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글로벌 요리에 대한
뒤늦은 진정한 헌사
중화요리에 대한 정통 인문학 저서!
맛보고, 맛보고, 또 맛보는 것. 다양한 지역의 풍미를 느끼는 것.
중화요리의 무한한 변주를 체험하는 것.
수많은 이론과 묘사와 전설과 조리법이
현장에서, 입 안에서, 혀 위에서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체험했다. 무술인이나 음악가가 연습을 통해
실력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 식도락가도 경험을 통해 배운다.
_ 본문에서
중국은 큰 나라이지만, 요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크다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함이 느껴지는 나라다. 중국은 22개의 성과 660여 개의 도시로 이뤄진 나라다. 식재료와 삶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요리의 지역 특색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변주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중국을 대표하는 요리를 하나 떠올려보라고 하는 건 무척 잔인한 일이다. 뭘 선택해도 거기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요리는 최초의 진정한 세계적 요리였다. 최초의 중국 노동자들이 해외로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하자, 그 뒤를 이어 식당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중국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요리 전통 중 하나이면서도 가장 실체가 덜 알려진 요리 전통이기도 하다. 한 세기 넘게 단순화된 형태의 광둥식 요리가 압도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외국인들은 중국 음식의 풍부함과 섬세함을 거의 경험할 수 없었던 탓이 크다. 그러나 이제 그런 흐름이 바뀌고 있다.
퓨샤 던롭은 『웍과 칼』에서 중국 음식 문화의 역사와 철학과 조리법을 종횡무진 탐구한다. 저자는 이미 여러 권의 중국요리 관련 책을 펴낸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저자이며 책에서 자신이 중국 음식과 맺은 인연을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 1990년대에 학생 신분으로 중국으로 건너간 던롭은 공부는 뒷전에 두고 하루 종일 먹기만 했다. 그러다가 또 먹기만 하고, 또 먹기만 하다가 결국 쓰촨고등요리학교에 등록한 최초의 비중국인 학생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음식 전문기자로 활약하게 되었으며 여러 권의 책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웍과 칼』을 퓨샤 던롭의 여러 권의 음식 책 중 하나로 간주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간 구축해온 중화미식인류학을 총체적으로 녹여낸 대작이자, 하나의 백과사전처럼 무수한 지역, 식재료, 레시피, 역사, 철학 등의 정보를 아름다운 문맥으로 구축해낸 역작이기 때문이다. 각 장별로 내세워진 것은 마파두부, 동파육, 도삭면, 유자 속껍질찜 등 30여 종의 고전적인 음식 메뉴이지만 전골요리나 장류, 육수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마다 3000년의 역사를 조망하며 요리의 기원을 파헤치고 그 변화의 과정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대두의 중요성, 이국적인 식재료의 유혹, 불교 채식의 역사와 같은 중국 미식의 고유한 면면을 드러낸다.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식재료 생산자, 요리사, 미식가, 가정 요리사들을 만나면서, 퓨샤 던롭은 중국 본토에서 요리가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취급되는 방식을 살피는 잊지 못할 여정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역사 서술과 군침이 돌게 하는 음식의 묘사, 30년에 걸친 현장 조사를 엮어낸 이 책은 중화요리의 즐거움과 신비로움에 바치는 생생하고도 기념비적인 헌사다.
이 책의 미덕은 신기한 중국요리를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요리를 관통하는 몇 가지 원형들을 체계적으로 고증하여 보여준다는 데 있다. 칼로 잘게 썰어 찌거나 볶는다는 기본 조리법의 형성. 북방은 밀 남방은 쌀이라는 커다란 경계선. 불교, 도교, 유교와 이슬람 문화가 식단에 끼친 영향과 불교 채식 요리의 역사, 다섯 가지 맛 오미를 화려하게 조합하는 조미의 식문화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문화, 일상적인 음식의 조화를 통해 건강을 다스린다는 뿌리 깊은 사상. 왜 중국인들은 고기를 큰 덩어리째 불에 던져 넣지 않고 항상 잘게 썰어서 조리하는지에 대한 이유 탐구 등.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공자 시대에 중국 북부의 주요 식량이 쌀이 아닌 기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웍 요리를 가능케 한 가스레인지가 발명되기 전 수백 년 동안 중국 귀족들은 겅羹 요리를 중심으로 한 연회를 즐겼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겅은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걸쭉한 전분 스튜라고 할 수 있는데 훨씬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며 미묘하게 각기 다른 맛을 지녔다. 심지어 송나라 이전 시대에는 중국에서 간장을 먹지 않았고, 대신 수십 가지 종류의 발효 장으로 음식 맛을 냈으며, 간장은 원래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부산물이었지만 어떻게든 대중화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런 얘기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중국요리라는 거대 코끼리의 실체를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한국의 짜장면, 영국의 탕수미트볼
