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스토리라인은 2020년대 한국에서의 집수리 게임에 대한 퀘스트와 해결의 연속 같은 면이 있다. 철거 현장에서 신경 쓸 부분은 무엇인가, 창문은 어떻게 설치하는가, 집수리 전문가는 어떻게 찾아보는가, 내가 집에 남다른 세부 요소를 넣으려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감수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나는 내 나름의 시간과 자원을 소모시키며 아주 천천히 이 과정을 하나씩 해 나갔다.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으나 원래 남의 고통이 나의 재미다. 나의 고되고 바보 같은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즐거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프롤로그 – 15평짜리 미로)
나는 현대 사회의 성채 같은 대형 오피스텔이나 아파트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시설이 좋은 건 잘 안다. 다만 그 시설이 편리하고 안전한 만큼 나에게 실제 세상의 어떤 부분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2. 새벽에서 계약까지)
2010년대 후반 잡지 에디터였던 그때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비유하자면 불경기를 코앞에 둔 호텔 라운지 같았다. 호텔 밖은 인적이 줄어들고 불도 꺼져 가는데 이 호텔 안에서만은 여전히 모두가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하늘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공짜 샴페인을 나눠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 점점 좁아지는 라운지로 몸을 움츠리지만 샴페인은 포기하지 못하고, 나 역시 그러는 무리의 일부 같았다. 왜곡된 시선인 걸 알지만 일단 그때 나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2. 새벽에서 계약까지)
내가 있는 에디터 혹은 광의의 문화산업 업계에는 이른바 도시 문화에 관심이 깊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에 관심이 많으니 좋아하는 것도 원하는 방향도 있겠고,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생각은 묘 하게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고, 오래된 곳이 좋고 역사가 소중하고. (3. 인생의 경우의 수)
1971년 준공이면 반포주공아파트와 같은 해에 지어진 집이다. 정말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이 집은 겉이 낡았을 뿐 속은 튼튼했다. 나는 이런 곳에 살고 싶었다. 오래되고 튼튼한 곳에. (3. 인생의 경우의 수)
전국에 수많은 전 반장님 같은 분들이 누군가의 전화번호부에 ‘ㅇㅇ 반장님’이라고 저장되어 있을 것 같다. 그런 반장님들은 집수리에 대해서라면 못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반장님은 필요하다. (5. 전 반장님 위로 떨어진 쥐똥)
이제 뭔가 시작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걸 넘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키기엔 모든 게 너무 늦었다. 천장은 뚫렸고 쥐똥도 다 떨어졌다. (5. 전 반장님 위로 떨어진 쥐똥)
나는 이른바 ‘좋은 것’이라는 게 무엇인지 늘 궁금했고, 생각할수록 좋은 것이 꼭 값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귀찮은 일들을 거치다 보면 내 형편에도 품질이 좋은 것들을 구할 수 있었다. (13. 타일계의 00년대 조르지오 아르마니)
우리 업계에서는 ‘마감은 마감이 한다’는 말이 있다. 수동적인 말이라 조금 부끄럽긴 하나 실제로 일을 해 보면 이 말이 정말일 때가 많다. 이런저런 마감을 하면 할수록 ‘내가 마감을 했다’라기보단 ‘어 마감이 끝났네’ 같은 느낌이 든다. (15. 고양이버스를 닮은 집수리 전문가)
“뭔가 지을 때부터 그냥 짓지 않고 아름답게 지어 보겠다는 욕심, 그게 건축이에요.” 김태수는 사카라의 건축을 이런 말로 표현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나의 낡은 현장을 떠올렸다. (16. 아름다움과 본능)
물론 무늬목이나 타카 자국은 악이 아니다. 모든 현장이 그럴 필요는 없다. 다만 멋을 꽤 부린 곳에서 타카 자국을 찾으면 조금씩 웃음이 나왔다. 온갖 곳에 타카 자국을 내 놓고 멋을 부리고 있는 거야…? 같은 느낌이랄까. 한국의 멋쟁이들에 대해 갖고 있는 나의 편견이 있는데, 그 편견은 시간이 지나고 그들을 직접 만나 봐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17. 늘 좋을 수는 없으니까)
타일이 없었다. 그들의 설명은 이랬다. 창고를 정리하던 중 악성 재고를 모두 폐기시켰다. 그중 내가 샀던 타일도 있다. 하늘이 타일 모양이 되어 그 타일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8. 사라진 타일)
그런 과정 끝에 낡은 옛 열쇠를 버리고 내가 산 새로운 자물쇠로 문을 잠그는 날이 왔다. 낡은 계단을 올라 집 앞에 다다르면 낡은 바닥 위로 특징 없어 보이는 문이 있는데 자물쇠 구멍만 유독 새것이다. 거기에 열쇠를 돌려 열면 완전히 새로 꾸몄지만 별로 새로워 보이지 않는 공간이 나타난다. 작고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기분 이었다. (19. 철물의 시간)
내 모든 짐이 준중형차 한대에 모두 들어가는 삶을 살았다. 우체국 택배 박스 중에는 살던 원룸에서 주워온 것도 있어서, 뵌 적도 없는 정은지 씨의 이름이 적힌 박스를 몇 년 동안 썼다. 그만큼 내 삶의 어느 부분에 무신경하게 살아온 몇 년이었다. (20. 입주하던 날)
이럴 순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생활 곳곳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상징적 균열뿐 아니라 실질적인 균열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택배 상자 속에 있는 옷들을 꺼내 입을 순 없었다. 입주를 하고도 짐을 빼지 못해 계속 임대료를 내며 창고를 쓸 수도 없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가구가 필요했다. 단 하나의 가구 도 없었지만. (22. 가구 삼고초려)
책을 옮겨 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아유 이게 완전히 돌덩이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책은 상당히 무게가 있지만 내게는 그만큼 가치 있는 화물이다. 누군가가 내 책을 옮기면서 짜증을 내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짜증을 보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내 몸으로 내 책을 옮기는 것이었다. (26. 맨몸 이사)
수십 뭉치의 책을 일일이 푸는 과정이 내가 집에 정착하는 과정이었다. 책들을 몇 년 동안 창고 안에 노끈으로 묶어 두었으니 모든 책에 먼지가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모든 책의 먼지를 일일이 닦으며 책들의 운명을 정했다. 계속 갖고 있을 책. 버릴 책. 팔 책. 누군가에게 줄 책. 그 지루한 정리들을 계속해 나가며 책장을 채워 넣었다. (26. 맨몸 이사)
그 과정이 내게는 가장 상징적인 이사의 마무리였다. 내가 이 집의 매입부터 수리까지에 이르는 일들을 한 이유와 과정은 지금처럼 책 한 권의 분량이 될 만큼 많다. 그 사이에서 나는 근원적으로 책들이 안전히 있을 곳, 책들과 함께 안전히 머무를 곳을 원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26. 맨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