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의 관계는 모든 관계의 기초다. 기초가 틀어진 상태에서 쌓아 올린 관계는 틀어질 확률이 높고 비뚤어진 관계를 제대로 수정하는 데에는 상당한 힘이 든다. 긍정은 많은 사람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거나 자신 있는 사회생활을 위한 소양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이다. - 14쪽, 프롤로그
항암치료법 중에 면역항암제 투여법이 있다. 직접 암세포를 없애는 게 아니라 활성화시킨 면역세포가 암을 제거하는 방법인데, 앞으로 만나게 될 실패를 이런 방법으로 관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를 직접 다루는 게 아니라 나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서 실패를 감당할 힘을 키우는 방식으로의 관리. 잘 먹고, 잘 자고, 기분 좋은 장소와 사람 곁에 수시로 자신을 데려다놓으며 튼튼해진 나의 정신과 체력이 실패가 데리고 오는 패거리(좌절, 자책, 염세, 원망, 분노 따위)가 내 안에 비집고 앉을 틈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 56~58쪽 ‘면역_가장 가까운 힘’
‘수고했다’라는 말에는 결과만을 알아주는 세상에서 드물게 노력의 여정을 알아주는 마음이 있다. 애쓴 시간을 인정하는 존중과 존경이 담긴다. 나의 존재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고 알아봐주는 데 대한 고마움과 한 인간의 몫을 했다는 뿌듯함도 든다. - 70쪽 ‘수고_잘 익은 말 한마디’
남을 돕는 건 나를 좋아하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르고 부작용 없는 방법이었다. 나를 사랑하고 싶다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행동을 하고, 나를 믿고 싶다면 스스로 존경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 - 74쪽 ‘도움_나를 사랑하고 싶다면’
자기 효능감은 단지 ‘나는 잘할 수 있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시도와 실패를 통해 조금씩 쌓아온 경험의 총합이다. 자기 수용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라면 자기 효능감은 그 ‘있는 나’가 삶 속에서 작게나마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작은 성공 하나, 무사히 끝낸 하루가 나를 믿을 근거가 돼준다. 내가 나에게 기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82쪽 ‘나를 이루는 세개의 축’
자기 존중감은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무엇을 성취했느냐보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잘 해냈다고 여기는 순간보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순간에 우리는 나를 더 신뢰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보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 83쪽 ‘나를 이루는 세개의 축’
여유를 가지라는 말은 느긋하게 인생을 누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여유가 사라지면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난폭해지고 결국 상처를 남기게 될 테니 미리 제 마음을 살피라는 말이었다. 이 뜻을 알았다고 항상 그에 맞게 지내진 못했지만 적어도 마음이 빡빡해지면 어떤 종류의 여유든 가지려 노력했다. ‘가졌다’가 아니라 ‘노력했다’에 방점을 찍으면서. - 90쪽 ‘여유_쫓기면 뭅니다’
좌절에 대한 내 마음이 그랬다. 나는 깨지고, 찢어지고, 부서지는 일 다음에 덧붙이고, 잇고, 고쳐가며 달라지는 나를 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싫으면서도 좋았던 것 같다. - 94쪽 ‘성장_싫지만 좋다’
종일 시달린 일에 쏟아부은 나의 인생이 하수구로 버려지는 먹다 남은 라면 국물처럼 느껴져 난데없이 들이닥친 허무함으로 영혼이 이탈되는 기분이 든다면 청소를 하는 게 좋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은 단순해지고 마음은 안정된다. 너무 단순 명료해서 ‘거짓말.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이다. 오랜만에 꽤나 요란하게 움직인 날엔 몸에 붙인 파스 개수 이상의 보람으로 잠자리에 누워서도 펄떡이는 활력을 느끼곤 했다. “오늘도 참 잘 살았다”라는 말을 잠꼬대처럼 종알거리다 스륵 잠들 수 있었다. - 108쪽 ‘노동_움직일수록 이너피스’
우리는 때때로 힘겨운 국면에 빠지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잃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힘이다. 긍정심리학에서는 이를 ‘회복탄력성’이라 부른다. 무너진 자리에서 자신의 형태를 조금씩 되찾아가는 일, 망가진 자리를 기워가며 다시 살아내는 일이다. - 132쪽 ‘다시 일어나는 법에 관하여’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 입은 자리를 끌어안고, 그것마저도 나의 일부로 삼는다. 그 과정에는 반드시 ‘자기 돌봄’이 함께해야 한다. 자신을 다독이는 말 한마디나 청소를 하고, 식사를 챙기고, 창문을 여는 단순한 움직임들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삶은 여전히 엉망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나를 보살필 수 있다는 감각은 희미한 빛처럼 퍼진다. 자기를 돌본다는 것은 단단한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며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나가는 방법이다. - 132쪽 ‘다시 일어나는 법에 관하여’
‘이 괴로움도 결국 변하고 말 거야.’ 거대한 감정에 압도당하고 있다 해도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에 미세한 틈새가 생겼다. 그 틈새는 나조차도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좁은 데다 틈새가 벌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라 금세 괴로움이 뒤덮어버리기도 했지만 간혹 나의 마음을 일순간 전환시키기도 했다. 가위에 눌렸을 때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움찔하는 것만으로도 ‘탁’ 깨어나듯이. 고요하면서도 세차고 확실하게. - 156쪽 ‘틈새_사그라드는 괴로움’
희망은 단순히 낙관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아니다. 절망에 압도당한 순간조차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작고 미세한 선택을 반복하는 힘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고, 방에서 나와 햇빛을 받는 순간, 우리는 이미 희망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셈이다. - 182쪽 ‘나로부터 걸어가는 삶’
주관적 안녕감은 나를 괴롭히는 세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지를 결정하는 내면의 평온이다.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그 조건에 반응하는 식으로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감정적 자율성이다. 중요한 건 ‘지금’ 괜찮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나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아닌 지금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전한가에 대한 명확한 느낌이다. - 182~183쪽 ‘나로부터 걸어가는 삶’
‘우울이 지나가도 반찬은 남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훌륭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울적한 사람은 죽지 않고 메추리알장조림을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 부대끼는 마음이 기어코 몸을 움직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뭐라도 하면 적어도 그만큼은 달라질 거라는 확신이었다. - 264쪽 ‘결실_전부 나쁘지만은 않다’
자기 성찰은 나의 불완전함을 고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함께 걸어가는 훈련이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내 안의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 그 자세가 나를 성장하게 한다. 불편한 감정을 낱낱이 파헤치기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나의 언어를 찾는 일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 274쪽 ‘다시 삶을 구성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