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해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 / 김영수
이른 아침, 창으로 햇살이 비추고 베란다 너머로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은 알람 소리처럼 귓가를 간질인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거실에는 따뜻한 햇살이 구석구석 스며든다. 나는 매일 아침을 기분 좋게 맞이한다. 출근 준비를 끝내고 남은 20~30분 동안의 사색은 소소한 행복을 안겨다 주었다. 이런 여유로운 생활은 집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게 했다.
2017년 8월, 나는 지금 살고 있는 한 동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원룸 전세 계약이 매년 자동 갱신되던 터라 걱정 없이 지내고 있다가 갑자기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집 없는 설움을 절절히 느끼며 나도 집을 가져야겠다는 반발심에 충동적으로 집을 사버렸다. 도심에서 벗어난 아파트였지만, 첫 1년은 만족스러웠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은 자연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고, 5분 거리의 출퇴근길은 여유로움을 선사했다. 힘들지만 가끔 오르던 운수사길 등반은 건강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집에 대한 불만이 하나씩 쌓였다. 이 집이 낡아 재개발 되는 먼 미래의 그날까지 살겠다는 나의 단단한 의지는 조금씩 무너져 갔다. 귀를 간질이듯 나를 깨우던 새의 지저귐은 귀를 때리는 소음이 돼버렸다.
“감히 소중한 나의 잠을 깨우다니! 약육강식의 냉엄한 자연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저 새들은 포식자에 의해 곧 잡아먹히리라!”
증오심에 가까운 저주를 아침마다 퍼붓기 시작했다. 5분 거리의 출퇴근길은 약속도 하나 없이 일찍 집에 가기에만 급급한 외로운 존재가 된 듯 우울감을 안겨다 주었다.
이사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전에 살던 원룸보다 큰 집이어서 새집이 대궐처럼 커 보였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라는 동물은 욕심이 끝이 없나 보다. 집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거실은 혼자 지내기에 충분히 넓었지만 2인용 이상의 소파를 들여놓기에는 작았다. 물론 억지로 소파를 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마 나는 소파가 점령한 거실에서 또 다른 불만을 쌓았을 것이다.
현관 옆에 놓여 있는 2인용 원목 식탁은 전자레인지를 올려놓으니 반찬 몇 개만 내려놔도 더 놓을 곳이 없다. 진수성찬을 차린 것도 아닌데 몇 개 되지 않는 반찬으로 가득 차버린 비좁은 식탁이 돼 버린 것 같다.
그러던 중 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2019년 가을, 태풍이 찾아왔다. 궂은 날씨에도 모임을 다녀와 샤워하고 있는데, 베란다에서 ‘쾅쾅’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급히 나가보니 통창이 울부짖듯 흔들리고 있었다. 사나운 바람은 집 전체를 들어 올리는 듯했고, 유리는 북소리처럼 진동하며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걸쇠를 잠그고 창문 틈에 종이를 끼워 넣어도 소용없었다. 창을 때리는 바람은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내 몸을 흔들어댔다. 순간,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떨려 걸쇠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창문이 깨져, 이 작은 아파트 전체가 바람에 휩쓸려 통째로 잠겨 버릴 것만 같은 공포가 몰려왔다. 태풍에 무방비로 노출된 집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고,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나약한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제 정말 창문이 깨지면 끝이다.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날리고, 이 집은 태풍의 먹잇감이 되어버릴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다리는 떨려 제자리에 버티지 못했고, 결국 이불을 들고 작은 방으로 달려가 귀를 틀어막고 모든 소리를 차단한 채 잠 속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창문은 무사했다.
‘내가 너무 오버했나?’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태풍이 올 때마다 불안이 앞섰고, 나는 매번 작은 방으로 피신해 귀를 막았다. 그때 결심했다.
‘이럴 바에는 다른 집으로 이사하자.’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이사 욕망은 계속 커지고 있지만 미쳐버린 집값으로 매번 좌절한다. 젊은이는 떠나고 노인과 바다만 있다는 부산에서 집값이 더 오르진 않겠지만, 내가 목표하는 도심지 아파트의 집값이 떨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돈이 좀 부족하면 어떠한가! 잠시 은행에 집을 맡겨 놓고 나중에 찾으면 되지 뭐. 이왕 이사하기로 한 거 근사한 집으로 가자.’
이제 내 꿈의 집을 소개한다. 이사 걱정이 없는 비교적 신축 아파트면 좋겠다. 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춰진 도심 대단지 아파트면 금상첨화. 근처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산책할 수 있는 길이 잘 닦여 있으면 좋겠다. 집은 최소 30평 이상이어야겠다. 거대한 소파가 들어와도 넉넉한 거실 공간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그녀와 마주하며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 원목으로 만들어진 고급 식탁도 필수. 창문을 아주 좋은 걸로 맞춰서 태풍에도 끄떡없는 집으로 만들어야지. 킹사이즈 이상의 침대와 넓은 책상이 있으면 나의 생활은 더 여유롭고 풍요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이런 나의 욕망이 다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꿈은 꿀 수 있지 않은가. 내려가지 않는 집값과 감당할 수 없는 대출로 욕망의 일부는 사그라지고 일부 조정이야 필요하겠지만, 목표한 꿈의 집을 실현하기 위해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준비해야지. 이사 시기는 2027년으로 하자. 그때쯤이면 왠지 뭔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나는 무소유를 하고 싶지도 않고, 무주택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근사한 집을 가진 1주택자면 그걸로 만족이다. 그리고 그런 집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 6년을 기다렸는데 2년을 더 기다리지 못할까. 근사한 집에서의 충만한 삶을 기대하며 또 하루를 보낸다.
우리는 어디가 같고 어디쯤에서 다를까 / 정안나(시인)
침팬지, 개, 초파리, 수선화와
나는 얼마나 가까운지.
먹이 그릇을 밀고 당기는 침팬지
약간의 불안을 물고 뜯는 개
똑바로 앉으라며 팔짱 끼는 초파리
몸이 가진 목소리를 보고 듣는 수선화에서
나는
도착한다.
여기서 저기로 건너뛴다는 느낌도 없다.
인간 DNA중 95프로는 침팬지
개 75프로, 초파리 50프로, 수선화는 33프로 같다고 한다.
우리는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가 같고 어디쯤에서 다를까.
거기서 출발한다.
다음 목적지를 기대하는
수많은 날갯짓에서 앞으로 나가는 초파리
시를 향해 달려가던 수많은 날갯짓은
다양한 시선과 감정에 닿아
흐르는 대로 일주일 뒤에 자신을 써내는 놀라움이다.
흐름대로 쓰면 도착한다.
넉넉지 않는 시간을 이겨내며
원초적인 자신과 만났다.
시와 만났던 선생님들.
시 속에서 자신과 가까워졌기를 바라며.
그 속에서의 움직임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