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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티카

세계를 흔든 55가지 축구 이야기


  • ISBN-13
    979-11-86036-88-4 (03300)
  • 출판사 / 임프린트
    나름북스 / 나름북스
  • 정가
    22,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10-22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라몬 우살
  • 번역
    조진희
  • 메인주제어
    사회사, 문화사
  • 추가주제어
    사회, 문화: 일반 , 일반 및 세계사 , 대중문화 , 사회, 문화인류학
  • 키워드
    #사회사, 문화사 #사회, 문화: 일반 #일반 및 세계사 #대중문화 #사회, 문화인류학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10 mm, 420 Page

책소개

축구를 통해 세계의 정치사와 사회운동을 새롭게 읽어낸다. 저자 라몬 우살은 카탈루냐 출신 역사학자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축구가 그저 스포츠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실천의 장이 되어온 과정을 55개의 클럽 사례로 추적한다. FC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이유, 리버풀 팬들이 대처 정부에 맞선 정치적 저항의 주체였던 사연, 여자 축구가 성평등 운동의 최전선이 된 과정 등 저자는 각 시대와 지역의 권력, 민족, 젠더, 종교, 계급 문제를 축구의 역사 속에서 세밀하게 읽어낸다. 이 책이 보여주는 축구장에서 벌어진 갈등과 연대의 역사는 그 자체로 20세기와 21세기의 정치사다.

 

저자는 “축구는 정치와 분리돼야 한다”는 오래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축구가 ‘총체적 사회적 사실’로서 인간의 조건을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월드컵과 리그 시스템, 국가대표팀의 색과 엠블럼, 팬들의 집단적 열정 속에는 늘 정치가 작동해왔다. 식민지 해방을 꿈꾼 아프리카의 팀, 난민 캠프에서 시작된 팔레스타인의 대표팀, 노동자의 도시를 대변한 클럽, 그리고 자본의 스포츠워싱에 맞서는 환경주의 구단까지 축구장은 언제나 저항과 권력의 현장이었다.

 

‘정치적 축구’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스포츠가 어떻게 세계를 비추고 또 바꾸어왔는지 확인하게 된다. 축구의 영혼이 단지 경기장 안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균열과 열망 속에 있음을 증명하는 기록으로서, 이 책은 축구를 사랑하는 독자뿐 아니라, 현대사·정치·문화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목차


독자들에게
서문

1장 영국과 아일랜드
맨체스터 시티 FC: 페트로달러 클럽의 인도주의적 기원
토트넘 홋스퍼 FC: 스퍼스의 유대인 흔적
리버풀 FC: 철의 여인에게 맞선 팬들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 FC: 지구를 구하려는 축구
브리티시 레이디스 FC: 여자 축구의 페미니즘적 뿌리
셀틱 FC: 스코틀랜드의 아일랜드 공화주의 상징
스타 오브 더 씨 유소년 클럽: 북아일랜드 비극을 품은 클럽

2장 프랑스와 이탈리아
레드 스타 FC: 파리 변두리 하늘을 밝힌 붉은 별
SC 바스티아: 코르시카의 반항아
유벤투스 FC: 이탈리아 권력자들의 꼭두각시
토리노 FC: 노동자가 권력을 넘어설 때
AS 로마: 영원의 도시, 민중의 심장
인터 밀란: ‘이탈리아답지 않다’는 이유로 지워진 이름

3장 이베리아 반도
아소시아상 아카데미카 데 코임브라: 독재에 저항한 학생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천 개의 얼굴을 가진 클럽
레알 마드리드 CF: 공산주의자가 이끌던 ‘왕실’ 클럽
라요 바예카노: 바예카스의 심장, 노동자의 팀
FC 바르셀로나: 비무장 민중의 군대
CE 주피터: 별을 깃발 삼아
스패니시 걸스 클럽: 제1차 세계대전에 꺾인 꿈

