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단순히 마음속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의식은 적어도 그 내용을 만들어 내고 동기를 부여하는 유기체를 중심으로 조직된 마음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독자나 저자를 막론하고 언제든 원할 때마다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식은 살아서 활동하는 유기체의 영향을 받아 조직된 마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단지 조직화된 이미지들이 정신적 흐름 속에 존재하며 흐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출현하지만, 어떤 보완적 과정이 추가되지 않는 한 그 마음은 의식 없는 채 남아 있다. 의식 없는 그 마음에 부족한 것은 바로 자아이다(제1부 1장. 잠에서 깨어나다, 33~34쪽).
문화와 문명이 인류를 위해 구축한 불완전하지만 경이로운 구조물 뒤켠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근본적인 논쟁거리는 여전히 생명 유지이다. (…) 생명과 그에 필수적인 조건들, 즉 거스를 수 없는 생존 명령과 하나의 세포든 수조 개의 세포든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복잡한 관리 과정은 진화가 만든 가장 정교한 관리 장치인 뇌의 출현과 진화를 이끈 근본 원인이었다. 동시에 이는 더욱 정교한 신체 내부와 더욱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정교해진 뇌가 발달하게 되는, 일련의 모든 결과들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다. 뇌가 신체 내부의 생명을 관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관점을 필터로 삼아 뇌 기능의 면면을 살펴보면, 심리학의 전통적인 범주들(감정, 지각, 기억, 언어, 지능, 그리고 의식)이 예전보다 자연스럽고 훨씬 덜 신비롭게 보일 것이다(제1부 2장. 생명 유지에서 생물학적 가치까지, 108~109쪽)
전통적인 관점이나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나는 마음이 오직 대뇌 피질에서만 형성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마음의 첫 징후는 뇌간에서 시작된다. 마음의 작동이 뇌간층에서 시작된다는 이 아이디어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아직 세간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뇌간에 있는 고립로핵과 부완핵 두 핵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통과 쾌락으로 표현되는 마음의 기본적인 양상을 만든다(제2부 3장. 지도 제작과 이미지 형성, 131~132쪽).
감정이 학습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화되어 있으며,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행동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감정의 기원이 자연선택과 그에 따른 유전적 설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런 유전적 지침은 진화 과정에서 잘 보존되어 뇌가 신뢰할 만한 특정 방식으로 조립되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특정 신경 회로가 감정적으로 유효한 자극을 처리하고, 감정 촉발 뇌 부위가 완벽한 감정 반응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겪은 문화적 영향이나 개인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감정 표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 그것은 조절될 수 있고, 뚜렷한 개인차를 드러내기도 하며, 때로는 소속된 특정 사회집단을 은연중에 비출 수도 있다(제2부 5장. 감정과 느낌, 204~205쪽).
수렴–발산 지대 이론틀은 뇌 속에 다소 분리된 두 개의 ‘뇌 공간’을 상정한다. 하나는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할 때 대상과 사건의 명시적 지도가 만들어지고, 회상할 때는 그 지도가 재구성되는 공간이다. (…) 이 두 공간은 뇌 진화의 서로 다른 시기를 가리킨다. 한쪽은 성향만으로도 적절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초기의 뇌이고, 다른 한쪽은 지도가 이미지로 발전하면서 행동의 질이 향상된 이후의 뇌이다. 현재 두 공간은 이음매 없이 통합되어 있다(제2부 6장. 기억의 구조적 설계, 247~248쪽).
의식의 무대는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분주히 이곳저곳으로 바뀐다. 과거 삶의 편린들이 순식간에 기억 속을 스쳐 지나가고, 미래에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들까지도 현재의 경험 속으로 흘러든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 인생의 다양한 시기와 장소를 넘나들며 숨가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흐름 속에서도 나라는 자아, 내 안의 중심축은 결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먼 사건에 집중하더라도 그 중심과의 연결은 끊기지 않는다. 자아의 중심은 흔들림 없는 불변항으로 작용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뇌가 이룩한 장엄한 성취를 대변하는 동시에 인류를 정의하는 확장된 의식의 본질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인류를 지금의 문명 수준으로 끌어올린 뇌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 영화, 음악이 표현하고, 철학적 사유가 찬미하는 의식은 바로 이런 모습의 의식이다(제3부 7장. 관찰된 의식, 270~271쪽).
모름지기 의식을 가진 마음을 구축하는 과정은 실로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가장 단순한 층위는 유기체(원자아)를 담당하는 뇌의 일부에서 출현한다. 이 초기 자아에서는 신체의 비교적 안정된 측면을 나타내는 이미지들이 모이면서 결과적으로 살아 있는 몸에서 자연 발생하는 솟아나는 느낌(원초적 느낌)이 생겨난다. 두 번째 층위는 유기체(원자아로 표상된)와 인식 대상을 표상하는 뇌의 특정 부분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된다. 이런 상호작용의 결과로 핵심자아가 등장한다. 세 번째 층위에서는 과거의 경험이나 예상되는 미래의 모습으로 저장된 여러 대상들이 원자아와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핵심자아 펄스를 생성하게 한다. 이렇게 형성된 결과물이 자서전적 자아이다. 이 세 가지 자아의 층위는 각기 분리된 작업 공간에서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협응된 방식으로 작동한다(제3부 8장. 의식을 가진 마음 구축하기, 289~291쪽).
자서전적 자아는 두 가지 메커니즘이 맞물려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메커니즘은 핵심자아 메커니즘의 일부로, 각각의 전기적 기억 더미가 하나의 독립된 객체처럼 취급되어 핵심자아의 펄스 안에서 의식화될 수 있도록 한다. 두 번째 메커니즘은 뇌 전체를 아우르는 협응 작용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1) 특정 기억 내용이 인출되어 이미지 형태로 펼쳐지고, (2) 이 이미지들이 원자아와 질서정연하게 상호작용하며, (3) 그 상호작용의 결과가 일정 시간 동안 일관되게 유지된다. 자서전적 자아 형성에 관여하는 신경 구조들은 핵심자아를 움직이게 하는 구조들과 마찬가지로 뇌간, 시상, 대뇌 피질 전반에 걸쳐 분포한다(제3부 9장. 자서전적 자아, 336~337쪽).
의식이라는 쇼를 편성하는 과정은 모름지기 대규모 협업 작업이기에 특정 제작진만을 단독으로 지목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인간 의식을 특징짓는 자서전적 자아의 측면을 고려할 때, 대뇌 피질의 신경해부학과 신경생리학을 주도하는 수렴–발산 영역들이 왕성하게 발달하지 않았다면 의식은 결코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뇌간이 원자아에 기여하지 않았거나 뇌간이 인체 본연과 본질적으로 결합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시상을 통한 전뇌 수준의 재귀적 통합이 없었다면 자서전적 특성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제3부 10장. 갈무리, 388~389쪽).
인간 존재가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또 그 안에서 어떤 보상이 주어질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사실 인간의 의식이 완전히 꽃피운 이후에야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그 지식의 편린들을 모을 수 있는 자서전적 자아를 가진 마음이 생긴 후에야 말이다. 당시 초기 인류가 지녔던 지적 자질을 감안하면 그들도 언젠가 우주 속에서 자기 자리가 어디쯤일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붙잡고 있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을 그들 역시 품었으리라. 바로 그때야말로 반항하는 자아가 본격적으로 성숙하는 시점이다. 이와 함께 인간이 처한 조건과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는 신화들이 창조되고, 사회적 규범과 규칙이 단단해졌다(제4부 11장. 의식과 더불어 살아가기, 4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