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세워 놓은 내 지팡이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친구들의 장난에 부러지고 싸움판에 흉기가 되어 부러지기도 했다. 미끄러운 눈길과 질척거리는 빗길에 함께 넘어지기도 하며 온갖 수난으로 내 삶을 잘 지탱해 준 지팡이는 이제 나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장애를 비관하며 주저앉아 울지 않았고, 편견의 눈동자가 벌처럼 쏘는 세상 속에서 더디고 힘들지만 쉬지 않고 걸었다. 외롭고 고독하고 또한 고통과 아픔과 시련의 길이었지만, 슬기롭게 헤쳐 왔다고 생각하는 나는 지금 행복하다.
비록 내 등에 한 번 업어 키우지는 못했지만, 내 젖을 먹고 자란 두 딸은 장애인인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절룩거리는 모습이 보기 싫어 상가 유리창조차 쳐다보지 않던 내가 당당하게 나를 거울에 비춰보기도 한다. 내 존재의 가치가 가장 빛나는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며, 나는 이제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지탱해 준 지팡이처럼,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또 한집안의 며느리로서 내 가족의 지팡이가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질박하게 살아온 두 여인인 등 굽은 시어머니와 절룩거리는 며느리가 공연장을 빠져나온다.
“덕분에 구경 잘 혔다.”
빼놓지 않는 어머님의 인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두 개의 지팡이가 정답다.
-〈두 개의 지팡이〉 중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모유 수유를 하면 유방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헛말인가. 두 딸 모두 모유를 먹였기에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걸까. 뜻밖의 발병에 어안이 벙벙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던가. 생각해 보면 나는 스트레스를 그리 받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웬만한 일은 툴툴 털어버리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소모적인 논쟁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늘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매사에 적극적이라 내 소식에 주위 사람이 더 놀랐다.
흔히 먹고살 만하면 병에 든다고 한다. 그만큼 살기에 바빠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증거일 테다. 나 또한 그런가. 돌아보니 참 열심히 살았다. 장애와 맞서고 나 자신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나와의 싸움을 끝없이 했다. 기우뚱 걷는 내 모습에 좌절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고,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느라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도 없다. 그 덕분에 생활이 조금씩 나아져 그토록 열망하던 공부의 꿈을 이루고, 생각지도 않던 문학인이 되기도 했다. 두 딸도 때맞춰 제 짝을 찾아 떠났으니, 인생의 숙제를 다 마친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대로 별일 없이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고난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몸의 경고〉 중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은 공부하다 말고 “나는 대학교에 가면 꼭 장학금을 받을 거야”라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옆에 있던 제 언니가 “야! 네가 장학금 타면 세상에 장학금 못 받을 사람 하나도 없겠다.”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야 꼭 받을 거야”라며 더욱 입을 앙다물었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도 고개만 살랑살랑 가로저었다. 나중에야 아이는 엄마에게 전동휠체어를 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기가 대학교에 갈 즈음엔 엄마의 나이가 많아 다리에 힘이 더 빠져 못 걸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동휠체어를 사주기 위해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작 열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저 기특하고 대견하기만 했다. 엄마의 장애를 부끄러워할 수도 있으련만, 친구에게 당당하게 소개하고, 제 생일에는 오히려 엄마 아빠에게 고맙다며 선물을 사 오기도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이거 네가 넣어 둔 거지?” 하며 초록 봉투를 내밀었다. 아이가 피식 웃는다. 바삐, 또 열심히 살아도 형편은 늘 소금쟁이처럼 그 자리를 맴돌아 제대로 해 준 것도 없건만, 이처럼 엄마를 먼저 챙기고 이해하는 딸 덕분에 또 감동받는다. 그렇지만 이 돈은 쉽게 쓰지 못할 것 같다. 초록 봉투에 담긴 딸의 마음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그 자리에 다시 넣어 두기로 한다.
-〈초록 봉투의 비밀〉 중에서
아버지, 사실 언니의 결혼식 날, 저는 참 많이 서러웠고, 아버지를 무척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직장생활을 하던 저는 언니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고 옷까지 한 벌 사 입고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미애 니는 집에 있거라.” 하시곤 동생 진우만 데리고 갔었어요. 그럴 거면 제게 언니의 결혼 소식은 왜 알렸을까요. 총명한 아들은 항상 아버지의 자랑이고, 장애가 있는 딸은 부끄러운 존재인가? 버림받은 기분에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종일 울었습니다. 절룩거리며 힘들여 번 돈을 다달이 집에 보내주면서도 받는 대접이 이것밖에 안 되나 생각하니 억울했습니다. 언니가 직장 친구들을 데리고 왔을 때도 유독 저만 옆집에서 자야 했던 일이며, 때때로 저를 숨기려고 했던 지난날의 기억까지 떠올랐습니다. 집에서 당당하지 못하니 스스로 자꾸 웅크리게 되고, 낯선 곳에 가면 눈치부터 살피게 되었지요. 그냥 집을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럴 용기마저 없어 울기만 하다가 부모님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얼른 눈물을 훔쳤지요.
