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제국의 기초는 언제나 두 개의 기둥 위에 세워져 있었다. 하나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다른 하나는 세계인의 손에 쥐어진 갤럭시 스마트폰이었다. 이 두 축이 동시에 돌아갈 때 삼성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제국이다. 반도체는 막대한 수익과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보장했고, 스마트폰은 브랜드 파워와 소비자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러나 제국의 두 기둥은 시간이 흐르며 균열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외부 경쟁자의 압박과 내부의 구조적 피로가 겹쳐 만들어낸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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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징 전쟁은 단순히 기술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맹의 싸움이었다. 삼성은 일본 생태계와 손을 잡는 동시에 미국 기업들과도 협력해야 했다. 엔비디아, AMD, 인텔 같은 팹리스는 자신들의 칩이 삼성의 라인에서 안정적으로 묶이기를 원했고, 미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려 했다. 삼성은 보조금을 받아 미국 테일러에 파운드리와 함께 패키징 라인을 구축하며 TSMC와 정면 승부를 준비했다. 테슬라 계약이 보여주었듯, 고객은 단순히 칩 하나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패키징까지 포함된 풀세트를 원했고, 그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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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제국 서사에서 패키징 전쟁은 그래서 운명적이었다. 과거 일본의 규제가 드러낸 상처 위에서, 삼성은 일본의 심장부를 연구 거점으로 삼았다. 적진에 세운 성채에서 시작된 반격은 이제 패키징이라는 마지막 전장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왕좌를 향한 싸움은 더 이상 공정 수치가 아니라, 칩을 얼마나 완벽하게 묶어내는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 전장에서 삼성은 패자의 언어가 아니라, 다시 승자의 언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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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강점은 여전히 규모였다. 평택과 화성에 이어 미국 테일러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춘 기업은 삼성뿐이었다. HBM4 수요가 폭발하는 순간,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맞출 수 있는 기업은 결국 삼성이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여전히 희망을 걸었다. 하이닉스가 기술에서 앞서간다면, 삼성은 물량과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HBM3 세대에서 하이닉스가 거둔 승리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였다. 고객 중심의 민첩한 전략,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담함, 그리고 AI 붐을 읽어낸 선견지명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삼성은 이 교훈을 받아들여야 했다. 초격차는 기술의 우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고객과의 신뢰, 속도, 과감한 결단이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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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이 기술을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미래를 여는 철학으로 포장했다. 초연결 사회에서 보안은 생존의 문제이고, 지연 없는 연결은 새로운 표준이었다. 서버 기반 AI가 개인정보 유출과 속도 지연이라는 구조적 약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갤럭시24의 온디바이스 AI는 시대가 요구하는 해답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기대만큼 폭발적이지 않았다. 갤럭시24가 만들어낸 반등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은 제한적이었다. 리뷰어들은 갤럭시 24의 기능을 호평하면서도, 여전히 아이폰이 문화적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술적 혁신은 주목받았으나, 젊은 세대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투영할 아이콘으로 갤럭시를 선택하기에는 부족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속에서 아이폰의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상징성은 여전히 강고했다. 갤럭 시24의 AI 기능이 놀랍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지만, 그것이 곧 ‘갤럭시를 사야 한다’는 명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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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메시지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과거의 삼성 철학과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건희의 시대는 품질 혁신과 신경영의 시대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선언은 조직 내부를 흔들고, 시스템을 바꾸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호였다. 그러나 이재용의 초격차·초연결은 조직 혁신의 언어가 아니라, 글로벌 생태계와 기술 철학을 아우르는 선언이었다. 내부의 변화를 넘어 외부의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야망이었다.