4장 중앙유럽과 스칸디나비아
베를리너 FC 뒤나모: 슈타지의 클럽
FC 우니온 베를린: 슈타지와 자본에 맞선 팀
SC 타스마니아 폰 1900 베를린 e.V.: 냉전의 산물
FC 장크트파울리: 세 번의 반항
폴로니아 바르샤바: 폴란드 역사가 남긴 교훈
AFC 아약스: 그리스 영웅의 이름을 지닌 유대인 클럽
하코아 빈: 빈을 움직인 유대인의 힘
크리스티아니아 SC: 함께 피우고, 함께 뛰는 팀

5장 발칸 반도
GNK 디나모 자그레브: 현대 크로아티아의 거울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불굴의 달마티아인
FK 슬로보다 투즐라: 노동자의 도시, 노동자의 팀
FK 벨레주 모스타르: 모스타르의 붉은 별
올림피아코스 CFP: 피레아스의 붉은 반란군

6장 동유럽과 코카서스
FC 올트 스코르니체슈티: 독재자의 클럽, 그 흥망성쇠
FC 디나모 키이우: 우크라이나 대표팀이 된 디나모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도네츠크 역사의 상징
FC 카르파티 르비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성채
FC 스트로이텔 프리피야트: 체르노빌의 비극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10월 혁명 클럽
FC 아흐마트 그로즈니: 크렘린의 품에 안긴 체첸 클럽
카라바흐 FK: 유령 도시를 남겨두고 떠난 망명의 구단

7장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르빌 SC: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간판팀
알웨흐다트 SC: 축구로 이어간 팔레스타인의 꿈
샤힌 아스마이예 FC: 카불의매, 분쟁의 땅에서 날아오르다

8장 아프리카
라싱 유니베르시테르 알제: 카뮈와 식민지 알제리의 클럽
클럽 아틀레티코 데 테투안: 식민지 팀에서 모로코의 강팀으로
JS 마시라: 서사하라 점령을 정당화한 클럽
하피아 FC: 아프리카 혁명의 무기
패시브 레지스터스 SC: 평화적 저항의 클럽

9장 아메리카
뉴욕 램블러스: 동성애 혐오에 맞선 무지개 축구
SC 코린치앙스 파울리스타: 축구장에서 꽃핀 민주주의
CD 코브레살: 아타카마 사막의 광부 클럽
콜로-콜로: 피노체트의 긴 그림자
무슈크 루나 SC: 케추아인의 꿈
CD 에우즈카디: 우승 직전에 멈춘 바스크 대표팀

참고문헌
엠블럼

본문인용

리버풀 팬들이 대처에게 적대심을 품은 이유는 축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철의 여인’이 추진한 긴축정책으로 머지사이드 지역이 겪은 빈곤 등 정치적 요인도 컸다. 1979년부터 시행된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한때 ‘유럽의 뉴욕’이라 불리던 리버풀은 급속히 쇠퇴했고, 실업과 빈곤이 심화됐다. 헤로인이 유행했고, 지역 파업과 대규모 폭동이 이어졌다. 많은 영국인은 리버풀을 ‘국가의 하수구’로 여기며 희망 없는 도시로 취급했다. 대처 집권기 첫 대규모 폭동은 1981년 리버풀의 빈곤 지역 톡스테스에서 일어났다. 이 폭동에서 지역 흑인 주민과 경찰이 충돌했고 1명이 경찰차에 치여 숨졌으며 500명이 체포됐다. 대처는 경찰의 대응을 강력히 지지했고, 무리한 진압을 묵인함으로써 노동자 계급 도시에서의 반감을 더욱 키웠다. 리버풀의 축구 성지 안필드에서는 대처를 반대하는 구호가 일상적이었다, 특히 전설적인 안필드 콥 스탠드에서는 팬들이 “매기, 매기, 매기, 죽어, 죽어, 죽어!”라고 외치곤 했다. 36-37

 