아버지에 대한 제 마음이 활짝 열리지 못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겁니다. 동생들의 말을 들으며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처음 취직했을 때였습니다. 언제 집에 갈 거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당일 아침, 생각지도 않게 아버지가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난생처음 집을 떠난 제가 혹여 길이라도 잃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겠지요. 그날 아버지는 버스 정류장 가는 길이며, 어떤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종일 공장에서 일하는 딸이 언제 수박을 먹어보겠나 싶어 무겁게 들고 온 수박을 동료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으면서도 그 달콤한 맛이 당신의 사랑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중풍으로 수족이 성치 않으신데 어른 머리통보다 더 큰 수박을 들고 자갈밭 길을 20분이나 걸어와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정류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뒤뚱거리며 걸어왔을 아버지가 아닌지요. 그런데도 저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그 기억만으로 아버지의 사랑은 늘 수박껍질처럼 푸르딩딩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속에 농익은 붉은 참사랑은 미처 보지 못했지요.
그것이 저의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는 지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 또한 말할 수 없는 고뇌가 크셨겠지요. 이제야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오월의 숲은 다시 저처럼 우거지고, 오월로 떠난 아버지는 가을의 쓸쓸함과 겨울의 황량함이 싫어 푸르른 계절에 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 선 감나무잎이 떨어지는 것을 유독 싫어했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 초록의 비단이불 포근히 내리덮고 편히 쉬십시오. 더는 당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오월로 가신 아버지께〉 중에서
어쩌면 그것은 사시사철 길에서 장사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추운 겨울엔 매서운 바람과 싸우고 뜨거운 여름엔 이글거리는 태양과 맞서기도 하며 갑작스레 내리는 눈비는 또 몇 번이나 맞았을까.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이 상대의 어려움을 살피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지니게 한 것 아닐까.
은혜란 베푼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받은 사람은 가슴에 오래 간직하는 법이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노숙자 시절 국수를 먹고 도망치는 자신에게 “뛰지 마. 넘어지면 다쳐”라고 말한 어느 국숫집 할머니에게 감동하여 몇 년 뒤 큰 사업가가 되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는 사연이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이렇듯 세상엔 아직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선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 팍팍하지 않음을 다시 보여주는 것 같다. 복잡하고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의 삶이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의 손길은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곳곳에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와 같은 분이 많이 살고 있으리라.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 아닐까 싶다.
-〈야쿠르트 아주머니〉 중에서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참 많은 활동과 봉사도 했다. 극한 상황에서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이루어 낸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내 삶은 늘 도전과 극복의 반복이 아니었던가. 그 덕분에 꿈만 꾸던 나의 가방도 드디어 학문의 꿈을 채우게 되었다.
비단 나뿐이겠는가. 방송대는 대부분 늦깎이 학생이 일생의 꿈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오늘의 결과를 이루어 낸 학우들이 자랑스럽다는 총장님의 축사가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교수님도 매년 늦깎이 학생들을 졸업시키며,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실까.
졸업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야! 졸업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친다. 학사모가 높이 날아오른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졸업〉 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잠시 생각에 잠기던 아주머니가 구두를 다시 꺼내 보라고 한다. 그처럼 닳은 것은 손대기가 어려워 꺼렸는데 딸이 기특해 고쳐주지 않을 수 없겠단다. 갈래갈래 떨어진 바닥에 접착제를 발라, 한 겹 한 겹 잇대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자못 진지하다. 그러고 보니 접착제가 덕지덕지 묻은 여인의 손이 거북등처럼 거칠고 딱딱해 보인다.
딸의 낡은 구두에서 자신의 고단했던 삶이 반추되었을까. 당신 삶의 내력을 누에고치처럼 풀어놓는다.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구두 수선공이었던 남편이 간경화로 세상을 뜬 뒤부터라고 한다. 오랜 투병 생활로 빚만 남기고 간 남편을 원망하거나 슬퍼할 사이도 없이 일을 시작했지만, 두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일이 너무 막막해 한강 다리 난간에 서서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기도 했단다.
남의 해진 신발은 무수히 고쳐주었지만, 정작 당신의 가슴에 난 상처는 단 한 바늘도 꿰매지 못했으리라. 한 평 남짓한 공간을 당신만의 우주로 삼고 지냈을 아주머니의 그 지난한 삶이 슬며시 연민의 정으로 다가온다. 그냥 버려도 아깝지 않을 구두가 여인의 여문 손끝에서 새 모습이 되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한껏 멋까지 부리고 있다.
-〈구두를 고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