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한가운데서 들려온 가느다란 울음소리.
누군가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사람들, 그 개를 붙잡아 준 여자,
상자를 들고 온 쌍둥이 형제, 차를 마시다가 우유를 조금 나눠 준 남자…….
그들은 조용히, 조심스럽게 한 생명을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고양이에게 앰버라는 이름이 생깁니다.
부정과 점층의 구조를 통해 드러내는 서사
랜달 드 세브는 ‘부정’과 ‘점층’을 통해 이야기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한 마리 아기 고양이 이야기가 아닙니다.”라는 문장이 반복될수록, 이야기의 초점은 점점 한 생명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동합니다. 작가는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묻습니다.
이 책의 서사는 굶주리고 두려움에 떨던 한 마리 고양이를 구한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 장면을 ‘고양이의 구조담’으로 직접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순간을 둘러싼 사람들의 멈춤과 시선, 움직임에 주목했지요. 누가 고양이를 구했는가보다, 어떻게 함께했는가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이것은 ~의 이야기가 아닙니다’라는 부정의 문장이 점층적으로 쌓이며 한 마리 아기 고양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귀 기울이고 움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각자의 작은 행동이 모여 하나의 생명을 품어 안는 과정, 그 다정한 연쇄가 바로 이 이야기의 본질입니다. 글 작가는 이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도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보라”고 조용히 말합니다.
서로를 향한 시선이 만드는 화면
카슨 엘리스는 포크 아트적 감수성과 서정적 절제미로 잘 알려진 그림책 작가입니다. 전작인 《홀라홀라 추추추》에서 보여 주었듯, ‘세상의 작고 조용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탁월합니다. 사건보다 분위기를, 인물보다 관계를, 목소리보다 숨결을 주로 그리는데, 그런 작가의 시선이 이번 작품 《이것은 한 마리 아기 고양이 이야기가 아닙니다》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이 책에서 카슨 엘리스는 특정 인물이 아닌 관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개와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고양이와 세상이 이어지는 시선의 흐름은 서로를 향한 연결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구출의 순간이나 감정의 폭발 같은 극적인 순간을 묘사하기보다는 서로에게 마음을 건네는 찰나를 포착했습니다. 담담한 색채와 부드럽고 둥근 양감 속에서 인물들의 관계는 천천히 자라나며 독자를 그 감정에 초대합니다.
공동체의 감응, 돌봄의 연대
즉, 이 책은 ‘구조된 고양이’의 이야기이자, ‘돌보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더 넓게는 공동체의 감응과 연대에 대한 헌사입니다. 글과 그림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 내는 이 작은 책 속에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혼자가 아닌 ‘우리’로 살아가는 법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