가장 흥미로운 점은 빈스가 비건 식단을 선수들에게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경기장 내 모든 매점에도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팬들이 즐기던 햄버거, 소시지, 탄산음료 등 빈스가 “끔찍한 음식”이라 부른 것들은 후무스, 퀴노아, 채소, 콩이나 귀리 음료로 대체됐다.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는 이로써 세계 최초의 완전 비건 축구 클럽이 됐다. 식단 변경은 클럽을 친환경 기준에 맞게 전환하기 위한 여러 조치 중 하나였다. 경기장 잔디는 유기농으로 교체됐고, 기존의 화학 비료 대신 소 배설물이 사용됐다. 잔디는 태양열로 작동하는 로봇이 깎고, 잘린 잔디는 지역 농부들에게 제공됐다. 이외에도 태양광 패널 설치, 빗물 재활용, 전기차 사용 장려, 재활용 확대, 친환경 종이로 경기 일정표 제작, 화학물질 없는 페인트 사용 등 다양한 지속가능성 조치가 시행됐다. 41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여성이 축구를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론은 여성 선수의 외모, 복장, 경기력을 비난하며 성차별적인 보도를 이어갔고, 축구는 남성만의 스포츠이며 여성에게는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일부 의사도 이에 동조해 여성이 축구를 하면 불임이 되어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의학적’ 경고를 내놓았다. 이들은 젊은 여성들의 축구 참여를 막기 위한 캠페인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이러한 성차별적 시도는 1894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축구 클럽 창단을 목표로 〈데일리 그래픽〉에 선수 모집 광고를 낸 젊은 여성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온갖 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30명의 여성이 이에 응답했고, 이듬해인 1895년 1월 1일 선구적인 브리티시 레이디스 FC가 창단됐다. 토트넘 홋스퍼 출신의 빌 줄리언이 감독을 맡았으며, 그는 여자 축구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몇 안 되는 남성 선수 중 한 명이었다. 45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의 대거 영입 덕분에 파리 클럽은 오늘날 상업 축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카타르의 석유 자본은 마치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정말 그럴까? 불굴의 갈리아인이라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알 켈라이피와 그의 팀이 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다. PSG는 유럽의 명문 구단들에 비해 축구적 유산이 빈약하다. 파리 안에도 더 깊은 전통을 지녔지만, 자금은 부족한 팀들이 있다. 그 대표 주자가 바로 레드 스타 FC다. 이 전설적인 클럽은 최근 몇 차례 프랑스 2부 리그(리그2)에 진출하며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PSG는 카타르 자본을 앞세워 그 영광마저 차지하려 한다. 65-66

 

최근 수십 년 동안 피에몬테 사회에서 이념적 정체성이 약화됐음에도 두 토리노팀 간의 계급적 구도는 여전히 뚜렷하다. 유벤투스FC는 팬층의 절반 이상이 우파 성향을 띠는 반면, 토리노FC는 주로 좌파 성향의 팬들이 지지하고 있다. 이는 토리노FC가 자신들의 역사에 충실해 왔음을 보여준다. 스포츠적인 성과 면에서는 유벤투스FC가 우위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리노FC는 피에몬테 주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팀으로 남아 있다. 한때 노동자들이 고용주를 이길 수 있게 해준 클럽이라는 역사적 기억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91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 역사에는 오르테가 대령이 차마르틴 지역에 기반을 둔 이 스포츠클럽을 운영했다는 언급조차 없다. 클럽 웹사이트의 역대 회장 사진 갤러리, 클럽이 승인한 수많은 출판물, 그리고 특히 클럽 박물관의 역사 전시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절박했던 시기에 클럽을 이끌었던 인물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가 자국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은 클럽이 안토니오 오르테가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는 점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레알 마드리드의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일부다. 1937년부터 1939년 파시스트가 마드리드를 점령하기 전까지 공화파 대령이자 스페인 공산당 당원이었던 오르테가는 당대 공화주의 가치를 상징하던 이 클럽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공화주의 시절 레알 마드리드의 공산주의자 회장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권력의 상징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명예의 전당’을 지켜온 이들은 왜 그의 기억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뒀는가? 126-127

 

