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계명이 문득 도착했다. 먼 길 돌아돌아 닿은 어떤 생명의 증서를 받아들었다. 그 통증과 전율. 모든 허위를 넘어선 어휘는 이런 것이었던가. 환생적 언어들이 하나같이 그저 투명하고 가볍다. 그런데 아득하고 깊다. 새 울음 앞에 엎드린 시인의 받아쓰기는 그저 소박하고 성실하다. 저 애틋함 또한 얼마나 치열한 것일까. 새 울음은 우주의 허를 가로지르는 화살을 닮았다. 날아오르는 뿌리들, 무의식과 신화를 가득 품은 대칭성의 말씀들, 가난과 성선설, 김종삼. 전생과 후생을 잇는 눈물에 비치는 저 미지未知. 모든 아름다움은 비틀린 문명을 꿰뚫는 힘이었구나. 깨달음도 이런 비움, 이런 투쟁이리라. 생명이라는 저 뫼비우스 띠를 따라 리얼리스트와 옵티미스트, 아나키스트들이 돌아오고 있으니. 이 시집은 이슬 안에 우주가 있다는 무한을 증명한다. 그 무심을 따라가는 내내 울컥울컥 가슴에 치받는 신탁들. 우리 안에 살아있는 비상하는 깃털, 그 투명한 기호들. 오래오래 우리 이름을 부르고 있었구나. 아, 애틋한 아키비스트들이여. _김수우(시인)
시인의 언어는 천상의 낭만과 지상의 현실이 충돌하는 슬픈 열망의 영토다. 하늘을 나는 새의 궤적이 비상의 열망에 대한 기록이라면, 그 기록은 하늘로의 비상을 추동하는 지상의 슬픔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의 새는 하늘을 비상할수록 지상으로 추락한다. 숭고한 정신이 하늘을 향해 비상할지라도 그의 정신은 또렷이 지상의 현실을 응시하는 것이다. 입멸의 경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중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자신의 해탈을 포기한 보디사트바의 형상이야말로 추락하는 비상, 혹은 비상하는 추락이 아닌가. (⋯) 시인은 “꽃”이 “벼랑에 매달려 피”듯, “새는 벼랑에서/ 한 걸음,/ 더 간 곳에 있다”(「자리」)라고 말한다. “한 걸음,/ 더 간 곳”이 새와 시인의 자리다. 새가 그러하듯, 김종삼이 그러했듯, 시인 또한 그 자리를 보듬고 있다.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날개를 펼친다. _박대현(문학평론가) 해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