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동안만 살아 있는 영혼이 있다.
그것이 시의 방식이자, 사랑의 방식이다.”
K-포엣 시리즈 46권, 조시현 시집 『시뮬레이션 제 4139회차』
2018년 실천문학 신인상(소설)과 2019년 현대시 신인상(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시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시뮬레이션 제 4139회차』가 K-포엣 46번째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조시현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 질문을 미래의 시간대로 확장한다.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박물관이 되어버린 이후, 조시현의 시는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읽히기 위한 언어들’을 꿈꾼다.
『시뮬레이션 제 4139회차』의 세계에서 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독자의 읽기에 의해 깨어나는 인공영혼이다. “읽는 동안만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 스스로의 운명을 독자에게 맡긴다.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영혼들은 모두 ‘말을 남기려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반복과 변형, 오류와 불화를 통해 문학의 새로운 생태를 구축한다.
등 뒤에서 우주는 규칙과 질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태어나고 태어나는 일이 소리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그것도 이내 규칙의 일부가 되었다.
― 「우주조립키트」 중에서
기계와 인간, 생성과 소멸, 부화와 불화의 경계에서 조시현의 시는 끝내 언어의 가능성을 믿는다. 여성-로봇과 여성-유령으로 표상되는 존재들은 부여된 질서를 따르면서도 끊임없이 어긋나고, 그 어긋남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