밀케가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그의 뒤나모가 끝내 얻지 못한 것은 팬들의 사랑이었다. 베를리너 FC 뒤나모는 동독 대부분의 경기장에서 ‘부정행위 챔피언’이라는 조롱과 함께 적대적인 반응을 받았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 열린 주중 경기에는 고작 2,000명만이 관중석을 채웠다. 같은 시기 뒤나모 드레스덴의 경기에는 3만 명이 몰려 동독 리그 최다 우승을 차지한 두 팀의 팬 지지율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 오늘날의 뒤나모는 한때 밀케의 절대적 후원을 받던 클럽과는 전혀 다르다. 국제여단 출신이자 평생 파시즘과 맞섰던 슈타지 수장 밀케가 살아있다면 ‘자신의’ 뒤나모 팬들이 공개적으로 극우를 지지하고 파시즘의 상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을 것이다. 이는 베를리너 FC 뒤나모가 냉전의 산물이자 축구 또한 그 갈등의 일부였음을 보여주는 기이한 역설이다. 177-178

 

전통적으로 성차별과 동성애혐오가 만연한 축구계에서 동성애자이자 성소수자 인권운동가가 공개적으로 클럽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수 있다. 그는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여성에게 모욕적이라 느껴지는 광고를 경기장에서 철거하기도 했다. 이런 클럽이 실제로 존재하며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 주인공은 함부르크의 축구클럽 FC 장크트파울리다. 이 팀은 반파시스트를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왜 ‘컬트 클럽’인지 몸소 증명해 왔다. 191

 

당시 크로아티아인으로만 구성된 즈린스키는 파시스트 치하의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경기를 이어갔지만, 벨레주는 그 리그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에 벨레주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파르티잔 저항군에 합류하며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맞이했다. 벨레주가 치른 희생은 막대했다. 선수 77명과 구단 직원 21명이 유고슬라비아를 파시스트 지배에서 해방하기 위한 파르티잔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티토가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이는 벨레주가 지하 활동을 이어가며 추구해 온 공산주의 가치와 민족 간 연대의 이상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246

 

그날의 핵폭발로 인해 소련의 모범적 ‘원자’ 도시였던 프리피야트는 단숨에 유령도시로 전락했다. 공산당 당국은 참사 발생 36시간 뒤에 야전 주민 대피를 명령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 대피 소식을 처음 접한 이들 중에는 4월 27일 아방가르드에서 FC 스트로이텔 프리피야트와 우크라이나 지역 컵 준결승전을 치를 예정이던 FC 보로디얀카 선수들도 있었다. 이 경기는 물론 체르노빌 클럽의 소련 아마추어 4부 리그 참가 또한 영원히 중단됐다. FC 스트로이텔 프리피야트 선수들은 다시는 그 유령도시로 돌아가지 못했다. 예외가 있다면 체르노빌 4호 4기를 봉쇄하고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리퀴데이터’로 투입된 일부 선수들이었다. 287

 

5년 뒤 난민 클럽 알웨흐다트 SC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팬의 열띤 응원 속에 처음으로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은 알람타 SC와의 치열한 승부 끝에 얻은 영광이었다. 그러나 경기 중 양측 팬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웨흐다트 SC의 우승은 알웨흐다트 캠프 거리 곳곳에서 열렬히 축하받았다. 나아가 지역이나 국가를 대표할 축구팀이 없는 팔레스타인 점령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주민들 역시 알웨흐다트 SC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아 주요 거리에서 환호를 이어갔다. 알웨흐다트 SC가 경기를 치를 때마다 경기장은 팔레스타인 국기와 그 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 때문에 클럽은 유니폼에 팔레스타인 색상을 채택했고, 엠블럼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색과 함께 알아크사 모스크의 이미지를 더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역할을 이어갔다. 321

서평

권력, 저항, 정체성이 얽힌 세계의 경기장을 해부하다

축구의 역사가 인간의 자유와 연대의 역사였음을 증명하는

가장 지적이고 뜨거운 세계사

 

《풋볼리티카》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역사학자 라몬 우살이 쓴, 축구와 정치의 얽힘을 탐구한 세계사적 저작이다. 저자는 “축구는 정치와 무관하다”는 통념을 부정하며, 축구의 역사를 통해 세계사의 이면을 새롭게 읽어낸다. 책의 제목 풋볼리티카(Futbolítica)는 ‘축구(fútbol)’와 ‘정치(política)’를 결합한 조어로, 축구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사회적·정치적 현상임을 드러낸다. 19세기 산업화한 영국에서 근대 축구가 탄생한 이후, 클럽은 도시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하며, 때로는 독재에 저항하고, 때로는 권력의 도구가 되어왔다.

