신위, 김정희 들에게 배우고 영향을 받았으며 시를 비롯하여 서화와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다. 문집 《은송당집》이 전한다.
역주 : 박종호
고등학교에서 35년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다 스스로 물러났다. 머룻빛 눈동자가 빛나는 아이들과 지내며 오히려 더 많이 배웠고, 무엇이든 간절함이 덧쌓이면 길이 열린다고 믿게 되었다. 작은 배낭에 카메라를 하나 메고 바다 건너 낯선 곳에서 여행자로 살겠다며 여전히 벼르고 있다. 뜻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2007, 2009, 2015 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수필》,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고전》 등을 함께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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