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는 만물과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일과의 관계 맺음으로 세상과 우주가 만들어진다. 관계 맺음이란 연결 고리로 이어지는 또 다른 매듭이다. 살아가면서 사람과 일에 매듭을 풀고 묶는 것은 수없이 겪게 되는 일이다. 매듭은 자신이 낀 안경 너머로 본 세상의 이치를 판단하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부질없는 가치로 매듭을 잘못 묶거나 풀 때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경우도 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매듭은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매듭」에서
바람은 머무르지 않고 끝없이 이동하며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는 사람들의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사유의 깊이를 만드는 힘이 된다.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한다. 인생은 제주의 거친 맞바람을 마주하고 걸어가는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은 혹독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삶은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서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지혜를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감내하기 힘든 바람을 이겨낼 때마다 조금씩 너른 품을 지니게 된다.
-「바람의 섬」에서
반닫이는 속정을 내색하지 않는 제주 여인의 은근한 마음이 배어 있는 듯하다. 험난한 세상사로 표출되는 형형색색의 감정을 마음속 깊이 삭이는 여인네의 모습이 보인다. 반닫이에는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와 나의 한숨과 눈물과 기쁨이 둔중하게 스며있다. 반닫이의 무게보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침묵은 남은 생을 잘 살아내기 위한 결연한 의지이다.
-「반닫이와의 인연」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옛 물건들도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현재는 과거의 영속된 시간에서 영글어 간다. 미래는 현재의 시간이 축적된 산물이다. 지켜야 하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본연의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잊히고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들을 찾아내고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귀한 것일수록 쉬이 보이지 않는다. 물건마다 지닌 고유한 천성과 품은 향기가 다르다. 옛것을 바로 알고 그 숨겨진 숨결에 스미고 싶다.
-「갓을 품다」
낙엽에서 인생을 배운다. 낙엽은 나무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잎자루나 잎몸의 기부에 이층離層이라는 특수한 세포층이 형성되면서 떨어지는 잎이다. 저 스스로는 나무에서 떨어지지만 새순을 움트기 위해 묵직한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낙엽을 보면 자신을 희생하여 나무를 이롭게 하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낙엽은 나무 몸통의 중심부인 심재心材를 튼튼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단풍의 절정을 온몸으로 내뿜다 떨어지는 잎이다. 나무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작용이다. 낙엽을 보며 생명의 탄생과 소멸의 순환을 느낀다.
-「이층離層」에서
사람은 감성이 있어서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감성은 선한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마력이 있다. 자연 안에 있을 때 감성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사람이 자연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아무리 진한 꽃향기도 천 리까지 퍼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 리까지 퍼진다. 인품의 향기는 오래 가슴 속에 남아 선한 영향력을 베푼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와 관용의 자세로 노력하면 서로에게 그 향기는 오랫동안 스며있게 될 터이다.
사람과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 관계는 상대적이다. 자연은 사람에게, 사람은 자연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면 좋겠다. 어느 한쪽에서만 베푸는 것이 아니고 서로 도움이 되는 선물이면 좋을 듯싶다. 오래도록 서로 어깨를 내밀며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을 그려 본다. 내일도 태양이 떠오르면 자연의 소리와 내 안의 소리를 들으러 소나무숲을 찾으리라.
-「공짜 선물」에서
고목은 생명의 순환 작용을 알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를, 겨울은 봄을 잉태하기 위한 숭고한 침묵의 시간임을 말해준다. 무엇이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목을 응시하며 마주하니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어둠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오듯이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 열리고 행복한 날들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나목裸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