 

우살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발칸,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 55개 클럽의 사례를 통해 축구가 ‘총체적 사회적 사실(total social fact)’로 작동해온 과정을 추적한다. 이는 일반적인 스포츠사의 나열이 아니라, 축구를 통해 근현대 정치사의 구조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저자는 클럽이 태동한 사회적 배경, 억압과 해방의 역사, 그리고 팬문화가 만들어낸 연대의 정치를 분석하면서, 경기장이 곧 사회의 축소판임을 증명한다.

 

이 책은 특히 ‘축구를 권력이 이용한 방식’과 ‘축구가 권력에 저항한 방식’의 두 가지 흐름을 교차한다. 축구를 둘러싼 억압과 저항, 계급과 정체성, 젠더와 식민, 자본과 연대의 역사를 해부하며,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정치적 대립, 리버풀 팬들이 대처 정부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 된 사건,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에서 축구가 독립운동의 장이 된 사례, 그리고 자본과 이미지 정치가 결합한 현대의 ‘스포츠워싱’ 현상까지, 축구사를 세계정치사의 미시적 기록으로 재구성한다. 축구사와 정치사, 문화사를 횡단하는 이 책을 통해 축구가 언제나 사회의 가장 깊은 균열을 비춘다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제국주의와 독재에 맞서 유일한 자유의 공간이 된 경기장

권력은 공을 소유했지만, 경기는 언제나 민중의 것이었다

 

지역별로 9개 장으로 분류해 실은 이 책의 축구 클럽들 중 가장 돋보이는 주체는 제국주의와 독재에 저항한 민중의 팀이다. 축구는 종종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이용됐지만, 권력의 언어보다 저항의 언어로 더 많이 기억된다. 스페인의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를 이용하려 하고, 포르투갈 독재자 살라자르가 SL 벤피카로 국제적 고립을 극복고자 했으며,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유벤투스 FC),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칠레의 피노체트(콜로-콜로)도 축구 클럽을 선전 도구로 활용했으나, 민중은 늘 경기장에서 자유를 찾아내며 축구를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어왔다.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프랑코가 권력을 장악하자, 카탈루냐의 언어와 문화는 금지됐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분리주의의 본거지’로 지목됐다. 프랑코는 FC 바르셀로나를 체제에 흡수하려 했지만, 구단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홈구장 캄프 누에서는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깃발이 은밀히 흔들렸고, 관중들은 억압된 언어 카탈루냐어로 노래를 불렀다. 그곳은 경기장이 아니라, 억압받은 언어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코 체제의 ‘스포츠 외교 도구’로 쓰일 때, 바르셀로나는 시민 저항의 상징이 됐다. 프랑코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그라운드 위의 카탈루냐”로 불린다.

 

포르투갈의 우익 정권인 에스타두 노부는 축구 경기장에서 거대한 저항에 직면했다. 중부 도시 코임브라에서 대학생 연합이 창단한 아카데이마 데 코임브라가 1969년 포르투갈컵 결승전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축구연맹이 코임브라 팀의 검은색 완장을 금지하고, 정부는 경기장 주변에 대규모 경찰 병력을 배치했으나, 결승전에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깃발과 현수막이 휘날렸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보호하며 함께 구호를 외쳤다. 1990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디나모 자그레브 주장이 크로아티아 팬을 폭행하던 세르비아 경찰을 무릎으로 가격한 장면도 유명하다. 이 날은 크로아티아 자유 독립을 위한 폭력 투쟁의 시작을 알린 날이 되었다.

 

나라 잃은 소수민족과 식민지의 팀들은 축구 경기장을 자신들의 영토로 삼았다. 식민지 시절 알제리에서 프랑스인과 알제리인이 함께 뛰던 라싱 유니베르시테르 알제는 표면상 ‘통합의 팀’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본토 리그에선 그들을 ‘2등 시민’으로 취급했다. 이 모순 속에서 자란 청년이 바로 철학자이자 골키퍼였던 알베르 카뮈였다. 카뮈는 “도덕과 인간성은 축구장에서 배웠다”고 회고했다. 전원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구성된 알웨흐다트 SC도 있다. 이 팀은 요르단 암만의 난민캠프에서 창단했다. 요르단 정부는 이 팀의 민족주의를 경계했지만, 팬들은 경기마다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었다. 그들의 외침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었다.

