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죽어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우리 모두가 그의 살인자다!”
예술의 정의와 역할, 방향에 대한 철학적 사유
2005년 원앤제이 갤러리를 설립하고 한국의 재능 있는 작가들을 세계 무대에 알려온 저자 박원재는 이 책에서 ‘예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2018년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에서 발루아즈 상을 수상한 유일한 아시아 갤러리를 이끈 그는 왜 예술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현대의 예술이 자본주의와 목표지향적 사고에 휘둘리며 우리의 삶과 분리되었다고 진단한다. 미술관은 예술을 동시대성에서 떼어놓는 무덤이 되었고, 디지털 시대의 NFT는 예술을 소유권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예술은 본래 인간의 신체와 감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행위라며, 예술이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은 예술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고 자본주의와 기술이 예술을 어떻게 공허하게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라스코 동굴 벽화나 셰익스피어의 대중 공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에서 볼 수있는 것처럼 예술은 대중의 삶과 밀착되어 있었지만, 현대 예술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여전히 창작자의 감각과 관객의 체험에 있다. 이 책은 예술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안토니 곰리,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웨이웨이, 알리기에로 보에티, 트레이시 에민, 러끄릿 띠라와닛 등 현대 작가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예술이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한다. 예술이 개인적 창작을 넘어 사회적 연결과치유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너무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인류의 근원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플랫폼, 예술
아트 바젤에서 발루아즈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게 된 저자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오랫동안 예술계의 인정을 받기 위해 달려오면서 예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예술을 넘어 삶의 의미를 성찰하기 위해 종교철학을 공부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종교의 역사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진리를 독점하려는 자들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예술의 세계도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예술, ‘가치 있는’ 예술을 결정하는 것은 종종 소수의 권위자들이었고, 그들은 예술을 특정한 틀 안에 가두고 대중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과연 예술이란 이렇게 소수의 손에 의해 정의되어야 하는 것일까? 예술은 본래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연결하고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아니었나?_6쪽
하지만 예술은 새로움과 다름을 포용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의 장을 열 가능성을 품고 있다. 저자는 ‘서로 너무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인류의 근원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한다. 예술은 단순히 미술관의 벽에 걸린 그림이나 경매장의 상품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서로 다른 이들을 연결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포용하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도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 어떻게 서로 다른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예술의 죽음과 본질, 그리고 부활
1부 ‘예술은 왜 멀어졌는가?’
: 왜 예술이 죽었다고 했는가, 누가 예술을 죽였는가
우리 시대 예술의 문제점과 그 원인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작품을 들어 살펴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조차 관객의 반응에 따라 변형되며 삶 속에서 살아 숨 쉬었다. 그러나 19세기에 태동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예술의 경계는 확장되었지만, 때로 관객과의 연결이 끊어졌고 예술계의 엘리트주의를 초래했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예술은 점차 상품화되었고, 목표지향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결합해 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희석되었다.
2부 ‘본디 예술은 삶이었다’
: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오늘날의 예술은 개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특정한 지식이나 논리를 이해해야만 접근할 수 있다. 예술이 삶과 분리되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본디 삶이었다. 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저자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안토니 곰리,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며 몸과 감각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소셜 미디어와 AI 같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예술의 변화와 가능성에 대해서도살펴본다.
3부 ‘일상으로 돌아온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 예술의 부활, 즉 예술이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술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 소유가 아닌 경험이 중요하다. 예술은 작가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소통의 장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다시 느끼고 다시 연결되고 다시 살아내는 감각이다. 앞으로 미술 산업은 체험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술이 더 많은 사람과 더 다양한 맥락에서 만나는 방법으로 다른 산업과의 협업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이 책은 예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시작하지만, 오늘날의 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술의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곧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첫걸음이 될 수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예술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예술이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이 책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우리가 예술을 통해 삶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술은 죽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면, 그것을 다시 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