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의 장처럼 숙성된 사색의 결정(結晶)들
박귀영 수필가는 상당히 합리적 판단력과 매사 진정성 있어 보인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의 진정성은 무엇보다 성격이 앞뒤 계산 없이 단순직선형이라는 데서 느껴진다. 그런데 작품을 읽어보면 단순직선적 성격 뒤에 은폐되어 있던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단순직설이 아니라 뭉근하게 상당한 시간을 두고 발효된 장맛 같은 느낌들이 그렇다.
정성을 들여 장을 담그고, 햇살과 바람과 오랜 시간의 하모니로 잘 발효된 장은 첫맛은 짜지만 뒷맛은 달큰한 감칠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장이 없다면 한국인의 음식은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특히 발효음식이 많은 한국인의 식단은 장독 속에서 나온 장류들이 맛과 영양을 좌우한다. 특히 잘 발효된 장일수록 요리에 풍성한 감칠맛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종가의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는 것도, 가장 정성 들여 배우는 것도 장이다. 고택의 오랫동안 묵힌 씨간장엔 결정이 생긴다. 흑갈색의 그 결정들은 햇빛을 받으면 흑갈색 보석처럼 반짝인다. 한국인의 영혼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장. 박귀영의 수필들을 읽으면, 잘 발효된 장의 감칠맛 같은 딱 그 맛이다.
― 김홍섭(소설가,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