물론 비판도 존재한다. 초격차라는 말은 기술적 과시로 들릴 수 있고, 초연결은 개인정보 침해와 통제 사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신뢰라는 단어로 감싸안았다. 보안 없는 연결은 불안이지만, 녹스 같은 보안 체계로 보호되는 연결은 신뢰로 전환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초연결의 시대를 위협으로 보지 않고 기회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삼성의 새로운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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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내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기술의 차별화’가 아니라 ‘경험의 차별화’였다. 소비자가 스펙 표를 읽는 시간보다 일상 속에서 갤럭시만의 경험을 체감하는 순간이 브랜드를 차별화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삼성은 기능 하나를 개발할 때도 “이것이 사용자에게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줄 것인가?”를 질문했다. 폴더블의 접는 동작, S펜의 필기감, 온디바이스 AI의 즉각적 반응, 카메라의 감각적 결과물. 이 모두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의 언어로 차별화를 구현한 사례였다.
갤럭시만의 차별화는 이제 생존을 넘어 철학이 되었다. 추격이 아닌 독창성, 모방이 아닌 새로운 문법. 삼성의 미래는 이 철학을 얼마나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사용자들의 일상 속에 새로운 경험의 서사로 자리 잡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비자는 기능을 나열하는 스펙보다, ‘갤럭시라서 가능한 것’을 기억한다.
스마트폰 전쟁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차별화의 답은 숫자나 가격이 아니라 경험의 독창성에 있다. 갤럭시만의 차별화, 그것은 삼성의 사람들과 기술이 함께 짜내는 서사이며, 브랜드의 운명을 결정할 생존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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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이 전략을 두고 “친환경 기술은 곧 새로운 권력”이라고 말했다. 에너지를 낭비 없이 쓰는 기술,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 은 단순히 비용 절감을 넘어 글로벌 질서에서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미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하며, 제품과 서비스의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따져 가격과 세금을 매기고 있었다. 이 흐름 속에서 에너지 효율을 무기로 가진 기업만 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삼성의 공조 사업은 단순히 신사업이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삼성의 ESG 서사를 완성할 새로운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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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들은 화려한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주저하다 놓쳐버린 기회의 순간들이었다. 승부를 걸었다면 판을 바꿀 수도 있었던 무대에서, 머뭇거림과 내부 논리, 지나친 신중함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세계 기술 질서의 주도권이 다른 이들의 손에 넘어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선택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은 자체 운영체제 ‘바다(Bada)’를 키우려 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읽고 안드로이드와 iOS의 양강 체제에 균열을 내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전략은 완결되지 못했다. 내부적으로는 바다 OS를 밀어붙일 힘이 부족했고, 글로벌 개발자 생태계를 끌어들이지 못했다. 한때 삼성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그 위에 독자 생태계를 얹을 기회를 날려버린 순간이었다. 만약 삼성이 더 과감히 투자했다면, 지금의 모바일 세계지도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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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련은 삼성의 시련이었다. 그리고 삼성의 위기는 한국의 위기였다. 세계화가 닫히는 순간, 삼성이 느끼는 피로와 긴장은 곧 한국 사회 전체가 감내해야 하는 부담으로 변모했다. 삼성은 여전히 초격차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이제 그 길은 칩 위의 전쟁터만 이 아니라, 세계 질서라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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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그 무대에서 고독한 결정을 내린다. 초격차라는 이름의 무거운 유산을 이어가면서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글로벌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그의 출장 하나하나는 단순한 일정표가 아 니라, 삼성의 미래 전략서이자 한국 경제의 운명표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발걸음은 또다시 미국을 향하고 있다. 발로 뛰며 제국을 설계하는 회장의 그림자가 세계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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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흥망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실적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전체의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TSMC와 하이닉스에게 밀리며 몰락을 걱정하던 순간에도, 반등의 불씨는 기술과 동맹 속에 살아 있었다. 위대한 기업은 무너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품는다. 그리고 지금, ‘삼성 쇼크’는 위기의 상징에서 부활의 아이콘으로 바뀌며 한국 자본주의의 아이러니한 거울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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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삼성의 이야기는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국은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고, 전 세계가 그다음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삼성의 이름은 이제 하나의 기업을 넘어, 한국 자본주의의 거울이며, 글로벌 자본의 시험대이자, 미래 산업의 전장 그 자체다.
몰락과 부활 사이, 그 끝나지 않은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제국은 다음 장면에서 어떤 얼굴로 다시 등장할 것인가? 그리고 그 얼굴은, 단지 삼성의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운명을 비출 거대한 스크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