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칠순(七旬)이 되어 부모 형제와 함께 지내 온 유년 시절을 회상해 보니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자위해 본다. 우리 세대 부모들이 다 그러했듯이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삶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한한 사랑을 주셨다. 그 자양분을 먹고 자란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나 역시 자유의지로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어려운 환경에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큰 혜택을 누렸다.
-그리운 부모님 중에서
지루하게 괴롭히던 오른팔 장애라는 딱지가 이 부서를 거치며 해방되었다. 이 부서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 초대 과장이신 안준태 과장님, 그 후임인 백운현 과장님으로부터 넓은 시각으로 부산시의 현안을 진단하고 대처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방법론을 터득할 수 있었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불도저같이 일하던 권영 과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속상관이자 동기인 고마운 김형양 계장님, 묵묵히 밤새워 일하며 든든한 힘이 되어 준 멍텅구리 친구들, 시정업무의 현안을 도맡고 기획, 실행을 독촉하신 김영오 국장님과의 만남은 넓은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었다. 그 후 장애의 굴레에서 해방돼 법무담당관실, 사회복지과, 시민봉사과, 장애인복지과, 건강증진과, 혁신평가담당관실, 서구 부구청장 등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별빛과의 동행 중에서
발달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치과 진료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치아 관리 교육도 중요했다. 치과 진료는 고가이거나 건강 보험상 제외 영역이 많아 비용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나아가 장애인 전용 치과병원이니 장애인이 우선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운영 취지에 맞게 치아 관리가 어려운 발달장애인과 뇌병변 장애인 등이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물론 중증 지체 등 장애인이 있지만 이 분들은 가까운 지역의 과병원을 이용한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장애 유형을 불문하고 환자가 몰리기 일쑤일것이다.
당연히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분은 부산시 예산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예산부서에 지원 필요성을 설득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했다. 담당자로서의 힘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이었다. 과장이 직접 나서서 예산부서를 설득했고, 풍족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세심한 배려를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장애인 전용 치과병원 건립 중에서
복지개발원 원장을 역임하면서 정책연구 결과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조직원의 사기를 앙양함과 아울러 조직을 변화에 적합하게 개편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 이 과정은 나뿐만 아니라 조직원 모두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크고 작은 저항도 있었지만, 나의 경영방침을 열정적으로 지지해 주었던 박선희 박사, 이재정 박사, 김두례 박사, 김정근 박사 등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2년여의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는 걸음이 됐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대학 교수와 복지정책 연구책임자 중에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제도의 구축은 대부분이 부모의 노력과 절규 그리고 십시일반의 갹출로 시작됐다. 그중 발달장애인을 위한제도는 더욱 그러하다.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다가 죽기를 원한다. 발달장애의 특성상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자녀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살아감에도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산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제 독립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을 마련했으니 법인이 소유한 양산에 소재하는 토지를 팔아서, 그 재원으로 사람이 사는 살아 있는 도심에 다목적 여가 및 복지시스템을 확충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목적 시설에는 중증의 발달장애인 4~5명이 기거하면서24시간 도움을 받음과 아울러 문화나 여가를 체험하며, 발달장애인의 양육과 진로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최초의 독립 주거 모델 구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