이 책을 옮긴 역자들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국민 음식을 뽑으라고 하면 짜장면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이 요리는 분명 중국요리인데 중국 본토에서는 산둥과 베이징 일대를 제외하면 그닥 알려져 있지도 않고, 한국에 들어온 지는 겨우 한 세기 남짓이다. 짜장면이 이처럼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데는 온갖 사연이 있다. 무엇보다 산둥의 조리법을 우리 입맛에 맞춰 수차례 과감하게 개량했고, 과도한 규제로 인해 요식업이 화교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면서 전국에 퍼져나갔다. 가격통제 품목으로 분류되어 서민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고, 중국집이 배달 문화의 선봉에 서며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기도 했다. 요즘은 마라탕이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모든 식문화는 진화하지만 중국 음식의 적응력은 실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저자 퓨샤 던롭이 자라던 1980년대의 영국에서는 탕수육(정확히는 탕수미트볼)이 한국의 짜장면과 비슷한 지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찹수이나 좌종당계가 중국 음식의 대명사이자 호불호가 없는 만인의 음식이고, 일본에는 라멘과 군만두가 그렇다. 전 세계의 수많은 현지화된 중국 음식 뒤에는 한국 짜장면만큼의 뒷이야기가 있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하나, 이문화 간의 접촉으로 인해 생겨난 요리라는 점이다.
해외의 중국요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 내의 중국요리가 그토록 다양한 데는 땅덩이가 크다 보니 지역에 따라 기후와 토양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질적인 문화 간의 접촉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퓨샤 던롭은 책에서 중앙아시아로부터 맷돌을 들여와 국수와 면요리가 탄생했던 한나라를 얘기하고, 서역과의 교류가 절정을 이루었던 당나라의 코즈모폴리턴 문화 덕분에 아직도 중국의 대도시마다 무슬림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고 알려준다.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북방의 카이펑에서 남방의 항저우로 이전하며 남북 문화가 멋지게 융합했던 13세기의 송나라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보고 싶은 중국 음식문화의 전성기였다고 말하며, 청나라의 건륭제가 강남 요리에 매료되어 만주족의 궁중요리에 적극 반영시켰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가까이는 앞서 말한 짜장면처럼 동남아, 미국, 유럽 등지의 화교들이 현지 문화에 맞춰 정착시킨 이국적 중식의 이야기도 나오고, 상하이가 ‘아시아의 파리‘이던 한 세기 전 출현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개량 양식 ‘시찬西餐’도 소개한다.
접촉하고 갈등하고 포용하는 음식
서로 다른 문화가 뜻밖의 접촉을 통해 결국 포용에 이를 때 멋진 것이 탄생한다. 처음에는 서로의 고정관념 때문에 낯설고 갈등도 겪게 마련이지만, 결국은 타협이 가능한 지점을 깨닫게 되고 그러다가 상상치도 못한 제3의 무언가가 생겨난다. 가령 퓨샤 던롭은 중원의 중국인들이 북방 ‘오랑캐’가 먹는 유제품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우유를 치즈로 만드는 과정을 따라해 맷돌에 간 콩물을 굳혀 두부를 탄생시켰을 거라고 추정한다. 모든 문화는 그렇게 접촉하고 갈등하고 포용하는 과정을 거쳐 진화하는 것 아닐까. 거꾸로 말하면 외부와의 접촉이 없고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문화는 정체되거나 퇴화한다. 이 책의 한글판 부제를 ‘중화미식인류학’이라고 지은 것은 그래서다.
저자 퓨샤 던롭은 1990년대 중반 1년 예정으로 쓰촨의 청두에서 머물다 우연히 현지의 요리학교를 다니며 중국요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중국 각지의 요리를 공부하고 탐험하며 1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모험담을 정리한 2008년의 저서 『상어 지느러미와 제피Shark’s Fin and Sichuan Pepper』는 당시 중국의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 전후로도 쓰촨요리, 후난요리, 강남요리 등을 다룬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레시피북을 펴냈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미식 투어를 조직해 서양인들에게 중국요리를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역자들은 말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는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결실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때였다. 중국 경제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투자유치를 위해 문을 활짝 열면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중국이야말로 이질적인 문화가 시끌벅적하게 부딪히던 장소였다. 오해와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과는 달리 서로 어울리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전제로 깔려 있던 시기였다. 퓨샤 던롭이 중국 전역의 음식 문화를 거침없이 탐험할 수 있었던 것도, 서양인이라는 사실 외에 당시의 개방적인 공기가 큰 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렇게 중국 음식에 골몰했던 30여년의 집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