 

공장 굴뚝 아래 태어난 연대의 축구,

현대 자본주의 방식에 맞선 지속가능한 축구

 

축구는 억압과 불평등, 차별에 맞서는 연대와 해방의 정치적 언어로 작동하기도 했다. 《풋볼리티카》는 신자유주의의 심장부였던 1980년대의 영국 리버풀에서 리버풀 FC가 노동자 연대의 공간이었다고 분석한다. 대처 정부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산업도시의 노동자들을 해고와 빈곤으로 몰 때, 축구장은 노동자들의 유일한 공동체 공간이었고, 붉은색 유니폼은 그들의 자존심이자 생존의 상징이었다. 이는 보수당 정부에 대한 반대가 팬 정체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만든 배경이 됐다. 팬들은 리버풀의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의미로 대처 반대 구호를 외쳤다.

 

피아트 자본이 세운 클럽인 유벤투스 FC가 버티고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에는 공장 노동자들이 만든 팀인 토리노 FC도 있다. 한 도시 안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축구로 형상화한 격으로, 토리노의 관중석은 작업복을 입은 팬들로 가득했고 경기장의 응원가는 노동조합의 구호와 닮아 있었다. 파시스트 정권이 1944년에 팀 이름을 ‘토리노 피아트’로 바꾸기도 했으나, 축구로 독재를 유지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스포츠적인 성과 면에서는 유벤투스 FC가 우위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리노 FC는 피에몬테 주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팀으로 남아 있다. 한때 노동자들이 고용주를 이길 수 있게 해준 클럽이라는 역사적 기억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외곽의 노동자 지역 바예카스에서 1924년 창단한 라요 바예카노 또한 노동자 공동체가 권력과 자본의 축구에 맞선 상징적 모델로 제시된다.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저소득 노동자와 이민자로 구성돼, 구단은 일찍부터 저항의 정서를 품었다. 스페인 1부 리그가 은행 이름을 달고 있는 상업화한 환경에서, 이 클럽은 최근에도 은행 빚으로 쫓겨난 노인을 돕는 등 지역에 대한 헌신과 계급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2010년에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동참한 유일한 팀이며, 팬클럽 또한 2012년 유럽연합 주도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 시위에 활발히 참여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라요 바예카노는 많은 경쟁 팀이 잃어버린 존엄성을 간직한 클럽이며,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노동자 계층의 팀이다.

 

영국의 비건 구단이 던진, ‘축구는 무엇을 소비하는가’에 관한 질문도 흥미롭다.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고, 환경과 생명 중심의 새로운 축구문화를 창조한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의 사례는 축구가 사회운동의 실천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석유자본이 리그를 장악하고, 팬들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들고 응원하던 시대, 작은 리그의 구단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는 ‘지속가능한 구단’을 표방했다. 모든 식단을 비건으로 바꾸고 경기적 전력을 태양광으로 전환하며 잔디는 유기농 방식으로 관리됐다. 이 책은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가 축구가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전 지구적 투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축구가 평등을 배우는 과정

‘참여할 권리’를 쟁취한 경기장의 주인들

 

