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남극의 겨울밤은 대원들로 하여금 이 거칠고 험한 세계로 모험을 떠난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얼어붙은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은 동화처럼 신비로웠고, 밤하늘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밝은 빛을 내뿜었다. 가끔은 수평선 위로 숨막히게 아름다운 오로라가 나타나기도 했다. - 83p
섀클턴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또 한 번의 좌절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보다 더 위대한 실패가 되리라는 것을. 훗날 세상으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실패한 ‘인듀어런스 탐험’이었다. - 20p
탐험가로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다름 아닌 그의 낙천성이었다. 만일 그가 냉정하지 못했거나 욕심이 더 많았다면 지난 두 번째 탐험에서 남극점 최초 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와 그의 대원들은 스콧의 팀들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당시 섀클턴이 후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며, 그의 특징인 낙천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또다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28p
섀클턴은 자기 몫의 비스킷 4개 가운데 1개를 와일드에게 주며 강제로 먹였다고 한다. “이 순간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자상하고 호의적인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와일드는 다음 문장에 줄까지 쳐가며 적었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 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비스킷이었다.- 31p
인듀어런스 호가 남극을 향해 출발할 때 와일드는 탐험대 부대장을 맡았다. 와일드는 당시 섀클턴이 보여준 행동을 잊지 못했고, 그의 충성심은 횡단 탐험의 소중한 자산이었음이 나중에 입증되었다. 처절한 시련을 겪은 인듀어런스 호의 대원들에게 유일한 축복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섀클턴의 부하였다는 점이다. 탐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이 생존 드라마에서 섀클턴은 자신의 대원들과 늘 함께했다. - 31p
“하루 종일 성을 공격하듯 나아갔다.” 헐리는 12월 중순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작지만 강한 우리의 배가 자랑스럽다. 우리의 적인 부빙을 멋지게 물리쳐버 리는 이 싸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얼음과 부딪히면 깃봉에서 용골까지 배 전체가 부르르 떤다. 그러고는 곧바로 뱃머리를 들이밀고 나아가며 쐐기처럼 얼음을 공격하여 길을 만든다.”- 44~45p
신비롭고 아름다운 남극의 겨울밤은 대원들로 하여금 이 거칠고 험한 세계로 모험을 떠난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얼어붙은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은 동화처럼 신비로웠고, 밤하늘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밝은 빛을 내뿜었다. 가끔은 수평선 위로 숨막히게 아름다운 오로라가 나타나기도 했다. -83p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섀클턴은 비통한 마음으로 기록했다. “뱃사람에게 배는 바다에 떠 있는 집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명을 지르고 부서지고 온몸에 지독한 상처를 입으면서, 인듀어런스 호는 천천히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125p
섀클턴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 5시에 인듀어런스 호는 머리부터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은 뱃고물이 맨 마지막으로 물속에 들어갔다……. 도저히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151p
“오후에 와일드가 내 개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헐리는 자기가 좋아했던 개들의 명복을 오랫동안 빌었다. “개들의 우두머리였던 늙은 셰익스피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두려움을 모르고 충직하며 부지런했던 나의 사랑스런 개들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157p
섀클턴은 마침내 목숨을 건 대담한 결단을 내렸다.
“미끄러져 내려간다!”
대원들은 로프로 똬리를 만든 다음 썰매처럼 깔고 앉았다. 그러고는 각자 앞사람을 두 팔로 단단히 껴안았다. 섀클턴이 맨 앞에 앉고 크린이 맨 뒤에 앉은 상태에서, 세 사람은 깜깜한 어둠 속을 향해 위태로운 돌진을 시작했다. “우주 공간에 던져지는 것 같았다.” 워슬리는 이렇게 적었다. “머리가 쭈뼛 곤두섰다. 그러다가 갑자기 흥분이 되더니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 아슬아슬한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흥분한 채 마구 소리를 질러댔고 섀클턴과 크린 역시 함께 소리를 질렀다.” 가파르던 비탈이 점차 완만해졌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이윽고 눈더미에 부드럽게 부딪치며 정지했다 - 214p
“이때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워슬리는 이렇게 적었다. “섀클턴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엔 날마다 주름이 새로 늘어났고, 검고 두껍던 머리카락은 차츰 흰색이 되어갔다. 맨 처음 구조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회색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구조작업을 나서는 그의 머리는 완전한 회색이었다.” -223p
이 시기를 되돌아보면 엘리펀트 섬과 사우스 조지아 섬 사이의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와 빙원에서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했으며 우리를 이끌어주셨다고 확신한다. 사우스 조지아 섬 내륙의 이름 모를 산과 빙하를 36시간이나 행군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늘 셋이 아니라 넷인 것 같았다. 당시엔 대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워슬리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장, 산을 넘을 때 왠지 또 다른 누군가가 옆에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크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224p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와일드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베이크웰은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라고 적었다. 대원들은 숨을 멈추고 섀클턴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한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무사합니다!” - 246~247p