2023년 여름, 스페인 여자 대표팀이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트로피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킨 건 시상대 위의 단 한 장면이었다. 스페인 축구협회장 루이스 루비알레스가 스타 선수 헤니페르 에르모소의 동의 없이 입을 맞춘 것이다. 스페인 사회는 순식간에 들끓었다. “우리는 우승했지만, 아직 평등하지 않다.” 사건 이후 루비알레스는 사퇴했고, 연맹은 남녀 대표팀의 실질적 평등 조치를 약속했다. 저자는 이것이 축구가 원래 정치적 현상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본다. 여자 축구가 2017년 이후 대중의 주목과 찬사를 받으며 급부상했지만, 여자 선수들은 여전히 평등과 거리가 먼 대우를 받고 있었고, 여자 리그에 대한 언론의 높은 관심은 여성의 권한 강화와 성평등을 위한 투쟁이 축구를 통해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세계 최초의 여성 축구팀으로 소개된 브리티시 레이디스 FC는 1895년 영국에서 결성돼 남성 중심 사회에 여성도 경기장에서 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창단 목표는 축구를 넘어, 여성의 사회적 평등과 참정권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언론은 그들을 조롱하고 ‘여성의 품위를 잃었다’고 비난했지만, 런던 데뷔전에 1만 명의 관중이 몰렸고,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고 경기해 복장 규범에 도전했다. 사회적 비난 속에서도 이 팀은 1년간 100회 이상의 시범 경기를 치르며 여성 해방의 실천을 열었다. 브리티시 레이디스 FC는 여성의 신체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요구한 최초의 스포츠 정치행위로 평가된다.

 

미국의 게이 남성들이 모여 만든 뉴욕 램블러스는, ‘정상성’의 규범을 깨는 축구였다. 이들은 동성애자 차별이 극심하던 1980년대 초에 “성소수자도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창단했다. 많은 축구 클럽이 노동계급과 진보적 정치 성향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전 세계 축구 경기장은 오랫동안 동성애 혐오가 만연한 공간이었다. 축구 팬 다수가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스포츠가 전통적으로 강한 남성성을 강조해온 탓에, 경기장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모욕은 상대 선수를 동성애자로 조롱하는 것이었다. 램블러스는 주류 리그 참가가 금지되자 독자적인 게이 리그 조직에 참여해 국제 교류를 이끌었고, 성적 지향에 따른 배제에 맞선 사회운동적 공동체로 성장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게이 축구팀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축구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를 보고 있는가

 

《풋볼리티카》의 독창성은 ‘축구사를 곧 정치사로 읽는 방식’에 있다. 많은 책이 축구의 전술, 스타, 경기 결과를 다루지만, 이 책의 저자는 ‘왜, 어떤 클럽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축구를 통해 권력과 저항, 제국과 식민, 남성과 여성, 자본과 연대의 역사를 동시에 조명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카타르 월드컵의 ‘스포츠워싱’, 사우디의 투자, 여자 축구를 둘러싼 성평등 논란 등 오늘의 축구와 세계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축구가 자본과 국가 권력의 이미지 세탁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서 연대와 해방의 가능성을 찾는다.

 

아울러 이 책은 학문적 깊이와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이그나시오 라모네 등의 사회학 전통을 잇고, 서술 면에서는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한 리포트 구조를 취한다. 각 장의 클럽은 작은 단편 같지만, 전체를 합치면 ‘근현대 세계사의 정치 지형도’가 완성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축구를 통한 ‘집단 기억의 정치학’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각 클럽은 특정한 집단의 기억, 곧 도시의 노동자, 소수민족, 여성, 난민의 기억을 담고 있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축구는 억압받은 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언어이자, 그 자체로 저항의 예술이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단지 ‘축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다. 정치학자에게는 대중정치의 미시적 사례집으로, 사회운동가에게는 연대의 언어로, 축구팬에게는 자기 열정의 뿌리를 돌아보게 하는 텍스트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 라몬 우살은 “축구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경기장 바깥의 함성, 그 함성에 담긴 시대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탁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라몬 우살
1977년 바르셀로나 출생.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예이다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등 교육 기관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며, 작가이자 학자, 정치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스포츠와 역사, 사회, 정치의 관계를 다룬 글을 꾸준히 발표해 왔으며, 독립좌파 정당 CUP 소속으로 정치활동에도 참여해 카탈루냐 의회 의원을 지낸 바 있다. 저서로는 『자유를 위한 축구(Futbol per la llibertat)』(2011, 조셉 발베르두 에세이상 수상)가 있으며, 그 외에도 역사와 정치, 문학을 넘나드는 다수의 저작을 집필했다.
번역 : 조진희
1975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상명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언어학부 한국어 강의 전담 교수로 재직하며 강의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며, 한국어 교육과 한국학 연구, 번역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소개

기울어진 세상에서 중심 잡기. 올곧게, 재미있게 읽는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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